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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Jan 12. 2020

일반 인문 CXXV 鍮尺 유척

; 검사내전 - 유척 대 저울, 해치 대 Justitia 유스티티아

드라마 검사외전의 端初 단초를 보고…


작년에 드라마 호텔 델루나를 보고 삼도천 이야기로 시작한 죽음에 관한 단어들처럼 오늘은 검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검사외전에서 중심인물인 이선웅검사(이선균)와 차명주검사(정려원) 사이의 미묘하게 흐르는 찬 공기의 실마리가된 유척에 대해 묻는 지인이 있어서 이를 설명해주다 밴드에도 살을 붙여 올려봅니다.


한글로 유척은 한자로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척1(遊尺) | 명사, 수학, 계산자에서 가운데 홈에 끼이어 이쪽저쪽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 자.

유척2(鍮尺) | 명사, 역사, 놋쇠로 만든 표준 자. 보통 한 자보다 한 치 더 긴 것을 단위로 하며 지방 수령이나 암행어사 등이 검시(檢屍)할 때 썼다. ≒놋자.

영조-척(營造尺) | 명사」, 목수가 쓰는 자. 주척(周尺)의 한 자 네 치 구 푼 구 리에 해당한다.

(*지난해 도량형에 관한 글에서 청동 영조척(營造尺) 사진을 올렸습니다.)

아무래도 기준, 척도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마패, 어사임명장과 함께 암행어사의 필수 소지품이 유척이었습니다.

고을의 형구라고 하여 각 마음 마다 갖고 있는 척량도구가 맞는 지 확인하는 소지품 이었습니다.


서양에서는 보통 정의(중용)를 나타내는 저울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정의의 신은 왼손에 저울을, 오른손에 칼을 들고 눈을 가린 여신인 Justitia 유스티티아 입니다.

저울이야 위에서 이미 이야기한 유척과 같은 뜻이고 칼은 그 심판을 의미 합니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의 정의의 여신은 오른손에는 저울을 높이 들고 있고, 왼손에는 법전을, 옷은 한국 전통 의복을 입고 눈을 뜨고 있습니다.


별걸 가지고 시비를 걸고 있죠.

유스티티아는 그리스의 최고의 신인 Zeus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Themis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정의’ 또는 ‘정도(正道)’를 뜻하는 의미의 Dike 디케에서 왔죠.

인간들의 타락이 극에 달하자 하늘로 올라가  처녀자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로마시대에는 유스티티아(Justitia)로 대체되었고지금의 영어에서 정의를 뜻하는 저스티스(justice)는 여기서 유래한 것이죠.


고대, 정의의 신인 디케는 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신(神)이었기 때문에 눈을 가리지 않아도 공정하게 심판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근대 이후 인간의 이성이 발달하면서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상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개입되면 선입견과 주관이 공정한 판결에 영향을 줄것이라는 생각은 예술가의 감성과 맞물리며 근대 이후 수많은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상'을 낳았습니다.

세계 여러 정의의 여신상들은 대부분 한 손에 '칼'을 들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시비거리가 이것이죠.

정의의 여신상의 기원인 '디케'가 칼을 들고 있었던 모델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적·민족적 정서와 예술가적 상상력에 의해 예술작품은 하나의 테마를 놓고도 여러형태로 나타날수 있기에 어떤 조각상들은 칼을 치켜들기도, 칼을 바닥으로 향하게 내려놓기도, 혹은 칼이 아예 없기도 합니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은 현 이화여대 미술대학 교수이신 박충흠이 1995년에 제작한 것으로, 작품의 콘셉트가 '한국적인' 정의의 여신상의 구현에 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한복이 더 웃깁니다.

왜 우리나라의 법원에 서양의 신이 와서 판결을 하고 있는것일까?

이미 눈치빠른 분들은 감 잡으셨죠?


경복궁 정문 앞(위치가 도로때문에 뒤로 많이 밀렸습니다)에 떡하니 서 있는 해치상.

옛날에는 獬豸해치상 안쪽지역으로 진입하는것만으로도 궁궐에 진입하는것과 같은 의미를 가졌습니다.


경복궁 중건 2년째되던 1870년 어느날, 고종은 광화문 앞에서 아무나 말타고 다니는 일이 없도록 사헌부에 규찰을 명합니다.


대궐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를 정하니, 이것이 곧 象魏상위다. 

조정신하들이 그 안에서는 말을 탈 수 없게한 것은 임금이 타는 수레에 공경을 표하라는 뜻에서다. 

조금전 출궁하다 보니, 從陞人종승인이 그 안에서 말을 타고 있던데 이것이 어찌 일의 이치와 체면과 도리에 맞겠는가? 

전후에 걸쳐 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한 하교가 엄중했는데도 한갓 형식이 돼버렸으니 이같이 하고서 어찌 기강이 설 수 있겠는가? 

지금부터는 사헌부는 규찰하여 글로써 보고 토록하라. 

-고종실록 7년10월7일


象魏상위란 원래 궁궐 문밖에 법령을 높이 게시하는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이 轉전하여 威儀위의 높은 궁궐, 또는 궁궐 문의 뜻으로 쓰였죠. 

고종이 광화문 해치상을 두고 상위라 했으니, 그것은 곧 해치상이 있는 곳에서부터 궁궐 권역이 시작됨을 말한 것입니다.

광화문 해치상은 고종 당시에 명성이 높았던 석공 李世旭이세욱(혹은 태욱泰旭)의 작품입니다. 

외형을 살펴보면 온몸이 둥근비늘로 덮여 있고 큰눈과 주먹코, 입술사이로 드러난 앞니와 송곳니가 인상적입니다.

네 다리에는 불꽃모양의 火焰脚화염각과 나선형 갈기가 선명하고, 정수리는 약간 불룩할 뿐 뿔은 보이지 않습니다. 

혹자는 이 때문에 해치가 아니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각종 고전 속에 나타난 해치의 성격에 관한 공통된 내용은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신수라는 것이죠.

상상의 동물인 해치는 날카로운 판단력과 예지의 능력을 갖추고 있어 사람의 언행만 보고도 그의 성품과 됨됨이를 파악해 낸다. 

사람들간에 분규나 충돌이 있을때 능히 시비곡직을 가려 내는데, 이치에 맞지 않는자는 정수리에 난 외뿔로 받아 징벌하고, 극악무도한 죄인은 죽여 먹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해치가 법과 정의와 관련된 신수라는 것은 한자 「法법」의 옛 글자인 「灋법」자에서도 나타납니다. 

「灋법」자는 「廌치」와 「法법」두 자를 엮어 만든 글자로, 여기서 「廌치」는 해치의 다른 이름이죠. 

「廌치」자는 해치가 법과 관련이 있고, 「法법」은 해치에 의해 상징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 줍니다. 


항상 해치와 함께 거론되는 인물이 순임금 시대의 법관을 지낸 皐陶고요죠. 

그는 순임금을 도와 나라 안팎의 오랑캐를 물리쳐 백성을 지켜 편안한 생활을 누리게 했고, 또한 해치와 함께 죄의 유무와 경중을 현명하게 판단하여 정의국가 건설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후세 관료들은 그를 귀감으로 삼았는데, 특히 조선시대 법관들이 해치를 수놓은 법복을 입고 정사를 살폈던것도 해치와 고요의 법 정신을 본받으려는 데 뜻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법원에는 해치가 더 잘 어울릴것 같다는것이 생각 짧은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검사내전 #유척 #해치 #해태 #정의의여신상 #유스티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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