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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Dec 14. 2021

놀멍, 쉬멍, 꼬닥꼬닥.

; 놀며 쉬며 천천히 제주의 겨울 초입 여행

올해 마지막 제주출장 후 주말 이틀을 붙여서 느긋한 홀로 여행을 즐깁니다.

긴 내용이 될것 같아 음식은 '먹거리 역마살'에 올리고 나머지 내용을 이곳에 늘어 놓습니다.

이번에는 6개월만에 한라산을 밟았습니다.


한라산 성판악 등반


왕복 4시간 30분 예상하고 첫발을 딛으려고 했는데 첫 관문에서 막혔습니다.

사실 6시-8시 대로 예약 했는데, 작년의 경우 그 보다 30분 정도 일찍 5시 30분 산행을 시작 했는데, 이번엔 직원분들이 일찍 오셔서 정확히 6시 출발을 이야기합니다.

결국 2시간 15분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 한것이 4,50분 쳐진 출발로 틀어지는 바람에 오전 7시 27분 진달래 동산에서 일출보고 1.9km 남기고 하산했습니다.

정상이야 벌써 30번 이상 봤으니 이번엔 안봐도 상관 없었던겁니다.


일기상황이 낮은 구름대라 정상에서는 구름 아래서 위로 올라오는 일출을 볼 수 있었는데, 원칙을 지키는 부분이니 다음을 기약합니다.

덕분에 일정 하나를 추가 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어제 미리 데스크에 이야기 한대로 수건, 침구등을 미리 정리해 놓으셨네요.

10시에 호텔에서 샤워하고 반대쪽 서귀다원으로 달렸습니다.


새롭게 Renewal들어간 서귀다원


지난 10월말 대학 동기 부부와 함께 한 여행 중 서귀다원을 방문했다, 공사 중이라 되 돌아 왔는데 이번에 가보니 가오픈 상태네요.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내려오는 도로 중산간 부분에 위치한 다원인지라 초행자의 어프로치가 쉽지 않았는데 감속차선 허가를 받아 공사 중입니다.

새롭게 측량한 내용에 대지 경계선이 잘못표시되어 울타리를 새롭게 공사 했고 이 때문에 입구 주차장이 좁아져 다원윗쪽에 주차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다실에서는 무료로 녹차를 마시는 시스템으로 바꾼다는군요.

아무래도 방문객이 많이 늘어나다 보니 이 편이 좋을듯 합니다.

응원합니다., 나의 10년지기 서귀다원

역시 녹차 2포트, 황차 2포트를 퍼 마시며 몸을 힐링하고, 차 밭을 돌아보며 맘을 힐링합니다.


베케


백록담 한시간반이 베케를 방문하게 합니다.


‘베케’는 ‘밭의 경계에 아무렇게나 두텁게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의미하는 제주말입니다. 

밭을 일구며 나온 돌들로 밭담을 쌓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나오는 돌을 밭의 경계에 계속 쌓아 올리다보니 일반 밭담보다 높고 두터운 형태의 ‘베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베케’의 성근 돌 틈 사이로 풀과 나무가 자라나고, 건조한 바람을 막아주는 돌담과 나무의 그늘이 이끼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냅니다

건축재료로는 제주 화산석과 검은 콘크리트를 사용했는데 공사에 앞서 재료를 혼합해 컬러와 강도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기존 창고 건물과 콘크리트를 시험시공한 곳에는 폐허정원을 만들었고 폐허정원의 스케일을 맞추기 위해 한 곳은 땅을 높이고 한 곳은 녹슨 스틸그레이팅으로 균형을 맞췄습니다.

억새와 수크령으로 역광이 비췄을 때 폐허정원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극대화되도록 연출했네요.

이곳은 이제 핫플이 되어 사람으로 벅적이고 인증사진을 위해 줄을섭니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공간 베케가 되기를 바랍니다.


산지천 주변 탑동-산지천갤러리, 제주책방

; 놀멍, 쉬멍, 꼬닥꼬닥…산책


호텔 체크아웃하고 이제 주변을 산책합니다.

여행이죠.

탑동에는 빠르게 핫플 따라다니며 인증사진 찍는 관광으로는 볼 수 없는 잔잔함이 있습니다.


塔洞 탑동

살기를 막기 위해 탑을 짓고 祭제를 지내면서 유래되었습니다.

