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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y 23. 2020

일반인문 CXXXIX 고려장 高麗葬

; 버려야할 말, 고려장

中 ‘현대판 고려장’ 충격 -동아일보 2020.05.07

“장애인 고려장 없애겠다” “복지보다 일할 기회 늘리겠다” -중앙일보 2020.04.21

'코로나 패닉' 유럽에서 현대판 '고려장'까지? -노컷뉴스 2020.03.16


기사를 접할때마다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효孝’에 관한한 빠지지 않는곳인데,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말을 21세기에 와서도 말을 다루는 기자들이 스스럼없이 사용한다는것에.

이것은 단순히 일본어에서 변화한 여러 단어들과 맥을 달리합니다.

우리의 문화를 흔드는 말이죠.

어처구니 없는것은 버젓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사전에 올라와 있다는것입니다.

영화 고려장 DVD

고려-장 高麗葬 | 명사.

1.예전에, 늙고 쇠약한 사람을 구덩이 속에 산 채로 버려 두었다가 죽은 뒤에 장사 지냈다는 일.

2.주로 나이 든 노인을 다른 지역이나 나라 따위에 버려 두고 오는 일.

3.‘고분’을 속되게 이르는 말.


좀 더 볼까요.


고려장 高麗葬 

1.나이든 노인을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 버려두고 오는 일.

2.역사 고구려 때, 늙고 병든 사람을 구덩이 속에 버려두었다가 죽는 것을 기다려 장사하는 풍습을 이르던 말.

3.‘고분’을 속되게 이르는 말.

-고려대한국어대사전


고려-장 高麗葬 | 명사.

1.예전에, 늙고 쇠약한 사람을 구덩이 속에 산 채로 버려 두었다가 죽은 뒤에 장사 지냈다는 일.

2.주로 나이 든 노인을 다른 지역이나 나라 따위에 버려 두고 오는 일

3.‘고분’을 속되게 이르는 말.

-우리말샘


예전에, 늙고 쇠약한 사람을 구덩이 속에 산 채로 버려 두었다가 죽은 뒤에 장사 지내다.

-표준국어사전


고려장설화 高麗葬說話 | 문학. 늙은 부모를 산 채로 버리던 고려장의 악습이 사라지게 된 유래를 담고 있는 설화. 약간씩 다른 형태로 전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 우리말샘


전국 각지역에는 지역 사투리들이 존재합니다.

고린장, 고림장(경기), 고레장(경북), 고리장(전북), 고름장(전남), 고리장, 고랑장……


늙은 부모를 깊은 산속에 내다버리는 고려장은 고려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시골에 가면 옛날에 고려장을 했던 곳이라는 전설이 어린 장소가 전해오고 있지만, 실은 고려장과는 관계없는 곳으로 고려 때 고려장이 행해졌음을 입증하는 자료나 유물, 유적은 현재까지 발견된 것이 없습니다.

60~80년대 초, 중등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당연히 교과서에서 볼 수 있었던 내용인지라 90년대생 청년들에게 물었습니다.

정확히 ‘고려장’에 관한 내용을 따로 배운일은 없지만 교육과정중에 스치듯 들었다는것이 중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고려장’이란 말을 사용하게된 것은 언제 일까 궁금했습니다.


당연히 고려를 엎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조선이라면 고려의 불합리, 부도덕함이 있다면 부각시켜야 새로운 왕조 탄생의 당위성을 확고히 했을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단 한번도 올라있지 않습니다.

더 위로 올라가기 전 의심의 눈초리는 그 다음 암울한 일제침략기로 넘어가 봐야겠죠.

1926년 11월 4일 동아일보에서 찾아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 못보는 조카를 ‘고려장’헸다는 내용입니다.

이후로 비슷한 경우에 인용해서 사용했던 신문기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1926년 11월 4일 동아일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을 처음 보였던  미국의 동양학자 William Elliot Griffis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의 저서 ‘Corea the Hermit Nation 은자의 나라 한국, 1882’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라는 말의 정확한 유래는 불확실하지만, 이 또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것이 이 책입니다. 물론 책이 나온 2년 뒤, 1883년 12월 조선을 방문해 약 넉 달간(두 달이라는 기록도 있다) 머물렀던 미국인 Percibal L. Lowell 퍼시벌 로웰이  ‘Chosun, the Land of Morning Calm’이란 제목으로 책을 썼습니다. 

그리피스의 저서보다 로웰의 책은 큰 인기를 끌며 조선을 세계에 알리고 조선(한국)의 이미지를 저렇게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그리피스는 1870년부터 1874년까지 일본에 머물며 과학 교수로 일하는 한편, 통신원으로서 미국 언론에 일본과 동아시아 소식을 전하는 글을 썼습니다. 

1927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선과 만주를 한달 동안 방문했다고 하는데 사진의 내용을 만주사람들과 혼돈해서 만주 사진을 조선이라고 적은것이 많이 보이는것으로 보아 만주에서 주로 자료를 수집한듯합니다.

