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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Sep 15. 2021

일반인문 CLXXI 일본의 굴레

; 타인의 눈으로 안에서 통찰해낸 일본의 빛과 그늘

2019년 '노 재팬', 2021년 '동반자'에서 '이웃나라'로의 격하.


책임감으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무책임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나라.

우리나라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그것을 모른체 하고 있는 나라.

오히려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1274년 칭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칸 1차 일본정벌

1281년 (1276년 남송함락, 한족제거 후) 2차 일본정벌.


몽골군 무패의 신화를 일본이 끝냈다는 점에서 몽골의 패배는 세계적으로도 물론 파급력이 있는 사건이지만 일본 내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은 일본인이라는 자의식을 강화시켰다. 두번이나 적선을 침몰시킨 위대한 태풍은 글자 그대로 신선한 바람이라는 뜻의 가미카제かみかぜ (神風)라고 불렀고, 이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자살특공대에게 다시 쓰리게 된다. -본문 중

태가트 머피라는 미국인이 쓴 ‘일본의 굴레’라는 두툼한 인문서가 있습니다. 

강력하게 와 닿는 부제는 책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Japan and the Shackles of the Past by R. Taggart Murphy, 2014, Oxford University Press. 

한국어판은 윤영수와 박경환의 번역으로 2021년 글항아리에서 출판.


타인의 눈으로 안에서 통찰해낸 일본의 빛과 그늘. 


천황(天皇)은 군주보다는 종교지도자에 가까와 막부시대 쇼군(征夷大將軍)이 황제역할을 수행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를 사카모토료마(坂本龍馬)가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면서도 권력을 국민이 아닌 천황에게 돌려주는 형식으로 집권하였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의 권력은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치인에게 귀속되는 외형을 띄고, 관념적으로는 신성한 천황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그 둘 다 아닌 전문가집단인 관료가 실질적 권한을 가졌습니다.

결국 유신 세력이 그토록 강력하게 원했던 서구화에도 불구하고 입헌정치-법치주의가 앙상한 외양만 존재하는데 불과하게 된 새로운 모순이 더해졌습니다.


도조히데키도 히로히토도 아닌 핵심 전범이 없는 2차 세계대전의 궁극적인 원인은 권력을 탈취한 사람들의 손에 권력이 집중된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권력이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는 데 있었고, 이는 현대 일본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지금도 일본은 의원내각제라는 잘 발달된 정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사실상 잘하든 못하든 정권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고(판볼페렌의 ‘책임없는 정치’)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러할 것입니다.

에도(지금의 토쿄)는 18세기 초 에도 인구는 백만으로 당시 세계 최대였고, 오사카(50만)와 교토(20만)는 런던이나 파리와 유사한 규모였다. 뿐만 아니라 지방의 번주(藩主)인 다이묘(大名)를  에도를 머무르게함으로써 각 번에 재정적 부담을 가하고, 볼모를 잡아두기 위한 さんきんこうたい 산긴코다이(참근교대)의 영향으로 도로, 숙박, 운송, 해운과 항구 등 산업 기반이 발달했고 메이지유신을 통해 경제 분야에도 주식회사, 유한책임 은행, 귀금속 기반 화폐제도 등 서양 제도가 급속히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상인들은 서구의 경제적 실권을 쥐게 된 상인이나 지주 계층이 가진 재산권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단지 에도 시대 막부의 동조자로 만족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재벌(ざいばつ 財閥)이 만들어지면서 재계가 강력한 힘을 갖고 관료를 견제하기도 하였지만, 종전 이후 재벌 해체와 けいれつ 게이레츠(系列; 기업집단)로의 변신을 통해 경제관료의 지배를 받는 기구로 재편되었고 나아가 경제관료 못지 않게 권한이 강했던 군과 내무성 역시 미군정에 의해 해체되면서 경제관료의 독주 시대가 열렸습니다.

일본 경제가 왕과 귀족에 대항한 자산가들이 스스로 주도한 혁명이 부재했던 것처럼, 중국도 이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겉모습은 유사하지만 서구 경제의 형태와 다른 길(발전의 깊이와 폭의 한계)로 가고 있다는것을 말합니다.


일본이 한국을 합병했던 일을 미국의 하와이 합병과 비교한 것, 현대 일본이 한국을 가난한 친척처럼 여겼다는 이야기, 민감한 위안부 문제나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복잡한 심리를 풀어헤친 부분, 한국 회사들이 일본 회사들을 앞지르고 있는 이유에 관한 내용, 그리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은 이웃국가로서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던 구절등의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들이 의미 있는 것은 저자가 지한파 또는 친한파가 아닌 철저한 제3자의 시각에서 내용을 이어갑니다.

저자는 아무래도 지일파 미국인쪽이기는 하지만 일본과 미국에 대해서도 무척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동안 ‘아, 이것이 해외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해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제국을 운영했던 경험도 없고, 식민지와 내전이라는 비극적인 현대사를 겪은 경험도 있어 단일민족으로서 가져온 오랜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고 자라는데 그런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책응 자기 객관화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하기도 합니다.


어디선가 한번쯤은 보았을 '가츠시카 호쿠사이' 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Sous la grande vague au large de la côte à Kanagawa’로 장식한 표지에서 그 임팩트가 손을 뻗어 집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저자의 역사에 대한 통찰은 일본과 직접 교류하든 아니든, 앞으로 직면하게 될 수많은 우리의 굴레에 대해 최소한 고민의 출발점은 제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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