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Z세대가 이해못하는 조급함
인터넷 동영상에서 미국 방송내용을 보고는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한국음식을 먹으며 이를 설명하는 리포터가 한국은 씹으면서 말을 해도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였지만 세계에서 우리나라 문화, 습성등을 잘못알고있는것들이 많습니다.
K-culture가 세계로 나가고 있는 지금, 그 주인공들은 빠를 생각이 없는데, 세계인들은 우리문화의 제일순위를 빨리빨리로 꼽습니다.
한국인들의 급한 성미를 상징하는 단어죠.
'빠르다'의 부사화 접사 '-이' 결합형 '빨리'가 두 번 쓰인 말입니다.
'빨리빨리 문화'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 일각에서는 한국인 특유의 강박증으로 여기며 한국인을 '빨리빨리 민족'으로 지칭하기도 합니다.
빨리빨리!
어떤 느낌으로 다가 올까요?
민첩함이 아닌 조급함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 개인적으로 빨리빨리는 유쾌하지 않은 단어 입니다.
21세기 2030 을 지나고 있는 Millennials Generation 밀레니얼 세대와 Generation Z 제트세대들은 그런 생각과 행동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문화 文化 : 명사.
1.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ㆍ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2. 권력이나 형벌보다는 문덕(文德)으로 백성을 가르쳐 인도하는 일.
3. 학문을 통하여 인지(人智)가 깨어 밝게 되는 것.
사전적의미를 본다면 다음세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을 문화라 할 수 있을까요?
빨리빨리 현상은 산업화에 따른 전세계 공통적 현상이라는 의견입니다.
노동의 패턴을 비교적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농경사회과 달리,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항상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해야 되는 '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원래 분업화된 공장 노동의 이점은 빠른 속도로, 각 노동자가 단순화된 작업을 더 빨리 해내는 것입니다.
꽉짜여 돌아가는 공장이나, 매우 밀집된 대도시에서는 더욱 신경질적인 '빨리빨리'가 나타나기 마련이죠.
서구유럽 나라들은 대부분 18~19세기부터 산업화 사회에 진입해서 산업사회에 익숙해진 지 오래입니다.
그와 달리 한국은 산업화 사회에 들어선 지 고작 수십 년 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거기에, 일제강점기의 일본인들이 느려터진 조선인들이라고 비난하고, 시간 관념이 느긋해서 느적느적 약속 장소에 오던 한국 사람들을 보고 질타했습니다. 19세기 중엽의 일본을 방문했던 서양인들도 일본인을 시간 관념을 찾아볼 수 없는, 무책임하고 느려터진 민족으로 여겼습니다.
한국에서 산업화가 한 세대 만에 급격하게 이루어져 유독 빨리빨리 문화가 두드러진다는 의견입니다.
이와함께 빨리빨리 문화가 남북분단으로 대표되는 냉전 경쟁의 영향 때문이라는 관점도 있습니다.
빨리빨리 문화의 대명사인 박정희의 경제부흥 정책과 새마을운동 등도 천리마 운동, 새벽별보기 운동처럼 당시 북한의 속도전을 이기기 위하는 방편이었다는 것이죠.
결국 빨리빨리는 해방과 전후 1세대 Baby boom generation부터 386세대까지 약 60년 정도의 2세대 특성일 뿐입니다.
전 세개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자율화라는 개념을 가지고 출발한 X세대, 주위를 조금 더 여유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Y세대, 386세대의 부모 아래 안정적인 경제를 기반으로 성장한 Y세대, 그리고 새로운 세기에 태어난 밀레니얼들에게 빨리빨리는 별 감흥이 없는, 그저 부모세대로부터 들어온 이야기 일 뿐입니다.
MZ세대들에게는 더이상 조급함의 빨리빨리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20세기 말, 심리학자 Robert V. Levine 로버트 레빈이 쓴 Geography of Time 시간의 지리학에서 31개국의 전반적인 생활속도와 걷는 속도, 우편의 신속함, 시계의 정확함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은 20위였습니다.
이는 대체로 산업발전에 의한 국민소득의 순서와 비슷해서 어떤 나라의 국민성 따위와는 아무 상관없이 산업화의 정도에 의한 것임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빨리빨리(여기서는 민첩이 아닌 조급함)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얼마나 더 발전해야 하는지 그 한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경쟁은 가장 빠른 자가 이기기 때문에 스피드, 즉 빨리빨리를 전제로 합니다.
그 조급함이 이기기위한 삶의 원리가 됩니다.
고도의 자본주의 생활이 요구하는 격렬한 리듬에 맞추어 고속으로 살고 생산 소비하는 가운데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주마등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그 잃어버린 것을 또 다시 빨리빨리회복하려고 합니다.
해결책이자, 지금의 2030의 몸에 밴, 느림은 막연한 타협이나 안이한 중용이나 적당한 중간을 뜻하는 진부한 게으름이 아니라는것입니다.
천천히, 느림이라는 명제는 봉건적 종속이나 식민지적 종속을 낳은 ‘둔함’이나 ‘느렸다’거나 ‘게을렀다’가 아니고, 도리어 현대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한 ‘빨리빨리’를 해독할 수 있을것입니다.
2022년 현재, 국민총생산 10위, 군사력 6위, 여권파워 2위인 나라.
풍류를 즐기며 느린게 걸었던 우리 선조들의 문화의 위치는 지금에 못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민첩한 느림은 우리가 상상하던것보다 많은것을 이뤘을지 모릅니다.
지금 Baby boom generation부터 386세대들은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고, X,Y세대는 빨리빨리의 주역인 세대와 서서히 등장하는 차세대와의 연결고리로 자연스러운 조화의 유연함을 가져야하고 MZ세대는 둔함이나 게으름이 아닌 민첩한 느림을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