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가면 뭘먹지?
오랜만에 전주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조카의 전주여행 먹거리 추천하며 쓰는길에 올립니다.
전주는 볼거리만큼이나 먹거리가 풍부한곳입니다.
후백제 견훤甄萱이 도읍했던 천년고도 완산주이자, 조선 태조 이성계의 전주이씨 貫鄕(관향; 시조가 난 곳)으로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도시로 중앙에서 파견된 전라 관찰사의 감영(監營; 감사가 직무하는 곳으로 영평, 공주, 전주, 대구, 원주, 해주, 평양, 함흥)이 주재하였고, 종2품 부윤府尹(;부府-전주, 경주를 관할하던 곳)이 다스렸던 전주부는 한양 다음으로 도시의 격이 높은 전통 도시였습니다.
그래, 경제적으로도 발달한 도시일수 밖에 없었던 전주의 장시(場市;보통 5일마다 열리던 사설 시장)는 다른 도(道)의 감영 소재지는 보통 5일마다 읍내에 서는 읍내장(邑內場)’과 다르게 전주성의 4문에서 각각 한달에 3번씩 총 12번 장이 서게 되므로 다른 지역에 비해 2배로 열려 한양을 제외한 전국의 지역 장시 단위로는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동국문헌비고 제30권 시적조 전라편)*1
남도지역을 아우르는 집결지로 제주와 한양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식재료가 모여들었습니다.
그렇게 전통적으로 수 많은 좋은 재료들을 이용한 음식들이 만들어지게 되면서 맛의 본고장으로 서게된것이죠.
그래 그 종류를 280품에 달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제주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가짓수라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 좋은 재료 중 열가지를 추려 전주 10미라 하는데 기린봉 일대의 열무, 교동의 황포묵, 신풍리 애호박, 삼례 무, 선너머 미나리, 교동 콩나물, 서낭골 파라시(八月柹, 홍시), 한내 게, 한내와 남천의 모래무지, 소양 서초(西草, 담배)를 말합니다.
전주 동쪽 기린봉 기슭에서 생산되는 열무는 연하고 사각사각한 맛이 훌륭합니다.
고추와 마늘 생강등을 돌확에 넣고 갈아 곱게 될 때에 밥을 조금 넣어 마지막으로 더욱 곱게 간 다음 간장이나 소금을 넣어두고 미리 씻어 놓은 열무를 손으로 적당히 잡아 버무려서 담근 열무김치나 물김치 맛은 한여름 구미를 당기는 식품으로 빼놓을 수 없을것입니다.
전주 남쪽 완산주와 임실 경계의 효간재의 열무도 용호상박입니다.
지금은 기린봉 주변 마을등에서 주로생산되는 황포묵은 교동일대에서 많이 만들었는데, 오목대에서 흘러 나오는 녹두포 샘물을 이용하여 만든 녹두묵에 치자로 물을 들이면 색이 노랗게 됨으로 황포묵이라하고 비빔밥에 빼놓을 수 없는 재료로 쓰였습니다.
한포기 줄기에서 호박이 20여 개씩 열리는 전주의 북쪽 신풍리에서 나는 호박은 그 맛이 달고 영양가도 높아 말려 겨우내 호박나물로 무치거나 호박고지로 떡을 해 먹었습니다.
전주 북쪽 삼례와 봉동부근 일대 황토밭에서 옛날부터 전주 무가 유명했는데 사불여설(四不如說)*2에서는 '전주의 배맛이 무맛보도 못한다'고 전하기도 할 만큼 단단하고 둥글면서도 큼직하여 이 무로 담근 깍두기는 전주의 맛으로 이야기 할만 하였습니다.
무의 재배지와 더불어 삼례지역에서는 많은양의 미나리가 재배되고 있는데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한 전주 화산고개 너머가 오랜 미나리 방죽으로 이 지역 미나리는 줄기가 연하고 겨우내 물속에서 자라 그 맛이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지금도 전주 시그니쳐인 콩나물은 옛전주부성 사람들의 세끼상에 올려졌던 반찬이었습니다.
