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의 승리로 알려진 역사의 진실
변화를 거부한 강력한 나라의 멸망이 보여주는 것
우리는 학교교육을 통해 주입된 교육에 의하면 고대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자유주의의 승리라 배웠다.
강력한 힘의 논리로 국가를 운영해온 스파르타는 영화 300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금 상황이 역사도 모르는 문외한들이 읊어대듯이 흑백으로 갈라 분열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유는 지금의 권력자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보니 선택은 하나 밖에 없을것이다.
이건 수 없이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치와 권력의 중심에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행해온 일들이다.
그래 이번엔 잘못(?)알고있거나 혹은 잘 알지 못하는 고대문명 이야기 함 해 본다.
흔히들 현대의 자유민주주의(사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대립시키듯 자율이 보장된 아테네와 철권의 스파르타를 투영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사회주의는 1923년 재정러시아를 붕괴시킨 레닌이 완전히 바꿔버린 기형적인 모습인데, 이걸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가고 있는건 일단 접는다)
기원전 425년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지방의 작은 섬 스팍테리아
(현재의 나바리노 만 입구 스파기아 섬).
이날 섬의 양 끝으로 아테네가 주도하는 델로스 동맹군이 상륙했다.
지휘관은 그리스 최고 웅변가이자 전략가인 데모스테네스이고 병력은 중장보병 800명, 궁수와 경보병 800명이었다.
섬의 중앙에 위치한 적군 병력은 중장보병 400명이었다.
4배가 넘는 압도적인 병력이었지만 섬의 중앙부로 행군 중인 병사들의 마음은 결코 밝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상대는 그리스 최강의 군대로, 이날까지 불패의 전설을 자랑하는 스파르타의 정예보병이었다.
영화 300.
55년 전인 기원전 480년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300명의 스파르타 중장보병은 100만의 페르시아군(실제는 16만 명 정도였다)을 테르모필라이 협곡에서 사흘이나 저지했다.
그리스 측의 한 반역자가 페르시아군에 그곳을 우회하는 샛길을 알려 주지 않았다면 스파르타군은 더욱 성공적인 방어전을 수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설적인 스파르타군 앞에서도 지휘관 데모스테네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에게는 이 전설의 청동보병대를 격파할 비책이 있었다.
방법은 40kg에 이르는 무거운 청동 갑옷 대신에 투창과 돌멩이로 무장한 경보병대를 투입하는 것이다.
언듯 보면 말도 안되는 계획이었다.
보통은 두 군대가 뒤엉켜 육탄전을 벌일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다면 55년전의 영화 300의 페르시아 군대처럼 아테네는 나가 떨어졌을것이다.
지휘관은 아무리 중무장한 보병이라도 화살과 투창·돌멩이의 공격을 무한정 막아낼 수는 없다고 판단 한것.
뚜껑을 열어보니….
경보병들이 야만인처럼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집어던지며 스파르타군 주변을 맴돌았음에도 느린 중장보병들은 경보병의 이런 공격에 대처할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마침내 스파르타군이 갑옷을 벗고 투항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써 항복보다 죽음을 택했던 스파르타의 역사에는 종지부가 찍혔던것이다.
100만 페르시아군에도 굴복하지 않은 스파르타군이 중장보병도 아닌 하급시민이나 농노로 편성된 경보병대에 항복한 것입니다.
변화를 거부한 결과....
당시 스파르타군은 귀족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엄청난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지 못 하던 평민은 군에 가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로인해 시민권도 없고.
그들이 중장보병을 고집한 이유다.
특혜!
결국 변화를 거부한 스파르타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집권자들은 누구나 그 엄청난 특혜에 미련을 두어 변화를 두려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