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chitect Y Oct 06. 2021

일반인문 CLXXIII 재신론 Anatheism

; Returning to God After God

홀로코스트 이후, 히로시마 이후 ... 신을 말하는 것은 우리가 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 한 전부 모욕에 불과하다.

-본문 중


오랜만에 철학적 종교서적을 골랐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희생당한 일을 보고도 침묵하는 신에 대한 회의 이후, 우리는 다시 신을 믿을수 있을까라는 의문 속에 침묵만을 강요하는 종교, 니체와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신의 죽음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궁굼증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유독 심각한 대한민국 개신교의 교조적 유신론과 이에 반해 일어난 소위 우리나라 전통의 전투적 무신론을 중재(?)할 제3의 길을 제시해 줄것 같은 책, Anatheism 재신론(Richard Kearney).

제목부터 생소한 Anatheism 재신론의 접두어 Ana는 ‘본래대로 다시, 새로이’라는 뜻(간추린 옥스퍼드 영어사전)으로 신과 신을 믿는 신앙을 다시, 또 새로이 사유하는 사유와 실천의 운동을 이야기 합니다.

카니는 서구 사회에서 오랫동안 패권적인 지위를 누린 모든 것의 신(Omni-God), 곧 전지 (全知 Omniscience), 전능(全能 Omnipotence), 무소부재(無所不在, Omnipresence)의 신,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모든 것에 존재한다는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신개념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또 새로이 신을 사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재신론은 철학, 신학, 문학, 실천을 가로지릅니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의 경전을 새롭게 해석해내고, 안네 프랑크보다 1년 반전 아우슈비츠에서 스물아홉 살에 죽은 네덜란드 유대인 Etty Hillesum 에티 힐레숨, 교회 투쟁에 실망하고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했다 처형된 독일의 신학자 Dietrich Bonhoeffer 디스트리 본회퍼, 반나치 운동 등에 참여했던 철학자이자 ‘인간의 조건’의 저자, Hannah Arendt 한나 아렌트, 프랑스의 철학의 맥을 계승하는 철학자로 유한성으로 초월적 존재인 신을 해명하려고 한 Paul Ricoeur 폴 리쾨르, 타인에대한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한 프랑스 철학자 Emmanuel Levinas 엠마누엘 에비나스, Jacques Derrida 자크 데리다 등 홀로코스트 이후 철학자들의 논증을 재신론적으로 전유하고 발전시킵니다.


그리고 유명 소설가와 시인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유신론과 무신론을 가로지르는 재신론적 상상의 산물을 발견하고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삶에서 이방인을 환대하는 삶을 몸소 보여준 Mahatma Gandhi 마하트마 간디나 카톨릭 시민 운동가, Dorothy Day 도로시 데이의 삶과 사상을 쫒아가면서 행동으로 몸소 재신론을 실천한다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봅니다.

이전의 신은 현실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저자가 다시 사유한 새로운 신은 이방인으로서의 신입니다.

신은 그저 이방인으로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존재를 보증받는 것이 아니라 마치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라는 내기에 동참했고,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에 굴복하여 비로소 새로운 신앙을 얻었던 것처럼 이 신에 환대로 응답하는 나의 ‘wager 내기’와 더불어 신으로 받아들여 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새로운 신을 제시하기 위해 자신이 비판한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개념에 의존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자신과 서구인들이 속한 아브라함 종교−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유일신 전통의 이야기에서 예외 없이 이방인으로서의 신이 등장한다는 점을 포착하는 해석학적 정당화를 시도합니다. 

우리가 사유해야 할 신은 이방인인 타인이고, 이 타인에 환대하는 내기를 거는 신앙이 새로운 신앙의 모형인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도 이방인으로 차별받는 자, 가난한 자와 같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

(마태복음 25:40)’이라는 메시지는 꼭 아브라함 종교만이 아니라 불교와 힌두교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보스턴대학의 석좌교수이자 왕립 아일랜드 아카데미 회원이며, 출판사의 소개 상 ‘현존하는 가장 탁월하고 통찰력 있는 종교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철학자, Richard Kearney 리처드 카니는 어쩌면 시대 착오적일지 모를 'Divine 神聖’을 선택한것은 ‘주인-주체’에게 요청하기때문일것입니다.

낯선 타자의 도래와 함께 주체의 책임 문제가 함께 제기된 것입니다.


늘어가는 외국인 노동자, 여성, 소수자 혐오에 갇힌 우리 사회 앞에 타인에 대한 환대 혹은 적대라는 선택지는 거부할 수 없는 도전이고 환대를 통해 우리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카니의 ‘재신론’은 깊은 울림을 줄 것입니다.


가을한복판, 사비추(士悲秋; 가을을 슬퍼하는) 건축가에게 오랜만에 깊은 사유를 하게한 가을스러운 책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반인문 CLXXII Upstream 업스트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