콩나물은 전주 시내 전역에서 나지만 삼례 윗쪽, 사정골과 지금의 교동일대인 자만동의 녹두포 샘물로 기른 콩나물을 일품으로 꼽았습니다.
콩나물은 전주 비빔밥과 콩나물 해장국밥의 주 재료로 빠질 수 없는 식품이며 콩나물 자체의 맛은 특별히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소금으로 간을 맞춰 끓이면 고소하고 부드러우면서 나긋나긋한 맛이 한층 감칠맛을 줍니다.
물이 많고, 달며, 씨가 별로 없어 먹기에 좋고, 먹고 난 다음 입맛이 개운해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입에다 넣으면 사르르 녹아 버린다 해서 전주의 감은 맛이 좋기로 옛날부터 유명했는데 이를 파라시라고 불렀습니다.
아쉽게도 파라시는 완주군 구이면과 상관면 일대에 몇 그루만 남게되었고 전주시도 2015년부터 파라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복원에 나섰습니다.
한내 게 다리 한쪽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은 거뜬하다고 할만큼 민물게로 한내에서 잡히는 게의 성가(聲價:사람이나 물건 따위에 대하여 세상에 드러난 좋은 평판이나 소문)가 높고 그 맛이 특별해 진상품으로도 들어갔습니다.
한내는 익산과 전주를 나누는 강으로 유역 주민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젖줄 역할을 했던 만경강을 그리 불렀습니다.
한내의 민물 게는 털이 없는데 게가 잡히는 곳은 전주 남천, 서천, 남고천, 반석천, 다가천, 가련천, 삼천 어디서나 잡혔으며 그 맛 또한 한내의 것과 같습니다.
남천, 서천, 남고천 등에서 많이 잡히는 모래무지는 모래 속을 파헤치면서 생활하며 맑게 흐르는 물속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고기 자체가 깨끗하고 맛이 담백하여 모래무지 지짐이나 탕으로 끓여먹는 요리가 미식가들의 미각을 돋구어 왔는데 한벽당 아래 천변의 오모가리탕이 유명하여 계절에 구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마지막 서초는 우리나라 재래종이 아니고 조선조때 서양에서 들어온 풀이라 하여 서초라고 부른 것으로 전주의 담배 맛은 옛부터 맛이 좋기로 유명했는데 담배가 관 주도로 제조판매 되면서 옛날의 고유한 맛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전주시에는 “아침에는 콩나물국밥을 먹고 점심에는 전주비빔밥을 먹으며 저녁에는 한정식을 먹는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해장을 겸할 수 있고 국물로 속을 채우는 한국인에 맞는 콩나물국밥과 반찬을 대신할 수 있는 온갖 재료를 한 그릇에 넣고 비벼서 뚝딱 해결하면서도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점심 메뉴로 적절한 비빔밥이 전주십미의 단품버젼이라면
다양한 종류의 전주 음식을 포괄하는 전주 한정식은 맛의 고장 전주의 음식문화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29년 12월1일에 발간된 종합잡지 ‘별건곤’에 전주콩나물국밥이 ‘탁백이국’으로 소개되는데 장은 금물이고 반드시 소금으로 맛을 낸 콩나물국밥은 두 종류로 다가동, 중앙동, 짱골목 일대에서 성업한 펄펄 끓인 ‘삼백집’ 스타일의 콩나물국밥과 남문밖장과 동문거리 ‘왱이집’의 토렴식 콩나물국밥입니다.
하루 딱 300그릇만 팔겠다고 해서 상호가 만들어진 삼백집은 1947년에 욕쟁이였던 고(故) 이봉순 할매가 문을 열고 영업하다 허가받은 것은 1967년이고 1982년 고(故) 방복순씨, 1987년 조정래·김분임 부부가 승계했고 ‘남부시장식’으로도 불리는 토렴하는 식은 국밥을 끓이지 않고 콩나물국에 밥을 여러 번 토렴하여 따끈하게 먹는 방식으로 오징어 육수를 쓰는 것이 특징인데, 1979년 남부시장에서 영업을 시작한 현대옥이 대표적이고 1986년 문을 연 왱이집은 후발주자지만 특유의 친절함과 배려로 자릴 잡았는데 제주 출신의 유대성 사장은 남문시장 내 토렴식 국밥의 지존인 현대옥 방식을 벤치마킹해 대박난 곳입니다.