제방이 쌓여지기전 수심이 1m~3.5m 정도로 낮아, 공유수면이 공동어장으로 활용되었고, 간조 때 마을 주민들이 해산물을 채취하고 수영을 즐기던 곳이었습니다.

1978년에 탑동 해안도로가 개통되고, 1985년부터는 오리엔탈 호텔 신축예정지 앞에서부터 탑동 해안의 공유수면은 매립되기 시작하였고 1991년 제주시에서는 공유수면 매립지를 새로운 도시설계지구로 계획하고 전시, 문화, 체육행사를 할수 있도록 탑동광장과 테마의 거리를 만들어 1990년대에는 많은 젊은 유동인구가 탑동 주변에 몰렸습니다.

그래 20년 전만 하더라도 북적였던 구도심의 중심이었습니다.

젊은 유동인구의 소비에 맞추어 광장주변에는 영화관 카페, 페스트푸드점이 생겨나게 되었고, 1999년 이러한 소비요구에 맞추어 시네마극장은 탑동 광장 왼편(삼도2동 1261-8)에 복합영화상영관으로 1999년 개관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도내에서는 드물었던 multiplex 멀티플렉스 영화관 개념을 도입한 선구자 격인 영화관이었습니다.

2000년 중반에 들어서며 대규모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속속 입점하면서 소규모 극장들의 경영 상태는 급속히 악화되었고 2002년 시네마극장은 대규모 증축 공사를 진행하여, '바다가 보이는 극장', '연인극장'등 테마관을 짓고 편의시설을 확대하여 운영하였으나, 계속되는 재정 악화로 2005년에 폐관되었고 가을 축제때는 제주시 거리 퍼레이드의 정점이 되고 흑돼지 골목이 칠성통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제는 시청 앞 대학로로 옮겨가고 이제는 몇 되지 않는 관광객이 거니는 조용한 거리가 되었습니다.

산지천 갤러리는 녹수장, 금성장이라는 이름의 여관 건물을 재생하여 만든 문화공간입니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추진된 산지천 복원과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으로 노후 건물들의 철거가 진행되었으나,
산지천 갤러리가 들어선 건물을 포함하여 고씨가옥, 유성식품 등 다섯 곳은 기존 원도심의 풍경을 담고 있는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 건축물로 지정되었고 이곳은 산지천 갤러리라는 전시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하였습니다.

이 갤러리는 사진사 적으로 성취를 이룬 작고한 제주 출신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사진 전문 갤러리로 운영합니다.


제주책방(제주사랑방)은 제주특별자치도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커뮤니티 공간으로 일본식과 제주식이 섞인 전통가옥 ‘고씨주택’을 지역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제주사랑방 대관서비스와 제주책방의 책 열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옛 가옥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다면…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광장 옆은 Arario의 영향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여년을 방치해 오다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를 시작으로 예술품 collector 컬렉터로 활동하던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은 제주에서 구도심권의 폐허로 방치하던 건축물을 매입하여 아라리오 갤러리를 4곳을 오픈했습니다.

제주시 탑동광장 앞에 빨간색으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아리리오 뮤지엄 탑동 CINEMA, 동문호텔I, II는 한번쯤 다녀와볼만한 곳입니다.

3곳의 Gallery는 개관한지 5,6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제주여행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이거 뭔지 아시죠? 


밀양에 살던 한 부사에게 얼굴도 마음씨도 예쁜 '아랑' 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랑에게 반한 관노가 사랑을 고백하자 아랑은 냉정하게 관노를 꾸짖었고, 증오로 가득찬 관노는 그만 아랑을 비수로 찔러 죽인 후 밀양에 부임하는 신임 부사들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랑의 혼령 때문에 하나같이 죽어가고... 그래서 밀양 부사로 새로 부임해 온 남산골의 한 선비가 아랑의 혼령으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그 관노를 붙잡아 벌한 뒤 아랑각을 짓고 제사를 지내 아랑의 넋을 위로했는데 그때 부녀자들이 아랑의 정절을 '아랑아랑' 하며 노래 부르다가 밀양 아리랑이 된다고 하지요...

밀양 아리랑. 갑자기 웬?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아라리오’라는 이름을 지어 영국의 브이스톨 출신 작가 데미안 허스트(1965- ) 를 전시해 놓은 대형 미술관이 천안에 있습니다.

