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을 해야 할 선택… 그리고
대한민국은 지난 2020 총선, 그리고 2022 대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뭐라 말을 할 수 없네요.
인간은 훌륭해.
Jean Cocteau 콕토의 작품 다시떠나는 80일간의 세계일주(줄 벨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 100주년 기념 작)에서 산 위를 비행기로 날던 사람이 내뱉은 감탄입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이 말을 마뜩지 않아 합니다.
사르트르는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맞섭니다.
신이 없다면,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본질’이란 없고 종이 자르는 칼과는 달리, 인간은 자기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야 한다는것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은 이런 뜻입니다.
인간은 자유와 선택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만들어 갑니다.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에서 ‘인간의 원래 모습’이란 없습니다.
각자는 무엇이 올바르고 바람직한지를 홀로 결정해야 하므로 ‘불안’은 피하지 못할 우리의 운명인것입니다.
사르트르는 ‘자기기만’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사람들은 “나는 환경이 좋지 않았지. 나는 위대한 사랑을 하지 못했어. 그럴 만한 사람을 못 만났기 때문이야. 나는 좋은 책을 쓰지 못했어.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지. 나는 아낌없이 애정을 쏟을 아이를 낳지 못했어. 삶을 같이할 만한 남자를 못 만났던 탓이야” 등등 이렇게 투덜대곤 하곤 한다는것입니다.
하지만 여건이 안 되어서 내가 가진 가능성이 피어나지 못했을 뿐, 나는 소중하고 뛰어난 존재라며 스스로를 ‘기만’하는 모습인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가치는 가능성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인간은 백 번의 생각이 아닌 ‘실천’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뜻을 따를지 따르지 않을지는 그들의 자유이며 여건이 좋을지 나쁠지도 내가 결정할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유롭게 결정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어쩌지 못하는 일에는 책임도 따르지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롯이 나의 몫인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탓’과 ‘~때문에’를 입에 달고 살아가는것에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실현하는 한에 있어서만 실존한다고 힘주어 말하는데 이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남의 결정과 환경에 책임을 돌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늘도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결정을 해야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가야 합니다.
C between B and D — C as in the Choices we make between B-Birth and D-Death.
인생은 B(탄생, Birth)와 D(죽음, Death) 사이의 C(선택, Choice)이다
-French philosopher, Jean-Paul Sartre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
출근길의 coffee break…
어제도 11시까지 야근이 이어졌네요.
나의 선택이겠죠.
여의도 오복수산의 かいせんどん (카이센동; 지라시즈시를 넣은 덮밥) 도시락 입니다.
성게알 참치 연어알 새우 관자 덮밥
うに どろ いくら えび ほたて どん
우니 도로 이쿠라 에비 호다테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