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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Oct 21. 2019

일반인문 CXVIII 왕국 Le Royaume

; 바울과 루카, 1세기 기독교도의 찬란한 여정

가을이 깊어가면 책 읽기를 도전 해 보기 쉽습니다.
그래, 책 한권과 함께 가을을 보내기를 권합니다.
소설같이 느껴지지 않는 않은 소설이며 어쩌면 크리스쳔들에게는 충격적 이야기가 스스로 빗장을 닫아 걸 수 있는 이야기.


냉정한 불신자에서 열렬한 신앙인으로, 다시 불가지론자로 물러선 Emmanuel Carrère 엠마누엘 까레르가 기독교를 상대로 벌이는 싸움이자 대화인 책.
작년 초 한국어 버젼이 나오자 마자 읽고 지인들에게, 특히 목회를 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 책입니다.
프랑스에서는 2014년에 출간된 왕국은 그해에 프랑스 국내에서만 50만 부 이상 팔리며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랭크된 책으로 같은 해에 Le Monde 르몽드 문학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Rire 리르, L'Express 렉스프레스, Le point 르 푸앵등 언론에서 2014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일지 모릅니다. 
제목도 거대한 크기를 나타내고, 분량이 704쪽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한숨 한 번 내쉬고 읽는다해도 버거울 수 있는 게, 바울과 누가의 관계를 중심으로 신약을 이야기하고 있어, 이야기 자체가 그리 재미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기독교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신약에 대한 다른 시각을 주기 때문입니다. 
한 번 읽고 잘 읽었다 하는 가벼운 소설이 아닌, 성경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통찰력으로 빚어낸 장인의 도자기 같은 소설입니다. 
소설이 성경을 만났을 때 올릴 수 있는 지적 경지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Paul 서신에 세번 언급되는 Luke는 그를 도와 기독교의 전파에 힘썼지만, 나중에는 기독교에 관해 그와 견해 차이를 보였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Paul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강조한 데 반해, Luke는 부활에 대한 믿음보다 사람들을 측은하게 여기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고 왕국은 선한 사마리아인들과 사랑할 줄 아는 창녀들과 돌아온 탕자들의 것이지, 사상적 대가들의 것도, 자신이 모든 사람의 위에 있다고 믿는 이들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버리고 온전히 예수의 뜻을 따르겠다고한 신앙인은 3년의 시간이 지나고 뒤로 물러섭니다


주여, 이제 난 당신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날 버리지 마소서.


20년의 시간이 흐른 뒤 책을 쓰며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단언을 하면서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불가지론자*가 기독교인이 아닐까라는 미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불가지론 | 초경험적인 것의 존재나 본질은 인식 불가능하다고 하는 철학상의 입장.


기독교인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고 있다는 지적은 늘 있어왔습니다.


초기 기독교 역사를 통한 참회를 하기 위한 작가의 시간을 가로질러 사도 바오로와 복음사가 루카의 여정을 추적하는 Faction 팩션(Fact와 Fiction의 합성어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장르)은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한글판의 표지는 Duccio di Buoninsegna 두초 디부오닌세냐 (피사· 루카·피스토이아 등 여러 성당에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의 작품 <사도 베드로와 안드레아의 부르심>(1308~1311). 


엠마뉘엘 카레르는 저널리즘식 글쓰기, 르포 형식의 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왔는데 2000년 작품인 L'Adversaire 적에서는 일가족을 살해한 실존 인물 장클로드 로망의 심리를 파헤쳤고, 2011년에 발표한 Limonov 리모노프에서는 러시아의 작가이자 정치인인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의 삶을 추적하기도 했습니다.

신약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는 Paul 서신과 Luke 두 저작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 그리고 나머지 세 복음서와 70인 역 성경, 예수 어록인 Q, 여기에다가 지난 2천년간 축적된 기독교 연구를 바탕으로 카레르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면모를 생생하게 되살리고 있습니다. 
Paul 서신 중 2 Timothy (티모테에게 보낸 둘째 서간)과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썼다는 The Letter of James 야고보 서간의 진짜 필자가 루카였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습니다


아니, 난 예수가 부활했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한 인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돌아왔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그걸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 자신도 한때 그걸 믿었다는 사실이 날 궁금하게 만들고, 날 매혹시키고, 날 불안하게 하고,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어느 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내가 더 이상 부활을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이들보다, 그리고 그것을 믿었던 나 자신보다 더 잘 안다고,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두둔하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쓴다.
― 본문 3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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