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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07. 2022

同行, 濟州

; 잃어버린 10년 풀어내기 여행

동행 同行 

1. 같이 길을 감.

2. 같이 길을 가는 사람.

3. 부역(賦役)에 함께 감.

4. 불교. 불교의 수행이 같음.


출장 왔다 합류한 대학친구 부부와의 짧고 긴 여행을 시작합니다.

첫 저녁은 돔베고기로 시작합니다.

호근동

돔베고기하면 첫번째로 떠오르는 곳이 호근동입니다.

서귀포 내륙에 있는 동네 지명이 아니라 호근동 출신 할머니께서 20년 하는 제주 시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음식점입니다.

한점 집어서 아무런 간을 하지 않고 먹으면 흑돼지 특유의 향이 올라오면서, 일반 보쌈보다는 조금 딱딱하지만 쫄깃한 식감이 기분좋게 입안에서 고기를 씹을 수 있게 해줍니다.

살짝 소금을 찍으면 고기에 간이 첨가되어 새우젓으로 먹는것 보다는 더 육향을 살리면서 먹을 수 있고, 함께 나온 멜젓을 찍어 먹는 것도 흑돼지 구이에 멜젓을 함께 먹는 것 만큼이나 제주도스러운 맛이 나서 좋습니다.

이어 이전 확장한 

일통이반.

이전하기전에는 서너평 남짓한 공간에서 두분이 테이블 3개에 합석한 북적거리는 손님을 맞이 했던 곳입니다.

제주에 몇분 안되는 해남이 채취한 그날, 그날의 해산물이 안주로 올라오던곳.

그 정취는 사라졌지만 돌멍게의 바다향에 소주 한모금을 입안으로 털어 넣으면 제주가 됩니다.


부드러운 순두부로 아침을, 

순수한 둠비


자매국수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직접 만들어 파는 손두부 도민맛집, 순수함 둠비(두부의 제주어)


화학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100% 제주산 콩을 사용해 맷돌로 마쇄한 후 전통방식 그대로 가마솥을 사용하여 응고시킨다고 합니다.

콩을 갈아서 콩가루를 짜내던 방식 그대로. 

기계로 물기를 짜는 것도 가능 할 것 같은데 아직도 부분적으로는 전통 방식 그대로 약간 레트로 감성이 묻어나는 과정으로 얇은 망을 통해서 보자기로 두부 뭉치를 걸러 냅니다.

몽글몽글 두부, 좀더 응고되면 된장찌개용 두부, 덜 응고되면 순두부…

정말 고생이 들어가고, 노력이 들어가야만 완성되는 결과물입니다.

밑반찬. 전부 기본은 하는 맛입니다. 

정식으로 주문 했습니다.

주메뉴는 단품메뉴들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순둠비로 정했습니다.

아주 단백한 수제 순두부 입니다.

찬은 한정식집에서 나오는 음식처럼 아주 정갈하게도 보였지만 정말이지 정성이 가득 들어가 있네요.

둠비 떡갈비는 느끼하지 않은 담백합니다.

두부말이는 예쁘고 깔끔한 맛인데 촉촉한 두부와 아삭한 채소들의 밸런스가 좋네요.

수제 마른둠비에 빵가루를 입혀 만들어 겉바속촉의 정석을 맛보여주는 둠비카츠.

간장둠비는 얇은 두부 위에 얇게 오이를 채썰어 소스는 흑임자 소스 드레싱을 사용했는데 고소한 맛에 심심한 식감을 대신할 아삭한 오이의 삼박자가 두부와의 페어링이 좋습니다.  

카나페는 새우와 함께 올렸습니다…아는 맛이죠

이제 제주를 숨쉬러 곶자왈로 갑니다.

오랜 시간을 걸었던 

동백동산, 선흘곶자왈

동백동산 곶자왈습지입니다. 

곶자왈이란 제주도 생태를 책임지는 제주의 허파지역이라고 보시면됩니다. 

