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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문 CCⅤ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Sandel, Michael J. 마이클 샌델

by Architect Y

운이 좋았던 사람은

자기가 운이 좋았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가 그 운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본인이 그 운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확신하고 싶어하고

불운한 사람들 역시 그 불운을 그들이 감당할 당연한 몫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 막스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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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이후 3년 만에 신간을 들고 돌아 온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이번 화두는 ‘위기의 민주주의’입니다.

책은 1996년 미국에서 출간된 '민주주의의 불만'(Democracy's Discontent)을 20여 년 만에 전면적으로 고쳐 쓴 개정판입니다.

민주주의는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남발로 인해 듣기만 해도 피로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새롭지 않은 키워드죠.

마이클 샌델은 1996년 미국에서 출간된 민주주의의 불만을 27년만에 초판의 제1부에 배치한 두 기둥 중 하나인 미국의 헌법적 전통, 즉 헌정주의 부분을 들어내고, 또 다른 골자인 제2부의 ‘경제를 둘러싼 공적 담론’에 집중해 전체 분량의 4분의 1을 새로이 경제를 프리즘으로 삼아 분석하는 미국 민주주의가 새 책의 중심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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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 비판이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미국 민주당 정부나 정치인을 향한 지적이 추가로 담겼다면,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에서는 Thomas Piketty 토마 피케티, Daron Acemoglu 대런 애쓰모글루 등 주목받는 경제학자들이 정치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복원하려고 노력하는 정치경제학으로 경제에 미치는 정치의 영향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샌델은 미국은 상당 기간 민주주의 그 자체였지만 정상괘도에서 이탈했다고 판단합니다.

국회의사당 폭동 등을 복기해본다면 미국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윌슨은 피고용인으로 구성된 국가는 자유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만약 미국의 미래 아이들이 “피고용인 신분으로 살아가거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나라에서 눈을 뜬다면(…) 그들은 이 공화국의 건국자들이 생각만해도 슬퍼할 나라를 보게 될 것이다.”

-본문 p169


샌델은 미국 사회에 팽배한 불만을 첫째는 개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 각자의 삶을 지배하는 힘의 통제권을 잃어가는 것이고 둘째로 공동체의 도덕적 결속이 느슨해지고 있다고 2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중들이 이런 불만을 가지게 된 원인을 미국 사회가 실천하는 행동에 내재된 정치 이론, 즉 시민의식과 자유에 대한 여러 가정들인 '공공철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수백년간 단일한 개념이었던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시민의 소유적 자유, 개인적 선택의 자유보다 덕성(德性)을 보유한 시민의 참여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공화주의’라는 초기 이념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친자본적인 임금노동 옹호론자들은 남북전쟁 이후 누군가의 속박을 받지 않으면서 노동할 수 있는 권리인’ 자유노동'이라는 시민적 개념을 폐기하기 시작했고 시민의 권리로서의 '자유노동'은 어느새 일자리를 선택할 자유로 의미가 축소되었다고 이야기 하며 '자유노동’은 그것을 대신해 '자발주의'란 개념이 도입되었습니다.

1895년 발생한 로크너 사건이 계기로 이제 노동도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에 맺어진 자발적 계약의 산물로 포장되며 친자본측은 이런 노동계약이 기존의 '자유'개념과 부합한다고 선전합니다.

뉴욕주 제과점주였던 로크너는 당시 1일 10시간 주 6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뉴욕주의 법을 위반해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로크너는 강제가 전혀 아니었고 종업원과의 상호합의였다고 항변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로크너의 편을 들어 뉴욕주 법이 계약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했고 계약의 자유가 시민의 온전하고 독립적 삶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선포되는 전환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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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노동이 도덕적이고 독립적인 시민을 길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에 맺어진 자발적 계약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유개념과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로크너시대(1897~1937 근무시간 10시간/일-60시간/주)의 대법원이 헌법과 일치한다고 판단한것이 이런 자유의 개념이다.

-본문 p100


지난 수십년간 개인의 권리와 혜택이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요소들을 스스로 통제하는 미국인의 통제력은 오히려 줄어들었고 역설적이게도 자발주의적 자유관의 승리는 개인의 통제력이 또는 영향력이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서 나타났습니다.

이어 샌델은 오늘날 미국에서 자유 민주주의가 겪는 어려움은 특정한 좌절감에서 비롯됐다기보다 자유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자발주의적 자아상이 부족해서 나타났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합니다.

