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에서 4.3을 역사의 수면위로 올린 트리거
이번 제주행에 너븐숭이 기념관을 찾아서 이곳을 배경으로 쓰여진 순이삼촌 이야기를 합니다.
제주도에선 남을 부를 때는 모두 삼춘(삼촌)이라고 합니다.
순이 삼촌의 주인공은 순이의 삼촌이 아니고 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머니를 말하는것입니다.
1978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은 한국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제주의 4,3 사건을 말하려 하면 으레 속솜허라(속마음을 꺼내선 안 된다는 제주말)하며 아무도 말 못하던 시절, 모두가 침묵하던 시절 금기를 깨고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사대부고에 출근한 현기영은 수업 중 중부경찰서로 연행, 며칠 뒤 합동수사본부 요원에게 인계돼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2박3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합니다.
첫날은 몽둥이로 전신을 난타 당하고 이튿날은 그 멍들고 부은 몸뚱이 위 군복을 벗기고서 내복 위로 싸릿대 가지를 후려치면서 내 몸 마디마디를 자근자근 후려갈겼다고 합니다.
싸릿대로 손등을 맞기도 했는데 손톱이 터져 끈끈한 피가 엉겨 붙기도 했습니다.
셋째 날은 어느 방에 불려가 다수의 수사요원들로부터 무지막지한 구둣발 세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렇다 할 꼬투리를 잡아내지 못한 채 다시 남부경찰서로 인계된 현기영은 집시법 위반죄로 20일간 유치장에서 머문 뒤 풀려납니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현기영은 또다시 학교 수업 중 경찰서의 대공과로 연행돼 갔습니다.
4박5일에 걸친 수사관들의 집요한 신문 공세는 계속되고 순이 삼촌은 판매금지 됩니다.
당시 금서는 600여 종으로 금서에 오르면 곧 베스트셀러 오르는 것이죠.
1990년 해금되자 순이 삼촌은 60만 권 팔려 나갑니다.
소설은 한국문학사와 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쳤고, 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의 첫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책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지내던 나는 음력 섣달 열여드레인 할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8년 만에 고향인 제주 서촌마을을 방문합니다.
7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까지 일본으로 떠난 뒤 지금까지 오지 않아 고아로 지내다시피 한 내게 제주도는 상처만이 남은 곳입니다.
제사를 지내고 난 뒤 몇 달 동안 집안일을 도와준 먼 친척 아주머니, 순이 삼촌(제주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어른을 남녀 구분 없이 삼촌이라 부른다)이 보이지 않아 잦은 환청과 불안증세(삼촌의 증세가 파출소 사건 이후로 생긴 걸로 생각)로 인해 사회생활이 어려웠던터라 길수 형에게 물었더니 며칠 전 순이 삼촌이 옴팡밭에서 음독자살을 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순이삼촌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30여 년 전의 참혹한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순이삼촌의 파출소 기피증은 30여 년 전의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회상……
30년 전인 음력 섣달 여드렛날, 갑자기 군경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모이라고 안내방송을 합니다.
그 뒤 안내방송을 듣고 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이자 군경들이 전부 친척 중에 군인이 있는 가족들은 나오라 명한 뒤 가족이 없는 이들을 전부 교문 밖의 공터로 끌고 가 마구잡이로 총살했습니다.
이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는 순이 삼촌 뿐이었으며 그녀 역시 뱃속의 딸을 제외하고 그 총격에서 남편과 쌍둥이 남매를 잃는 참변을 겪었습니다.
순이삼촌은 그후 경찰에 대한 심한 기피증이 생겼고, 메주콩사건으로 결벽증까지 생겼으며, 나중에는 환청증세도 겹치게 된 것입니다.
평생 그날의 사건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순이삼촌은 자식이 둘이나 묻힌 그 옴팡밭에서 사람의 뼈와 탄피 등을 골라내며 30년을 과부로 살아오다가 그날의 일을 환청으로 듣게 되고, 마침내 그 살육의 현장에서 꿩약을 먹고 자살을 하게 된것입니다.
그 죽음은 이미 30년 동안 해를 묵힌 운명이었고 삼촌은 이미 그 때 숨졌던 인물이며 그 상처가 30년의 기나긴 시간을 보낸 뒤 비로소 가슴 한복판을 꿰뚫어 당신을 죽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길수 형은 이 사단은 국가 전체에서 조사하고 배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고 고모부는 그냥 덮어두자고 하여 잠시 심한 언쟁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후 농사일이야기가 이어집니다…
4.3 항쟁의 생존자들은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순이삼촌들입니다.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제주 4.3 사건의 참상이 알려지기 전인 1978년으로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작가는 집필에 앞서, 여전히 공포에 짓눌려 있던 북촌리 주민들을 찾아 설득부터 해야 했습니다. 당시 제주도민 10분의 1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이 희생됐어도,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감히 말하지 못했던 기막힌 사연들… 4.3을 다루기만 해도 고초를 겪어야했던 시절, 고향 제주에서 벌어진 이 압도적인 비극을 작가는 끝내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목숨을 건 고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됐지만, 제주 방언을 활용한 풍부한 묘사와 섬세한 표현력으로 문학성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순이 삼촌의 목적은 4.3의 참상을 알리겠다는것 뿐아니라 제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위함이기도 합니다.
왜 하필 제주에서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가.
제주로 이주하려는 이들이 배타적인 섬주민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만 그 중심에는 육지에서 보인 제주를 향한 편견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동시대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몇해 전 가슴으로 안아야 하는 제주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일이 있습니다.
대충 몇번 방문한 사람들은 제주를 다 안다고들 하지만… 그들 안을 들 여다 보지 않고는 결코 제주를 알 수 없습니다.
제주는 원래 한반도에 속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탁라는 662년 신라의 속국이 되기 전까지는 독립국가.
925년 독립, 1105년 다시 고려의 속국.
1273년 삼별초의 난 이후는 원나라 속국.
1367년 다시 고려 속국.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나 사용하는 척박한 섬.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제주도에 일본군 6만여 명 주둔.
종전 직후 일본군이 철수하자 외지에 나가있던 제주인 6만여 명 귀환.
그리고 4.3 항쟁.
제주의 인문학과의 연결은 타지역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역적 성향이 강하고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우직하지만 잔잔하게 제주만의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척박한 땅이라 역사적인 발전적 투자나 개발도 없었습니다.
중앙 정부로의 진출 또한 지역적 단점으로 한계상황이었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육지 사람 싫어하는게 당연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