연중 기온도 일정하고 희귀 습생을 가지고 있는곳. 

람사르 습지 Ramsar wetlands. 

전 세계를 대상으로 습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람사르협회가 지정, 등록하여 보호하는 습지죠. 

대암산으로 시작된 국내 람사르습지는 모두 18곳. 

그중 제주가 품고있는 람사르습지는 4곳. 

2007년 시발점이된 제주 물영아리오름습지로, 

제주 물장오리오름습지, 

제주 1100고지습지, 

여기에 마지막 2011년 된록된 동백동산습지. 

동백동산은 1971년 제주문화재보호 10호로 지정된 생태보호습지이기도하고 동백나무가 많아서 동백동산이라하지만 상록수림과 상존하는 곳자왈이기도하고 최근 100여년전 적거지가 발굴되기도하였습니다.  

원시림이라는 특성상 이곳도 4.3에서 벗어날수없는 아픔을 간직하고있습니다.

군경이 해안마으로 소개했지만 농사철이고 마소들이있기에 곳자왈내 동굴에 피신하였다가 적발되어 함덕으로 또는 동굴밖에서 처형을당한 아픔이있는곳이기도합니다.

한참을 원시림에 취해걷다보면 만나게되는 먼물깍이란곳은 기온이 일정하니까 한겨울에도 얼지 않습니다. 

거의 평지에 가깝고 숲이 너무 아름다운곳.


십년지기 서귀다원과 비밀스런 10년을 이야기로 녹여낸 나원회포차


서귀다원

서귀다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기기묘묘한 제주 현무암이 사열한 녹차밭 사잇길을 지나면 운치있는 삼나무길이 이어집니다.

길 끝에 앉은 아담한 다실에는 팔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세월을 맞이하시고.  

할아버지의 칠순기념으로 일본의 가고시마로 여행을 갔다가 그곳 녹차밭에 반해 15년 전 시작한 게 지금의 서귀다원입니다.

주변에서는 퇴직금으로 그냥 편히 살지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극구 만류했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꿈이 지금의 다원을 이룬 것이죠.

유기농을 고집한다는 서귀다원은 정갈합니다.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내려오는 도로 중산간 부분에 위치한 다원인지라 초행자의 어프로치가 쉽지 않았는데 감속차선 허가를 받아 공사 중입니다.

새롭게 측량한 내용에 대지 경계선이 잘못표시되어 울타리를 새롭게 공사 했고 이 때문에 입구 주차장이 좁아져 다원윗쪽에 주차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다실에서는 무료로 녹차를 마시는 시스템으로 바꾼다는군요.

아무래도 방문객이 많이 늘어나다 보니 이 편이 좋을듯 합니다.

응원합니다., 나의 10년지기 서귀다원.


나원회포차

나원횟집에서 나원회포차로 상호명을 바꾸면서 가격을 내려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 모두 가격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가격을 조정하였습니다.

마치 꽃이 핀 듯 가지런히 놓인 회 플레이팅이 일식집에서 상을 받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사장님이 항구에서 신선한 회를 직접 공급하여 가격이 저렴하기까지 하니 단골이 많은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5시30분 도착하니, 자리가 반이상 찼습니다.

5시 오픈 6시에 만석.

이곳의 시그니쳐는 활방어와 숙성고등어입니다.

모슬포방식으로 밥과 김에 고등어를 얹고 간장양파소스를 올리면 천상의 맛입니다.

이어 대방어를 끙끙거리며 들고 들어가서 이내 활어회 한판을 내어 주십니다.

부위별로 뱃살과 속살은 소금기름과 마른 김에 싸면 그 고소함이 한계를 열어줍니다.

등살은 깻잎에 쌈장, 고추, 마늘, 와사비를 얹고 마지막으로 묵은지를 하나 놓아 잎안으로 밀어 넣으면 이건 우리 맛이 됩니다.

