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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Jan 29. 2021

일반인문 CLV 대통령? President?

; 국가수반 호칭의 再考

대통령大統領과 통령統領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 중 하나가 ‘대통령’일것입니다.

당연히 아무런 저항없이 자연스레 불려지는 단어죠.


대통령 大統領 | 명사. 법률.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의 원수. 행정부의 실질적인 권한을 갖는 경우와 형식적인 권한만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전자에 속한다.

전 고려대학 함성득 교수(알선수뢰협의로 실형, 퇴직)는 그의 저서 ‘대통령학’에서 '대통령'이라는 말을 한국이 가장 먼저 사용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식 한자를 설명할 때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것이 바로 이 '대통령'이라는 용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령’이라는 벼슬이 있었고, 청나라에서는 갑신정변 당시 조선에 진주한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상관이었던 우창칭(吳長慶)의 직위가 바로 이 '통령(統領)’으로 지금의 여단장급 직위 였습니다.


의정부(議政府)에서 병조(兵曹)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함길도(咸吉道)에 신설(新設)한 부거현(富居縣)의 정군(正軍) 1백 명에 통령(統領)이 없을 수 없사오니, 청하옵건대, 다른 변읍(邊邑)의 예(例)에 의하여 천호(千戶) 한 사람과 백호(白戶) 두 사람을 두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영선(領船) : 조운선(漕運船) 1척 안의 조졸(漕卒)을 거느리는 우두머리. 10척에 통령(統領) 1인, 30척에 천호(千戶) 1인을 두었음.

-조선왕조실록


통령2 統領 | 명사. 1. 일체를 통할하여 거느림. 또는 그런 사람. ≒통리. / 2. 역사.조선 시대에, 조운선 10척을 거느리던 무관 벼슬.


일본에서 ‘통령'이라는 용어는 고대 시기부터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무문(武門)의 통령', '사무라이 무사단의 통령' 등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우두머리'라는 군사적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阿蘇氏 武家의 통령이 되었다"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군사적 수장이나 씨족의 족장을 의미하는 용어로 매우 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여왕용(女王龍)의 신화 등에서도 그 여왕용을 수행하는 기사를 '통령'이라고 칭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신사(神社)를 수호하는 신(神)으로서의 '대국주신 통령(大國主神統領)'이라는 말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직위를 설명하는 번역어로 이용해왔는데,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의 두령 ‘송강(宋江)’을 지칭하고 있고, 로마 시대의 '집정관(consul)'이라는 직위도 '통령'이라고 번역하며, 십자군전쟁 당시 '46대 베네치아 통령'이라고 부르고 있고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통령'에 취임하여 '통령정부'를 구성했다는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통령'이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해 왔습니다.


일본은 1853년 필모어 대통령의 친서 번역본에서 ‘president'를 번역하면서 자신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통령'이라는 용어에 큰 나라 미국을 예우한다며 "큰 대(大)" 자 한 글자를 더 붙여서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만든 것입니다. 

일본국어대사전에는 1852년에 출간된 ‘막부 외국관계 문서지일(文書之一)’에서 처음 출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부 말부터 메이지로의 전환기에 입헌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한 ‘가토우히로유키 加藤弘之(かとうひろゆ)’의 1860년 저서 ‘인초 隣草(となりぐさ)’에서 ‘president’를 ‘대통령으로 번역 하고 있습니다.


故に萬民の中にて有德にして才識萬人に勝れ,人望尤も多き者一人を推し,年期を以て大統領洋名プレシデントとなし, 以て牧民の責に任じ……

그 때문에 만민 가운데 유덕하고, 재주와 지식이 만민에서 뛰어나며, 인망이 가장 많은 자 한 사람을 밀어, 연한을 두고 대통령, 서양이름으로 프레시덴트을 삼고, 이로써 목민의 책임을 맡기며…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이헌영이 여행보고서로 작성한 '일사집략(日槎集略)'에 ‘대통령’에 대한 기록이 나타납니다. 

新聞紙 見 米國 大統領 卽 國王之稱 被銃 見害 云 신문지 견 미국 대통령 즉 국왕지칭 피총 견해 운

(신문을 보니 미국 대통령─국왕을 말한다─이 총에 맞아 해를 입었다고 한다)

1881년 7월 2일 미국 대통령 가필드 (James A. Garfield)가 총격을 당한 사건을 일본에서 신문을 통해 본 것입니다.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이헌영은 이를 국가의 최고지도자인 국왕으로 파악했던 것이죠. 

일본에서 수입된 이 '대통령'이란 단어가 국어에 수용된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大朝鮮國君主 大美國伯理璽天德 並其商民....대조선국군주 대미국백리새천덕 병기상민....


1883년 체결된 한미조약에는 'president'의 중국식 음차형 '伯理璽天德(백리새천덕-우두머리 伯, 다스릴 理, 옥새 璽, 그리고 임금의 덕을 가리키는 天德을 썼으니 민주국가의 지도자보다는 제왕에 어울리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1892년부터는 '백리새천덕' 대신에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大統領 대통령. 

한자대로 풀면 ‘백성을 다스리는 최고 우두머리’로 왠지 전제군주 냄새가 풍기는 듯 합니다. 


앞(pre)에 앉는(sidere) 사람.

'president'는 원래 'preside(회의를 주재하다, 의장으로 행하다)'로부터 유래된 용어로서 '여러 가지 단체의 장(長)'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당시 미국이 굳이 이 용어를 사용한 까닭은 시민혁명을 거쳐 유럽과 달리 신대륙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자긍심을 가졌던 미국으로서 권위적이고 민중 위에 군림하는 성격을 지닌 '황제'나 '왕'이라는 용어 대신 민주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레지던트가 나라의 최고권력자를 가리키게 된 건 1787년 미국, 헌법제정회의 산하 세부검토위원회가 미합중국 행정수반을 President라 했습니다. 

처음엔 앞에 ‘전하’라는 His Highness를 붙이려 했으나 하원의 반대로 Mr. President가 된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제시된 ‘대통령' 용어의 대안으로, 우선 임시정부의 원수(元首)로 사용되던 '國務領국무령(; 1926년 12월,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국무령에 취임한다)'이나 '主席 주석(; 1932년 9월,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한다)'이라는 용어가 1차적 고려 대상으로 떠오를 수 있으나, 'president'의 본래 의미와 가장 가까운 '주석'이라는 호칭은 워낙 '김일성 주석' 등의 이미지로 굳어져 있는 약점이 있기는 합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대통령’이라는 용어의 대안을 정확하게 마련하는 일은 향후 모든이들에게 남겨진 과제일것입니다. 

향후 민족의 통일을 성취한 이후 통일국가의 국가수반의 호칭에 대한 준비라는 측면에서도 이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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