자발주의적 자아상은 공동체와 유리된 무연고적 자아를 상정한다.

자유주의는 이런 인간의 개체적 속성에만 주목함으로써 인간의 또 다른 속성인 공동체적 속성을 외면한다고 샌델은 보고 있습니다.

샌델은 권력을 절차주의에 제한한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며 정치권력이 자본권력을 제어하지 못할 때 사회는 망가진다고 말합니다.


1964년에는 미국인 76퍼센트가 미국정부가 국제수행을 제대로 한다고 믿었지만, 그로부터 30년 뒤에는 겨우 20퍼센트만이 그렇다고 믿었다.

또 1964년에는 정부가 납세자들의 돈을 낭비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전체 가운데 절반이 되지 않았지만 1990년대가 되면 무려 80퍼센트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또 1964년에는 정부가 다수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고 소수의 거대 이익집단의 편에 선다고 믿는 사람이 세명중 한명 미만이었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75퍼센트로 늘어났다.

-본문 p287~288


샌델은 초판의 헌법 얘기는 아예 빼버리고 정치, 경제에 집중합니다.

책의 마지막은 21세기 얘기로 이어지는데 새로운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세계화, 금융화, 능력주의를 꼽는 저자는 이 모두를 비판합니다.

특히 금융의 비대화에 따른 폐해는 물론 이와 관련해 클린턴과 오바마에 대해서도 아주 신랄한 비판을 내놓습니다.


레이건시대 이후의 금융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기업들은 투자가 아니라 기존 자산의 미래가치를 놓고 투기를 벌여 돈을 벌었다.

-본문 p346


클린턴 정부도 월스트리트에 유리한 행동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사주매입 이외에 주목할만한 두 가지 규제선택에서 규정을 바꾼것이다.

-본문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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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 대선의 흑인 변호사 출신의 첫 흑인 대통령 후보 버락 오바마의 캠프 슬로건은 ‘Change, We Can Believe In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였습니다.

감동적인 선거운동 뒤 오바마는 선거 승리 후 “드디어 미국에 변화가 찾아 왔다”고 선언 했죠.

하지만 오바마는 취임전에 이미 부시정부에서 추진했던 월스트리트 구제금융을 지지하며 갑자기 자신의 정책으로 삼아버립니다.

이는 미국이 직면했던 가장 긴급한문제의 변화의 약속을 파기한것입니다.

소수 이익집단인 Wall Street(금융경제)를 선택하고 Main Street(실물경제)를 버린것입니다.

여담으로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미국 어느 대학 앞에는 노숙자가 또 다른 change를 의미하는 구호를 들고 적선을 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I need 'Change', Not only Obama!"

굳이 직역하자면, '변화가 필요한 것은 오바마 뿐이 아니다'이고,

제대로 풀자면, "오바마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이고, 내게 필요한 것은 거스름돈이다. 그러니 한 푼 줍쇼"라는 의미죠.


오바마는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을 재앙으로부터 보호함으로써 그들이 저질렀던 투기폭주에 따른 비용을 일반 미국인에게 전가했다.

그러자 부자와 권력자들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는 정치체계가 뚜렷하게 드러났고 일반 국민은 정치체계를 점점 더 불신하게 됐다.

(…)

오바마 대통령의 8년 재임이 끝난 뒤에 투표장을 찾은 미국인 가운데 75퍼센트는 “부유한 권력자들로부터 나라를 되찾을”지도자를 찾는다고 말했다.

-본문 p352 / p362


21세기 이후 20년 동안 민주주의를 괴롭혔던 불만은 한층 더 예리해졌고 사회적 결속력은 철저하게 무너졌으며 좌절감은 한층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문제가 됐던 시민적 차원의 문제들은 현재 우리와 맞닥드린 문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정도다.

2016년에 트럼프가 당선된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에 줄곧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수십년 동안 쌓인 원한과 분노의 결과였다.

-본문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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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경제 권력의 민주주의 훼손은 정치권력에 의한 것보다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샌델의 말을 따르자면 경제와 관련해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을 시민으로 생각하기보다 소비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고 나면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동행하기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샌델은 시민의 공적인 참여로 경제 권력을 민주적 통제 아래 놓을 때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이미 너덜너덜해진 민주주의는 그가 바라는 대로 회복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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