콩나물은 원래 전북 임실에서 자란 ‘쥐눈이콩(鼠目台)’을 교동(옛 자만동)의 녹두포샘물과 상정골의 노내기샘물로 길러냈지만 수질이 예전 같지 않아 2006년 전주의 19개 콩나물 공장이 영농조합을 결성하고 이틀에 한 번 통 속의 콩나물을 물속에 푹 담갔다가 교반해서 길러냅니다.
1952년부터 지금까지, 7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빔밥의 원톱은 역시 성미당으로 황포 묵을 포함한 10여 가지 고명을 넣고 신선한 달걀노른자를 얹은 후 따뜻한 놋그릇에 담아내는데 이와 함께 중앙회관, 한국관등이 1세대 비빔밥집들입니다.
양지머리를 푹 끓여 만든 육수로 밥을 짓고 녹두녹말에 치잣물을 들여 만든 노란색 황토묵을 얹는 것이 특징으로 질 좋은 재료와 장맛, 요리 솜씨와 음식에 대한 정성이 어우러져 최고의 맛을 내, 전주비빔밥은 평양의 냉면, 개성의 탕반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음식의 하나가 된것입니다.
전주비빔밥도 2가지 스타일로 볼 수 있는데 성심당처럼 콩나물밥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위에 고명을 올리거나 가족회관처럼 콩나물 섞지 않고 그냥 밥만 지어 그 위에 각종 재료를 올리는 식입니다.
전주한정식하면 첫번째로 꼽는곳이 백번집인데 고 김종화 씨가 삼례읍에 개업한 ‘칠봉옥’이라는 식당이 1958년 전주시로 이전하면서 개칭한 이래 65년간 아들 고 김주환 씨 부부에 이어 2019년 완주군 등지에서 25년간 한식당을 경력의 권동화 씨가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상호는 일반적인 한정식집들의 이름처럼 -館관, -亭정이 아닌 특이한 이름인데 초기 단골손님이었던 전주향교의 어르신들이 항상 손님들로 가게가 꽉 차고 손님들도 음식에 만족하기를 바라는 뜻에서‘백제’의 앞 글자 ‘백(百)’과 빽빽하다라는 뜻을 지닌 ‘번(蕃)’을 합하여 작명한것으로 공교롭게도 전화교환원이 전화 연결을 해주던 수동식 전화를 쓰던 시절에 백번집이 전화국에서 받은 가입자 번호도 ‘100’번이었습니다.
현재 전주한정식의 맥은 수구정에서 ‘백번집’으로 축이 이동했습니다.
이 3가지 음식이 전주 식문화의 축을 이루고 있다면 그 빈 자리를 채워주는 음식들이 있는데 우선, 앞에서 이야기한 전주 10미중 모래무지를 이용한 뚝배기 민물매운탕인 오모가리탕이 있습니다.
'오모가리'는 '뚝배기'의 전주 사투리로 오모가리(뚝배기)에 피리, 쏘가리, 메기, 빠가 등을 넣고 끓여낸 민물고기 매운탕을 오모가리탕이라 말합니다.
특별할게 없을것 같은 매운탕이라 할 수 있지만 전주식 오모가리탕에는 특별한 식품이 빠지지 않고 들어갑니다.
전주에서는 무나 배추 시래기를 뚝배기 바닥에 두둑이 깔고 갖은 양념을 해서 들깨가루와 들깻물을 넣고 오모가리탕을 끓여냅니다.
전주 한옥마을 끝인 한벽루 쪽의 전주천면에서는 오래전부터 천변에 투망을 던져 철따라 올라오는 민밀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냈지만 물론 요즘에는 인근의 무주나 진안 등의 맑은 하천에서 잡힌 민물고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벽루 쪽에 가면 오모가리탕으로 유명한 집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집 중의 한곳이 바로 화순집입니다.
