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 break...조지훈의 사모

; 홀로 출근한 사무실에서

by Architect Y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시에 대해 함께 나눌수 있는 이가 많지 않아, 글을 올리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 출근한 사무실에서 청소를 하고 환기를 시키고 커피를 내리며 음악을 듣습니다.

살아오면 사랑의 아픔을 겪지 않은 이가 있을까요.

저 또한 7, 8년이라는 시간을 아픈 사랑으로 힘들었습니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때문이었을까,

이 시는 전문을 외우고 있는 20여편의 시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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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님의 ‘사모’는 특별한 시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48세의 짧은 삶을 살다간 시인의 생전 그 어떤 시집에도 수록되지 않은 작품이죠.

사후에 육필 원고를 정리하던 중 발견한 유작으로서 훗날 잡지 등에 인용되면서 알려졌습니다.

‘지조론’과 ‘승무’등의 조지훈님 시에 익숙한 비판적 지식인의 면모, 반듯한 선비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결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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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봐도 조지훈님 스타일의 노래는 아닙니다.

조지훈님의 시에서 느껴지는 색과 더불어 오랜시간 그를 바라보게 했던것은 ‘식도락’과 ‘애주가’라는 컨텐츠 일것입니다.

그의 ‘開春宴 개춘연’잔치에 대한 글과 ‘酒道有段 주도유단’이라는 글은 여러번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올립니다.


술을 좋아하기에 이 시에서도 마지막 부분에서

떠난 너를 위한,

영원한 사랑을 위한 ,

그리고 초라해진 나를 위한,

이 모든걸 정하신 하나님을 위한 넉 잔의 술을 마시겠노라고 토로한 구절은 우리를 소녀적 감성에서부터 황혼의 감성까지 녹여내고 있습니다.


아내 버지니아 클렘을 병으로 잃고 그녀를 애도하며 쓴 비가이며 마지막시인 애너밸리는 아무리 오래 기다리고 오랜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해도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이해한다 해도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사랑이라는 ‘사모’와 유사한 결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 Edgar Allan Poe 에드거 앨런 포의 절절한 ‘Annabel Lee 애너밸 리’라는 시도 좋아 합니다.


아주 여러 해 전 바닷가 어느 왕국에

당신이 아는지도 모를 한 소녀가 살았지.

그녀의 이름은 애너벨 리─

날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일밖엔 소녀는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았네.


바닷가 그 왕국에선 그녀도 어렸고 나도 어렸지만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하였지.

천상의 날개 달린 천사도그녀와 나를 부러워할 그런 사랑을.


그것이 이유였지, 오래전, 바닷가 이 왕국에선

구름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했네.

그래서 명문가 그녀의 친척들은 그녀를 내게서 빼앗아 갔지.

바닷가 왕국 무덤 속에 가두기 위해.


천상에서도 반쯤밖에 행복하지 못했던 천사들이 그녀와 날 시기했던 탓.

그렇지! 그것이 이유였지(바닷가 그 왕국 모든 사람들이 알 듯).

한밤중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그녀를 싸늘하게 하고 나의 애너벨 리를 숨지게 한 것은.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훨씬 강한 것

우리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그래서 천상의 천사들도 바다 밑 악마들도

내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떼어내지는 못했네.


달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지 않으면 비치지 않네.

별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을 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네.

그래서 나는 밤이 지새도록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신부 곁에 누워만 있네.

바닷가 그곳 그녀의 무덤에서─

파도 소리 들리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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