한잔 한잔 기울이며 속에 감춰두었던 이야기는 이제 동행이 됩니다.

지키려고 감췄던 어둠이 세상 밖으로 나왔고 이 동행은 공간과 시학을 들춘 Gaston Bachelard 가스통 바술라르를 떠올리는 귀한 시간으로 다가 옵니다.


은희네 해장국 서귀포


세쨋날은 렌터카에 살짝 문제가 있어 10시에나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그래, 숙소에서 가까운 토평동 은희네 해장국으로 정했습니다.

고추, 물 깍두기, 김치, 다진마늘..미풍해장국과 유사합니다.

어떤 이들은 단골 식당으로 선정한 이유를 김치 맛이 좋아서 라고 말하고 있고 그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원한 깍두기의 맛은 본점보다는 덜 땡깁니다. 

매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경악할 정도로 매운 청양고추도 화끈한 속풀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감초와도 같은 존재. 

진하게 우려낸 육수라 그냥 먹어도 그만이지만, 여기에 다진 마늘을 살짝 풀어 넣으면 최고의 국물 맛을 볼 수 있습니다.

푸짐한 고기 살점과 선지, 그리고 당면, 무엇보다도 이곳 은희네해장국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콩나물.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순수 한우가 아닌 수입산 소고기를 섞어 쓴다는 점.

간혹 선지를 싫어하는 사람은 주문하면서 선지를 빼달라고 하면 됩니다.

발란스도 좋고 풍미도 훌륭하고 미풍, 모이세와 견줄만 합니다

베케


가까운곳에 차 한잔하려고 베케로 차를 돌립니다.


‘베케’는 ‘밭의 경계에 아무렇게나 두텁게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의미하는 제주말입니다. 

밭을 일구며 나온 돌들로 밭담을 쌓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나오는 돌을 밭의 경계에 계속 쌓아 올리다보니 일반 밭담보다 높고 두터운 형태의 ‘베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베케’의 성근 돌 틈 사이로 풀과 나무가 자라나고, 건조한 바람을 막아주는 돌담과 나무의 그늘이 이끼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냅니다

건축재료로는 제주 화산석과 검은 콘크리트를 사용했는데 공사에 앞서 재료를 혼합해 컬러와 강도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기존 창고 건물과 콘크리트를 시험시공한 곳에는 폐허정원을 만들었고 폐허정원의 스케일을 맞추기 위해 한 곳은 땅을 높이고 한 곳은 녹슨 스틸그레이팅으로 균형을 맞췄습니다.

억새와 수크령으로 역광이 비췄을 때 폐허정원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극대화되도록 연출했네요.


이곳은 이제 핫플이 되어 사람으로 벅적이고 인증사진을 위해 줄을섭니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공간 베케가 되기를 바랍니다.

왼쪽부터 천리향, 삼지닥나무, 동설목
왼쪽부터 만병초, 팜바스글라스, 흰말채나무


너븐숭이 기념관


1978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은 한국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제주의 4,3 사건을 말하려 하면 으레 속솜허라(속마음을 꺼내선 안 된다는 제주말)하며 아무도 말 못하던 시절, 금기였던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사대부고에 출근한 현기영은 수업 중 중부경찰서로 연행, 며칠 뒤 합동수사본부 요원에게 인계돼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첫날은 몽둥이로, 이튿날은 내복 위로 싸릿대 가지를 후려치며, 셋째 날은 구둣발 세례로 2박3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합니다.

꼬투리를 잡아내지 못한 채 다시 남부경찰서로 인계된 현기영은 집시법 위반죄로 20일간 유치장에서 머문 뒤 풀려납니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현기영은 또다시 학교 수업 중 경찰서의 대공과로 연행, 4박5일 수사관들의 집요한 신문 공세,  순이 삼촌은 판매금지 됩니다.

1990년 해금되자 순이 삼촌은 60만 권 팔려 나갑니다. 

