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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Nov 17. 2020

일반인문 CLII 行雁南飛 행안남비

; 기러기의 계절

이른 아침,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하늘을 보니 기러기떼가 이동하며 내는 소리네요.

잔뜩 찌푸린 하늘을 가르는 한 무리의 기러기떼는 가을을 느끼게 하는 모습 중 하나입니다.

겨울새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아마도 ‘기러기’일 것인데 줄지어 질서정연하게 나는 ‘기러기’ 떼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기 때문이겠죠.

내친김에 오늘은 기러기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기러기가 남쪽으로 날아간다는 뜻으로 사용된 ‘行雁南飛 행남비행’은 판소리 춘향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수심 걱정 밤을 샐 제 기러기 울고 가니 일편 서강(서강) 달에 행안남비 네 아니야. 


겨울 철새인 기러기가 봄에 북쪽으로 떠났다가 가을이면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와 가을, 겨울을 지내지만 여름철새인 제비는 봄, 여름을 우리나라에서 지내죠.

제비가 올 무렵이면 기러기가 떠나고, 기러기가 올 무렵이면 제비가 떠나니, 제비와 기러기는 서로 만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이런 제비와 기러기의 운명을 한자로 ‘연안대비(燕雁代飛)’라고 합니다. 

‘회남자(淮南子), 지형훈(地形訓)편’에 나오는 말로 한쪽이 오면 한쪽이 떠나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제비와 기러기처럼 서로 어긋남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안비차처도래추(雁飛此處到來秋) 기러기가 날아 오면 가을이 오고, 

염비차처도래춘(燕飛此處到來春) 제비가 날아오면 봄이련마는, 

연안불견불면숙(燕雁不見不面熟) 제비와 기러기는 만날 수 없고 얼골도 모르니, 

차문대비하과보(借問代飛何果報) 묻노니 연안대비(燕雁代飛)도 인과응보(因果應報)인가?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기러기’에는 여러 종이 있지만, 대부분 ‘쇠기러기’와 ‘큰기러기’로 ‘쇠기러기’가 더 흔합니다. 

‘기러기’라는 말은 15세기 정음(正音) 문헌에도 ‘그려기’로 나옵니다. 

같은 시기의 문헌에 ‘그려기’와 더불어 ‘그력’도 보입니다. 

‘그력’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이 ‘그려기’이므로 ‘그력’이 보다 원초적인 명칭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력’은 다름 아닌 기러기의 울음소리를 상징한 것입니다. 


그력그력……

영어로는 Honk, Honk……


15세기의 ‘그려기’는 16세기 이후 ‘긔려기’ ‘기려기’를 거쳐 ‘기러기’로 변해 지금에 이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두 부류의 ‘기러기’를 구별하기 위해 새로 만든 명칭이 ‘쇠기러기’와 ‘큰기러기’입니다. 

‘몸집의 크기’에 따라 한 부류는 ‘쇠기러기(쇠-는 작다는 뜻으로 작은기러기를 말합니다)’로, 다른 부류는 ‘큰기러기’로 부른 것입니다. 

사진은 왼쪽 큰기러기 오른쪽 쇠기러기-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기러기하면 ‘먼 곳으로 부터 날아오는 새’라는 뜻에서 기러기를 뜻하는 한자를 통해 먼곳으로 부터 오는 소식을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한서(漢書), 권 54 소무전(蘇武傳)’에서 한무제 때 한나라의 사신 소무가 흉노에게 붙잡혀 있을 당시 기러기의 다리에 편지를 매어 한나라로 보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雁書 안서’, 雁信 안신’, ‘雁札 안찰’가 그것입니다.


● 안서 雁書 | 명사. 먼 곳에서 소식을 전하는 편지.≒신음信音, 안백雁帛, 안보雁報, 안신雁信, 안찰雁札.

● 행안남비 行雁南飛 | 명사. 기러기가 줄을 지어 남쪽으로 날아감

● 안항 雁行 | 명사. 기러기의 행렬이란 뜻으로, 남의 형제를 높여 이르는 말.

● 평사낙안 平沙落雁 | 명사. 모래펄에 날아와 앉은 기러기.

● 침어낙안 沈魚落雁 | 명사. 미인을 보고 물 위에서 놀던 물고기가 부끄러워서 물속 깊이 숨고 하늘 높이 날던 기러기가 부끄러워서 땅으로 떨어졌다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인의 용모를 이르는 말.


‘안항(안행)’은 ‘시경詩經’,  ‘예기禮記’등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 가운데 하나로 ‘평사낙안平沙落雁 (모래펄에 와서 앉은 기러기)’은 글씨나 문장이 대단히 잘 씌어진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침어낙안沈魚落雁’은 미인을 보고 물 위에서 놀던 물고기가 부끄러워서 물속 깊이 숨고 하늘 높이 날던 기러기가 부끄러워서 땅으로 떨어졌다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인의 용모를 이르는 말입니다.

계몽편啓蒙篇이라고도 하는 조선시대 우리 민족의 어린이 기초학습 교재인 추구推句에도 기러기에 대한 표현이 있습니다.


● 風驅群飛雁月送獨去舟 풍구군비안월송독거주 : 바람은 떼지어 나는 기러기를 몰고, 달은 홀로 가는 배를 보냄.

● 東西日月門南北鴻雁路 동서일월문남북홍안로 : 동과 서는 해와 달의 문이요, 남과 북은 기러기의 길임.

● 春北秋南雁朝西暮東虹 춘북추남안조서모동홍 : 봄에는 북으로 가을에는 남으로 가는 기러기요, 아침에는 서쪽에서 저녁에는 동쪽에서 빛나는 무지개임. 

마지막으로 속담보고 마칩니다.


● 기러기는 백년의 수를 갖는다 : 천한 새도 그만큼 오래 사는 것이니, 얕보고 함부로 굴면 안 된다는 말. 

● 물 본 기러기 산 넘어가랴 : 그리운 사람을 본 이가 그대로 지나쳐 가 버릴 리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물 본 기러기 꽃 본 나비 : 바라던 바를 이루어 득의양양함

(물 없는 기러기 : 쓸모없고 보람 없게 된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참)새망에 기러기 걸린다 : 정작 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되지 않고 다른 일이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어미 본 아기 물 본 기러기 : 언제 만나도 좋은 사람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 제비가 기러기의 뜻을 모른다 : 평범한 사람은 속이 깊은 사람의 뜻을 짐작할 수 없다는 말. 

● 짝 잃은 기러기 : 몹시 외로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홀아비나 홀어미의 외로운 신세를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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