이제는 너무나 잘 알려진 가맥집.
막걸리 시대가 하이트맥주를 앞세워 ‘맥주시대’로 접어들 때 무시무시한 슈퍼 하나가 전주 술판을 확 뒤집어 놓았는데 바로 경원동의 ‘전일슈퍼’입니다.
전주에서 ‘가맥(슈퍼마켓에서 파는 가게맥주) 문화’를 꽃피운 가히 기념비적인 술집으로 이제는 핫플이기도하고 일반 슈퍼용 물건은 겨우 모양새만 갖추고 있고 내부에는 30석정도의 자리가 있습니다.
전일수퍼는 근처 ‘경원슈퍼’가 공무원, 회사원 등에게 낮맥주를 많이 팔고 있던것을 벤치마킹해 대박난 곳으로 현재 이순덕 여사장이 남편을 대신해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너무 맥주집 같다면 비슷한 곳들 중 초원편의점도 괜찮은 곳입니다.
주당들의 술과 국밥이 한 세트로 움직이는 흐름을 이어받은 게 남부시장의 조점례 남문 피순대국과 1976년 문을 열어 45년을 훌쩍넘긴 순대가 안 들어간 순대국밥집 덕천식당입니다.
전주에서는 선지 섞인 순대가 들어간 것을 피순댓국, 순대 없이 내장만 넣은 것을 순댓국이라고 말합니다.
듬뚝 넣은 들깨가 칼칼한 매운맛을 잡아주고, 밥을 말아 먹으면 훨씬 더 구수한데, 순대 국밥은 밥이 말아져있고, 막창 국밥은 밥이 따로 나옵니다.
날이 더워 점심에 시원한 음식을 먹고 싶다면 살얼음이 살포시 올라간 진한 멸치 육수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밀국수집인 태평집,(메르밀)진미집도 괜찮고 연탄돼지고기와 김밥의 진미집(소바 진미집과 다름)은 저녁에 술한잔 하기 좋은 곳입니다.
이 밖에 숙성된 민어회(점심·1인 5만원)를 맛 볼 수 있는 동락일식이나 바지락 전과 죽, 그리고 바지락 물갈비라는 음식의 변산 명품 바지락죽, 배추농사부터 직접 지어 담근 묵은지돼지고기찜 명성옥등도 선택해 볼 만한 곳입니다.
*1 東國文獻備考 동국문헌비고 제30권 市糴條 시적조 전라도 편
全州 전주
府南府西 兩大市 부남부서 양대시
府南二日三開市 府西七日三開市 부남2일3개시 부서7일3개시
府北府東 兩間市 부북부동 양간시
府北四日三開市 府東九日三開市 부북4일3개시 부동9일3개시
전주부의
남과 서, 양쪽은 큰 시장이다.
남쪽은 2가 들어가는 날[2, 12, 22] 총 세 번 열리고 서쪽은 7이 들어가는 날[7, 17, 27] 총 세 번 열린다.
전주부의 북과 동, 양쪽은 작은 장이다.
북쪽은 4가 들어가는 날[4, 14, 24] 총 세 번 열리고 동쪽은 9가 들어가는 날[9, 19, 29] 총 세 번 열린다.
*2 四不如說사불여설-전주의 옛 세태를 전하는 말
반불여리(班不如吏) 양반이 아전만 못하다
기불여통(妓不如通) 기생이 통인만 못하다
주불여효(酒不如肴)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안주만 못하다: 천하에 알려진 소문난 명주라 하더라도 전주의 여염짐이나 주모들이 내 놓는 안주맛을 따르지 못한다는 말
이불여청(梨不如菁) 배맛이 무맛만 못하다: 옛부터 전주 무는 완산 8미(八味)에 속할 정도로 맛이 좋았다. 인근 봉동과 삼례의 황토밭에서 나는 무는 돌멩이처럼 단단하고 둥글면서도 아삭아삭해 인기가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