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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y 21. 2021

일반인문 CLIX The Three Question

; 깨달음을 주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이오네스코드

비가 좋습니다.

세상을 씻어내리는 기분이 좋고 차분히 내려앉은 마음이 좋습니다.

커피향으로 불랜딩하는 과하지 않은 비릿함도 좋습니다.

50대로 접어든 톨스토이는 무기력한 절망감에 빠져 듭니다.

러시아 대문호로 칭송받으며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불후의 명작을 썼던 그는 어쩌면 고골이나 푸시킨, 셰익스피어, 몰리에르에 스스로를 비추며 방황하게 된것인지 모르겠습니.

그의 저서 '고백론'에서 자살충동까지 느꼈다고 말하고 있는것을 보면 불현듯 감기처럼 우울증의 늪은 사회적 성공과 명예, 가족과 친구까지 다 가진 사람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는것인가 봅니다.

톨스토이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현실 속 우리 역시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던질 수 있는 아주 사소한 물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삶의 진리를 찾기 위해 은사를 찾아간 왕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왕은 내게 필요한 시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과 무슨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지를 늘 알 수 있다면 좋을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알려 주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온 나라에 선포했다.


왕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왕을 보살피는 의사입니다.

왕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병사입니다.

왕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학자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대답으로 학자들이 답을 하지만 왕은 어느 말에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해답을 찾고 싶었던 왕은 지혜롭다고 널리 알려진 은사를 찾아가 물어보기로 합니다.


‘현명하신 은사님, 저는 세 가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이렇게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왕은 세 가지 질문에 은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손바닥에 침을 뱉어 바르고는 또다시 밭고랑을 파기 시작합니다.

왕은 밭고랑을 두 군데 정도 파고 나서 은사에게 다시 물었지만 이번에도 은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또 다시 밭고랑을 파고나서 다시 은사에게 묻자 그때 은사가 말합니다.


‘저기 누눈가가 달려오는군. 자, 누구인지 두고 봅시다.’


털복숭이 남자가 달려와 러졌고 왕은 그의 옷을 벗기자 그의 몸에는 심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왕은 남자의 피를 닦고, 그를 치료 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남자가 깨어나서 왕에게 용서해 달라고 말합니다.


‘페하는 저를 모르실지 모르지만 저는 폐하를 압니다요. 제 형을 처형하고 저의 전 재산을 몰수한 사람이 바로 폐하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폐하에게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었고, 폐하를 쫒아 왔지만 폐하의 호위대를 만나 그들을 피해 달아나다 다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이 자신을 치료해준 것에 고마워 용서를 빌고 충성을 맹세했고 왕은 그를 용서하며 그에게 의사를 붙여주고 그의 재산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왕은 떠나기전 은사에게 다시 질문하자 은사는 이미 대답을 했고 왕은 답을 얻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나 대신 밭고랑을 파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고 생각해보시오.

피를 흘리며 우리에게 온 남자는 아마도 당신을 해쳤을 것이오.

이것이 첫 번째로 질문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대한 대답이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나라고 말해주겠소,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도와준 것이었소.

고로 나를 위해 선행을 베푼 것이 당신이 한 가장 중요한 일이었소.

기억하시오.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말이오.

왜 지금이 가장 중요하겠소? 우리는 오직 '지금'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오.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우리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말이지요.

또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있는 그 사람에게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이지요.


Here and Now

지금, 여기라는 명제는 오랫동안 회자되며 강조되는 말이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 예일대 교수, Henri Nouwen 헨리 나우웬은 그의 저서에서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염려를 떨쳐버려야 현재를 잘 살 수 있다며 지금을 즐겁게 살아야 행복하며 지금은 바로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의 저자 스펜서 존슨도 하늘이 주신 선물은 흘러간 과거도 불확실한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이라고 했습니다.

과거는 후회이고 미래는 상상으로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존경했던 노예출신 철학자 Epictet 에픽테토스는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을 해야 한다.

현재만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

지금이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보편적인 진리여서 쉽게 잊히기도 한다.

우리는 그 진리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비 비린내 시나브로 퍼지는 사이로 흐르는 커피향속에 내게 던져야 할 질문을 어른동화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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