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마를 알아맞히는 나무
전국에 동시 장맛비가 내립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이를 예보해주는 나무가 있죠.
자귀나무.
자귀나무는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데 제주에서 유독 눈에 많이 들어 옵니다.
부채살 같기도 하고 공작의 깃털을 닮기도 한 연분홍 파스텔톤의 꽃이 매우 인상적인 키가 큰 교목으로 특히 해질녘 하늘을 배경으로 만개한 자귀나무 꽃들이 만들어내는몽환적 분위기는 압권이죠.
밤에 잎이 접혀진다는 의미의 한자 좌귀목(佐歸木)이 좌괴나무>작외남우—>자귀나무로 어원이 변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의미로 밤이 되면 작은잎(소엽)이 쌍쌍이 겹치는 모습에서 금실 좋은 부부 또는 남녀 간의 은밀한 사랑을 연상해 합환목(合歡木), 합혼수(合婚樹),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 등의 닭살 돋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꽃 핀 모양이 부채 같다 해서 부채나무, 소가 잎을 잘 먹는다 해서 소쌀밥나무, 소밥나무라 부르기도 합니다.
콩과 식물이라 콩깍지 같은 열매가 달리는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흔들려 여설수란 이름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귀나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유래담이 없고 억지스럽게 지어낸 설만 난무합니다.
제주어 자귀나무는 잡스러운 여러 귀신을 일컫는 잡귀라는 말에서 왔다고 하는데 잡귀는 불행한 인간의 사령(死靈), 병을 일으키는 역신(疫神), 그리고 그 밖의 잡신으로 나쁜 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사귀(邪鬼;요사스러운 귀)로도 불리고 여러 신들 중에서 악신에 속한다고 합니다.
자귀나무는 그늘이 짙으므로 그 그늘에서 곤히 잠들면 모기가 물어도 깨닫지 못할 만큼 시원해서 모기에 물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낮잠자기 좋은데 옛사람들은 아이들이 자귀나무 그늘에 누웠다가 학질에 걸린다고 생각을 했기에 자귀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지 말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이렇듯 제주도에서는 자귀나무를 자구낭(잡귀낭; 귀신이 깃든 나무)이라 하여 집안에 심지 않는 금기목(禁忌木) 중 하나로 여겼다고하지만 사실, 나무 재질이 약하여 태풍이 많이 불어오는 제주에서는 태풍에 상한 가지가 부러져 다칠 수가 있어서 이 나무를 집안에 심지 않는 이유가 된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말과 소를 집집마다 길렀는데 자귀나무로 땔감을 삼으면 마소가 망한다 하여 땔감으로 사용하지 안했다고도 합니다.
곡식 따위를 까불려 쭉정이나 티끌 따위를 골라내는 키를 제주어로 푸는체라고 했는데 뭍에서 키의 바닥은 버들가지나 대오리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제주도의 푸는체는 ‘자골’(차풀), 새삼, 버드나무 따위로 만들었고 키의 뼈대는 왕대나무이지만 제주도의 푸는체는 자귀나무로 만들었고 이것을 제주어로 ‘에움’이라고 불렀습니다.
목재로는 가치가 없으나 농촌에서는 잎을 녹비로 이용하고 관상수로서 정원이나 공원에 식재가 적당하며 사방용수로 절개지나 도로주변에 식재할 수 있는 나무로 토심이 갚고 건조한곳에서 잘 자랍니다.
꽃은 7월에 가지 끝에 우산살처럼 갈라진 꽃대가 나와 끝마다 20여개의 꽃이 브라질 카니발에서의 여인들이 장식처럼 우아하게 피는데, 꽃이 위쪽에는 연붉은 자주색이고 아래쪽으로 갈수록 희며 꽃받침 통 끝이 5갈래로 갈라지고 연한 녹색을 띠며 한 달 정도 꽃이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귀나무는 장마를 알리는 나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조상들은 자귀나무가 자라는 모양을 보고 농사에 활용하기도 했는데 자귀나무는 5월경에 잎이 늦게 나오는데 움이 트게 되면 늦서리가 없으니 마음 놓고 곡식을 파종할 수 있고, 첫 번째 꽃이 필 무렵에 팥을 밭에 뿌렸다고 합니다..
한방에서는 자귀나무 껍질이나 꽃이 진통이나 강장, 진정효과가 있다하여 신경쇠약이나 불면증에 약재로 사용했는데, '동의보감'에는 껍질이 '맛이 달고 독이 없으며,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근심을 없애고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잎은 어긋나게 나온 긴 잎줄기에 10여 쌍이 마주 난 작은 잎줄기에 잎들이 촘촘하게 마주 달려 깃털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가 밋밋한데 밤에는 작은 잎줄기에 난 잎들이 오무라져 합쳐집니다.
줄기는 키가 3~5m정도 자라고 줄기가 굽거나 사선으로 자라며 어린 나무는 노란빛 도는 밝은 회갈색이었다가 자랄수록 회갈색이 되고 세로 줄 무늬가 생깁니다.
열매는 꼬투리로 맺히는 열매(협과)로 5개 내외의 씨앗이 들어 있으며 가을철에 익습니다.
제주 화순 올레9코스의 올랭이(겨울 철새인 바다오리 따위를)소로 통하는 계단 부근, 황개천 바로 전에 자귀나무 숲길이 좋습니다.
수월봉에서 보는 차귀낙조의 주인공 차귀도는 자귀섬, 자구섬, 또는 죽도라고 부르는 섬인데, 자귀나무가 많아서 자귀섬이라 하였다가 차귀도가 되었다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