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반인문 CC 도둑맞은 뇌

; 기억의 오류

by Architect Y

① 모든 사람들이 알았던 어떤 사건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② 무엇인가를 찾으러 왔는데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어버린다거나,

③ 분명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막상 기억이 나지 않아 혀 끝에서만 빙빙도는 설단현상,

④ 실제로 보지 않은 것(듣지 않은것)인데 보았던것(들었던것)같은 기억이 있거나,

⑤ 새롭게 알게된것인데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것 같은 기억이 있거나(실제 느끼지도 못함),

⑥ 함께 겪었던 일인데 기억 방향이 틀리고,
⑦ 하찮게 지나칠 수 있는 일들을 유독 생생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살아오며 있을것입니다.


이런 기억의 오류는 성가시고 위험에 빠트리기까지 하지만 이를 단점이라기 보다 인간 정신의 적응성을 보여주는 특징에 가깝습니다.

2010년 개봉했던 영화 인셉션에서처럼 디카프리오가 직접 우리 뇌에 침입하지 않아도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기억을 왜곡하고, 없던 기억까지 만들며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 무엇이었는지 헷갈리곤 합니다.

MIT의 토네가와 Susumu Tonegawa 교수와 그 연구진은 쥐에게 실제로 잘못된 기억을 심는 것에 성공하여 사람이 기억을 왜곡하는 원리를 밝히는 데 일조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기억왜곡3.png

뇌에서 어떤 기억을 회상할 때 반응하는 신경세포들이 그 기억을 담고 있고 그 세포들을 활성화하면 그 기억을 회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쥐에게 어떤 소리를 들려준 후에 전기 충격을 주어 소리에 대한 공포 기억을 만들고, 그때 활성화된 세포를 표지하여 그 세포들을 활성화시키면 쥐는 소리가 없음에도 몸을 움직이지 않는 공포 반응을 보이게 되는것입니다.

토네가와 교수와 그 연구진은 이런 기억을 담는 세포의 특성을 이용하여 쥐에게 잘못된 기억을 심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기억을 심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쥐를 A 환경에 노출시키고, 그때 A 환경에 반응하는 세포들, 즉 A 환경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는 세포들을 표지(labeling) 했습니다.

그리고는 B 환경에 쥐를 들어가게 한 다음 전기 충격을 주어 B 환경에 대한 공포 기억을 만드는 도중에 A 환경의 기억을 담고 있는 세포들을 활성화하였습니다.

즉 B환경에 대한 공포 기억을 만들 때 A 환경에 대한 기억을 회상시킨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쥐를 A 환경에 들여보냈더니, 놀랍게도 쥐는 A 환경에서 전기 충격을 받은 적이 없음에도 A 환경에 대한 공포 반응을 보였습니다.

B 환경에 대해 공포 기억을 심는 도중에 인위적으로 A 환경을 회상하게 하여 A 환경에 대한 잘못된 기억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사람은 타인의 주입에 의해 사실을 왜곡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의 기억을 본인이 왜곡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1946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사람들에게 질문했습니다.

34%가 적군의 포탄 아래에 놓인 적이 있다고 말했고 25%는 적군을 죽여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42년이 지난 1988년 똑같은 질문에 포탄 아래에 놓여봤다는 40%로 늘었고, 죽여본 적이 있다는 14%로 줄었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왜곡되는 것입니다.

기억왜곡4.jpeg

우리는 이 현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발견을 통해 가장 기이한 오귀인인 ‘프레골리 증후군(Frégoli Syndrome)’을 밝혀낼 수 있었다.

1927년, 프랑스 정신과 의사인 쿠르봉(P. Courbon)과 파일(G. Fail)은 자신을 ‘적들의 희생자’라고 믿는 한 환자를 묘사했다.

이 환자는 프랑스 여배우 2명이 자신을 괴롭히려 한다고 믿었다.

두 의사는 다른 사람들을 흉내내서 당시 파리의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이탈리아의 영화배우 레오폴도 프레골리(Leopoldo Frégoli)의 이름을 본떠 이 증상에 이름을 붙였다.

프레골리 증후군은 낯선 사람 안에 친구나 친척, 유명인사가 깃들어 있다고 강하게 믿는 것이 특징이다.

영국의 사진작가와 같은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낯선 사람들에게서 친숙한 느낌을 받지만, 프레골리 증후군 환자들은 특정한 오기억으로 고통을 받는다.

프레골리 증후군은 보통 정신과 환자에게서 발견되지만, 최근 신경학자들과 신경심리학자들은 정신과적 병력이 없는 사람에게서도 뇌 손상 이후에 나타났다는 사례를 보고했다.