순이삼촌의 배경이 된 북촌리 학살 사건은 1949년 1월17일(음력 12월19일) 새벽, 북촌마을 어귀 너븐숭이 비탈에서 무장대 습격으로 군인 2명이 사망하자, 함덕마을에 주둔하던 2연대 3대대 군인들이 들이닥쳐 집마다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에 집결시킨 뒤 운동장과 주변 밭에서 300여명이 넘는 주민을 집단학살입니다.

북촌의 너븐숭이에는 당시 학살당한 무고한 주민들의 넋을 기리는 너븐숭이 기념관이 지난 2009년3월31일에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4.3유적지 종합정비계획에 따라 국비 15억7900만원을 들여 총 부지 2532㎡, 건물 294㎡에 위령비, 문학기념비, 방사탑과 함께 개관했습니다.


‘너븐숭이’란 제주어로 ‘넓은 가슴’이라는 의미로, 사람의 흉곽을 닮은 현무암 지대의 모습에서 이름 지어졌습니다. 

기념관 내부의 전시관을 관람하면 4·3의 원인과 경과 등에 대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제주 출신인 강요배의 죽은 여인과 여인의 젖을 물고 있는 아기의 그림과 시 한편입니다.


수백의 죽음 속에서 살아남은 이의 내일은 또 다른 죽음 

울음도 나오지 않는 원한이 사무쳐 구천에 가득할 때 

젖먹이 하나 어미 피젖 빨며 자지러지게 울고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전시실에는 ‘순이삼촌’의 초판본을 비롯해 현 작가가 소설 집필을 위한 취재 때 사용한 녹음기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내부 전시 공간 ‘너븐숭이의 기억’에는 당시 희생된 443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걸려있습니다. 

희생자의 나이 2세, 3세... 유독 어린 아이들의 희생이 많았습니다. 

전시관에는 1947년 8월 13일 삐라 사건을 시작으로 1949년 1월 17일에 자행된 북촌리 주민 대학살과 그 날 희생된 주민들을 위해 묵념을 했다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당했던 1954년의 아이고 사건까지 믿기지 않는 역사를 소개합니다.

4·3 위령비에도 희생된 북촌의 이름들이 커다란 비에 빼곡히 쓰여 있습니다. 

‘이근평녀(女)’, ‘홍영삼자(子)’처럼 누군가의 딸과 아들일 뿐, 이름이 채 적히지 못한 이들도 많습니다. 

온가족이 희생되어 이름이 확인되지 못한 사람들이죠.

이름 몇 번 불려보지도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 아이들의 수도 많습니다. 


기념관 입구에는 ‘애기무덤’이라 불리는 20기의 작은 무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4·3 이전에도 아이들의 무덤으로 이용되던 곳인데 8기 이상은 북촌대학살 때 희생된 아이들의 묘라 합니다. 

옆으로 누군가 공들여 쌓은 돌탑과 사탕, 장난감, 양말 등이 보이는데 기념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안타까움에 두고 간 선물입니다. 

애기무덤 옆으로 조금 내려오면 옴팡밭(오목하게 쏙 들어가 있는 밭)에서 ‘순이삼촌비’와 방사탑을 마주합니다. 

비석들은 바닥에 겹겹이 쌓여있거나 나뒹굴고 있는데 비석들은 당시 쓰러져간 희생자들을 상징합니다.

순이삼촌비와 다시는 제주 4.3과 같은 액운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주민들의 마음으로 이루어진 방사탑에 간절함이 묻어납니다.

주검의 토양분이 되어 지슬도 그외 여러 밭작물도 그후로 몇년간 다른 밭보다 더 실하게 내놓았다는 밭, 그 밭에서 난 것들은 되려 꺼릴 수밖에 없었던 제주도의 아픔, 밭을 일굴 때마다 총알이나 유골을 발견하던 순이삼촌, 그이가 그 옴팡밭에서 어떤 마음과 심정이었을지 그리고 왜 그 밭에 가서 생을 마감해야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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