천안에서 시작된 아라리오는 세계적인 작가 40여명의 작품 140여점 사들여 조각공원 완성했고 우리나라 현대건축계의 뿌리인 김수근의 건축사무소 공간을 매입하며 아라리오 서울관이 되었습니다.

이후 제주로 눈을 돌려 탑동의 원도심 회복에 일조를 하며 경리단길의 브루어리 맥파이에 투자하며 그 중심을 제주로 끌어 내리기도 했죠.

아리리오 뮤지엄 탑동 CINEMA 뒷편에는 D&D와 그 앞 건물에 맥파이까지 아라리오 김창일회장의 작품이죠.

여담으로 사실 최근 회장 프레임을 자수성가로 만들었지만 3수 끝에 간신히 경희대 경영학과(70년대는 들어가기 어렵지 않은)를 졸업한 천안의 지주의 아들이죠.

꿈은 화가이기에 인사동 기웃거리기 시작하며 후에 사간동 현대갤러리 박명자관장의 도움으로 큐레이팅을 배웠죠.

박관장의 다리로 천안 아라리오 초기 디자인을 김창일 회장에게 프리젠테이션 하며 그 뒷이야기를 다 알게 되었습니다.



꼬닥꼬닥…관덕정과 목관아        


유배인이 제주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이 바로 제주목관아였습니다.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제주목 관아는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일대에 분포해 있었고, 이미 탐라국시대부터 성주청등 주요 관아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어지는 역사적 기록인 ‘탐라순력도’와 ‘탐라방영총람’ 등의 문헌에서 제주도 중심 관아터임이 확인되어지고 있습니다.


제주의 역사와 함께했던 제주목관아는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의 건물이 헐려 관덕정만 남아 있다가 오랜시간 복원작업 끝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민관(民官)이 합심하여 복원하게 된 제주목 관아는 1999년 9월에 시작하여 새로운 세기인 2002년 12월에 복원(復元)을 완료하였습니다.

매년 입춘이 되면 탐라시대부터 이어지던 문화축제인 탐라국 입춘굿 놀이가 열려 제주시청에서부터 제주목관아까지 낭쉐(나무로 만든 소)를 몰고 가면서 한해의 무사안녕을 빌고있습니다.

제주시내에 고즈넉히 옛자취를 지키고있는 제주목 관아지입니다.

제주 목관아 일대는 옛날 탐라국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정치·행정·문화의 중심 역할을 해온 유서 깊은 곳입니다.

제주목관아터는 동문시장 사거리에서 시장 대각선으로 보이는 와가입니다.

관덕정은 제주목사 신숙청 부임하여 왜구토벌을 위해 훈련장을 만들었던 곳입니다.

초석으로 현무암을 놓고 전면 5개 측 면 4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와지붕을 얹었다. 

안평대군을 찾아 현판을 받습니다.

(사자소이 관성덕야 射者所以 觀盛德也 활을 쏘는 것은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 - 시경) 

내부의 두 현판 耽羅形勝 탐라형승 은 김영수 목사, 湖南第一亭 호남제일정은 박선양 목사의 글씨입니다. 

안평대군 현판은 소실되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명필 이산해가 다시 썼습니다.

1924년 일본인이 보수하면서 처마를 두자 잘라내 복원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1952년 의회 의사당. 

1958년 미공보원 문화원. 

1963년 보물 322호로 지정되지만 돈은 없고. 

2006년에야 완전 보수 복원. 


관덕정에 가면 재밌는 요소가 있습니다.

7점의 그림이 보 아래 걸려 있습니다.

혹시 가시면 그림을 찾아 확인하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商山四皓 상산사호 난을 피해 바둑을 즐기는 선비들 

醉過楊州橘滿轎 취과양주귤만교 두보는 귤을 던지는 여인의 교태에도 태연자약 

大捷圖 대첩도 손권과 유비가 조조를 격파하는 모습 

陣中西城彈琴圖 진중서성탄고도 10만 적군을 앞에 두고 태연하게 거문고를 타는 제갈량 

鴻門宴 홍문연 유방에게 연회를 베푼 뒤 역습하려다 후환만 얻은 황우 

大狩獵圖 대수렵도 군인들이 사냥하는 모습 

十長生圖 십장생도 해 산 물 돌 소나무 달 또는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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