- 본문 203p, 4장 기억은 오귀인을 일으킨다


하버드대학 심리학과 학과장을 지낸 Daniel L. Schacter 다니엘 섹터 교수는 2001년(한국판 2006년) ‘Seven sins of memory’라는 책을 통해 기억이 왜곡되는 일곱가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글 머리에서 순서대로 기술한 7가지, ① 일시성(Transience), ② 방심(Absent-mindedness), ③ 차폐(Blocking), ④ 오귀인(Misattribution), ⑤ 피암시성(Suggestibility), ⑥ 편향(Bias), ⑦ 집착(Persistence)

소멸, 정신없음, 막힘은 기억해야 할 것을 잊는 오류이며, 오귀인,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은 기억의 오작동에 의한 오류입니다.

소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하고자 하는 정보가 사라지는 것이고, 정신없음은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기억해야 할 일에 주의를 집중하지 못해 발생하는 기억의 오류인것입니다.

조금 자세히 적어보자면,


① 대부분의 사람들은 O.J 심슨이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무죄로 판명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지만 어떻게 무죄가 되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것처럼 한 때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더이상 그렇지 않을 만큼 기억은 빠르게 사라집니다.
② 차를 타러 내려가면서 자동차 키는 방에 두고 가는 경우처럼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찾으러 왔는데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③ 어떤 사람과 마주쳤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분명히 그것을 알았지만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 막상 입밖으로는 나오지 않고 혀 끝에서만 빙빙도는 경우, 이런 경우를 심리학자들은 설단현상 이라고 부르는데 분명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기억하려고하면 막상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④ 실제 보지 않았는데도 보았다고 하거나, 들은 적이 없는데도 들은 것으로 기억하기도 하기도 하는데 실제 목격자들의 증언은 왜곡되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워싱턴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Loftus는 자신의 '목격자 증언 연구(The Eyewitness Testimony Study)를 통해 입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읽거나 들은 내용들이 어디서 나온것인지 그 출처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때때로, 사람들은 그러한 출처를 잘못 알기도 합니다.
⑤ 사람들은 암시에 취약해서 어떤 것을 보았을 것이라고 암시를 받으면 그것을 본 것으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⑥ 지금 자신의 삶이 고통스럽고 괴롭다면, 지나간 자신의 삶에서도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일들을 더 잘 기억해 내는 경향이 있다거나 현재 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실제 경험과 상관없이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것처럼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회상이 편향되기도 합니다.
⑦ 10번의 성공 가운데, 1가지의 실패를 맛본 경험이 있다면, 여러차례의 성공 경험 보다는 한차례의 실패를 더 잘 기억하게 되는경우처럼 사람들은 때로 하찮게 지나칠 수 있는 일들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기억왜곡2.jpeg
기억왜곡5.jpeg

기억은 흔히 카메라 사진처럼 기억 앨범에 저장돼 있다고 여기지만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경험을 있는 그대로 본뜬 장면들을 불러오는 게 아니라 인상적 장면만 저장하고 불러올 때 재창조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그 이후에 받은 느낌이나 신념, 지식이 추가되기도 하는것입니다.

책은 가짜뉴스와 인종편견까지 기억의 오류와 왜곡의 매커니즘, 양상을 다양한 연구 사례와 함께 체계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원제 The Seven Sins of Memory Updated Edition: How the Mind Forgets and Remembers.

2001년(한국판은 2006년) 처음 나온 책을 새 연구에 맞춰 20년이 지난2021년 개정했고 한국판은 올해 2월 신간으로 나와 있습니다.

절판된 2006년 국내에 번역된 책 제목은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이었습니다.

원어 책명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했는데 우리 정서와는 뉘앙스가 전혀 통하지 않아서 였을까요, 평도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아주대 의과학연구소 정민환 교수는 어떤 사건을 자꾸 되 뇌다 보면 그 기억의 틈새들이 부정확한 것으로 채워지고, 나중에는 사실처럼 왜곡된다고 설명합니다.

이 때문에 뇌 과학과 심리학계에서는 기억을 무조건 신뢰해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조작과 왜곡, 변형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죠.


저자는 기억의 7가지 오류가 근본적인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이자 기억의 또 다른 적응적 특징의 부산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진화의 부산물이며, 우리 뇌의 기능이 제대로 실현되고 처리되기 위해서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것입니다.

소멸은 기억 체계가 작동하고 있는 환경의 특징에 적응한 결과이며, 오귀인은 우리의 기억 체계가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세세하게 저장하는 대신에 선택적이고 효율적으로 부호화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 즉, 기억의 7가지 오류는 인간 정신의 바람직하면서도 적응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특징의 부산물이라는것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반인문 CXCX 이반 일리치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