William Elliot Griffis-Corea the Hermit Nation 은자의 나라 한국, 1882


어찌되었든 그는 일본의 초청으로 일본에서 1877년 도쿄의학교(東京医学校)와 합병하기 전 東京大동경대의 전신인 東京開成学校도쿄가이세이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일본내의 조선 자료를 주로 참고 했습니다.

책 내용중 부산은 고대부터 대마도주의 영지였다는 내용도 있고 조선의 선은 선명하다(鮮)가 아닌 고요하다는 일본 한자 ‘禅선-ぜん센’으로 바꿔 아직도 많이 사용하는 ‘Land of morning calm’이라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자국에 대한 활동적인 표현인 ‘Land of the rising sun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에 상응한말로 바빠야하는 아침 대신 나태한 아침을 연다는 의미하고 있는 말을 사용한것이죠.


朝鮮조선이 아닌 힘과 정열을 상살한 무기력한 나라, 朝禅조센.


돌아와서, 그럼 국내 기록을 더 살펴 봅니다.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 있는 고려장 설화는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누어집니다. 

중국의 ‘효자전’에 실려 있는 원곡 이야기 유형과, ‘팔만대장경’이라 불리는 ‘고려대장경’에 수록된 「잡보장경雜寶藏經」의 기로국棄老國 설화 유형입니다.

고려대장경, 잡보장경雜寶藏經의 기로국棄老國 설화

원곡 이야기는 원곡의 아버지가 늙은 할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속에 버리고 돌아오다가 어린 원곡이 아버지가 늙으면 역시 이 지게로 갖다 버리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뉘우쳤다는 줄거리요, 기로국 설화는 옛날 기로국에서 국법을 어기고 몰래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던 대신이 아버지의 지혜를 빌어 까다로운 수수께끼를 풀어서 나라의 위기를 구하고 아버지도 편히 모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유형의 이야기가 뒤섞이기도 하고, 버리는 대상이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바뀌기도 하면서,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장 이야기가 된 것이며, ‘노인을 버리는 나라’라는 뜻인 기로국이 고리국 또는 고려국으로, 기로의 장례라는 뜻인 기로장棄老葬이 고려장으로 변해 굳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로국 이야기든 원곡 이야기든 혹은 그 둘이 뒤섞인 것이든, 고려장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민간에서 떠돌았고, 살이 붙고 구체화됩니다. 이를테면 “산을 파고 그 속에 기름불 하나 켜놓고 밥 한 사발 갖다 놓고 묻는다”거나, “밥 들어갈 만한 구멍 하나 남겨서 한 달 동안 밥을 갖다주다 기한이 지나면 문을 딱 닫는다”는 구전이 그것입니다. 


고려장을 고려 때 실제 있었던 장례 풍습이라고 일반인들이 두루 믿게 된, 존재하지도 않은 역사는 일제의 문화침탈의 과정에서 더욱 구체화되고 사실화 되어 갑니다.

1919년, 일찍이 평양고보 교사를 지낸 적 있는 일본인 미와 다마끼 みわ たまき(三輪環)가 「전설의 조선傳說の朝鮮」이란 책을 썼는데, 여기에 ‘불효식자不孝息子’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후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동화집-어머니를 버린 남자親な捨てる男」에서 ‘고려장’의 더욱 구체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냅니다. 

이 책은 일제시대 3대 동화집인 심의린의 「조선동화대집, 1926」, 박영만의 「조선전래동화집, 1940」과 함께 해방 후 70년이 지나도록 어린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전래동화의 원전이 되고 있습니다. 

전설의 조선과 조선동화집

현대 우리사회에 자리를 잡았던것은  대한민국의 사학계를 이끈, 전 문교부장관이며 전 서울대 대학원장, 이병도가 1948에 쓴 ‘조선사대관 朝鮮史大觀’과 ‘하녀’를 비롯해 ‘화녀’, ‘충녀’, ‘수녀’ 등의 요부 시리즈를 연출하며 충무로의 전설이 된 김기영 감독의 1963년 영화 ‘고려장’을 통해서였습니다.

연세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한 김동길의 「대통령의 웃음」 제2장 ‘한평생을 웃음으로’의 고려장 노모의 아들 생각에 이렇게 실려있기도 했습니다.

‘옛날에 고려장이라는 악습이 있었다. 늙고 병든 사람을 산 채로 업어다 구덩이에 두어 죽으면 그대로 묻어버리는 고약한 풍습이었다(70쪽, 1979년 정우사). 또한 초등학교 국어 3학년 1학기 「읽기」 교과서에 게재된(44쪽) 둘째마당 ‘마음으로 보아요’의 ‘소년과 어머니‘내용 중 ’옛날 부모가 늙으면 산에 버려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병도의 조선사대관과 김기영의 고려장

한때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풍속으로 여겨졌던 고려장.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할 역사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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