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주 세계의 알/썰/신/잡/
포도주를 마시는 곳에 시와 철학이 있었다면,
맥주를 권하고 마시는 곳에는 거사가 함께 했다
이런 말과 함께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책의 저자인 미카 리싸넨과 유하 타흐바나이넨은 스포츠와 엉뚱한 분야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라서 그런지 기원전 유럽에서 시작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맥주와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삽화와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표지를 넘기면 갈색의 유럽 지도 위에 책에 소개된 24종 맥주의 생산지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목차를 넘기면 실제로는 본 적이 없는 독일의 '맥주 순수령' 사진이 보입니다.
좁게는 한 나라의 역사에, 넓게는 전 세계 역사에 영향을 미친 크고 작은 사건들의 이면에서 수많은 맥주잔이 오고 갔을것입니다.
책이 출판된지 5년이나 되었지만 주말, 가쉽거리로 쉽게 다가갈만 합니다.
쉽게 읽히고 가볍게 다가오는 책입니다.
책은 맥주 세계의 알/썰/신/잡/(알아두면 썰 풀기 좋은 신비한 잡학사전)이라 부를 만합니다.
여럿이 어울리는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술자리에서 책 속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 지적이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맥주와 교회의 동맹
st. feuillien triple 생 푀이엥 트리플
기독교는 보리를 많이 재배하지 않는 지역에서 발생하다보니 최후의 만찬에서도 맥주가 아닌 포도주가 등장합니다.
이와 함께 유대-기독교가 전해지기 전부터도 남유럽 사람들은 맥주를 멀리 하고 와인을 칭송했을뿐 아니라 맥주를 마시는 이들을 야만인이라 하고 맥주는 맛도 없고 건강에도 해롭다고 전합니다.
게르만족이 정착한 중부 유럽에서는 지배 계급의 포도주와 평민의 맥주라는 두 개의 술문화가 생기면서 맥주는 점점 하급 주류로 격하됩니다.
로마의 정복왕 카이사르는 갈리아 지방에서 바다를 건너 브리타니아로 원정하며 스코틀랜드 고원까지 진출했지만 아일랜드까지 가진 않아, 그 덕에 아일랜드의 켈트족은 5세기까지도 자기들의 섬에서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때 브리타니아 출신 성 패트릭이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그 섬에 들어갔는데 맥주를 마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오히려 이를 장려해 봄이면 맥주를 빚어 부활절 다음에 신도들에게 대접하게되고 이렇게 시작된 맥주 전파가 아일랜드의 전통 수호성인 성녀 브리지다가 목욕물을 맥주로 바꿔주질 않나 맥주통에서 맥주가 콸콸 쏟게해 모든 사람에게 맥주를 먹였다는 전설이 전해지자 맥주는 더욱 뿌리 깊게 수도원의 술로 자리 잡아 갑니다.
그 중 맥주를 좋아하는 성 콜롬바누스는 금욕적인 수도 생활을 하되 맥주의 가치를 높이 샀는데 그가 사망한 뒤 그를 기리는 수도원을 지었는데 맥주 양조장에도 공을 들여 맥아용 곡물 창고와 양조장, 맥주 저장 창고까지 완벽 구비했고 수도원의 맥주 양조 전통은 그 후로도 오래 유지되며 발전 합니다.
중세 내내 일부 수도사들이 맥주 양조를 전담하면서 수도원의 맥주 품질이 엄청 향상되며 이러한 수도원을 모델로 삼은 양조장은 영국으로 수출되었고 중세 후기가 되자 정치상황이 안정되면서 상업적 양조장이 탄생하게 된것입니다.
현재 수도원 맥주가 가장 유명한 나라는 벨기에로 트라피스트라는 라벨을 붙여야 하는데 트라피스트회 소속 수도원 6곳의 수도사들이 수도원 안에서 양조하는 맥주이고 이외에 비슷한 모습으로(공식적 인정은 아니지만) 지금은 20여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줌싸개 동상이 내뿜는 것은?
Cantillon Gueuze 100% Lambic Bio 칸티용 괴즈 100% 램빅 바이오
벨기에 브뤼셀에는 누구나 아는, 누구나 들르는 관광 명소가 있는데 Manneken Pis 마네켄피스라고 하는 오줌싸개 동상입니다.
1619년 제롬 듀케뉴아가 만든 높이 약 60cm의 청동상이 여러 차례 도난 당하는 수난을 겪었고, 현재 설치되어 있는 동상은 1965년 복제본으로 원래의 동상은 그랑플라스의 브뤼셀 시(市) 박물관(Maison du Roi/Broodhuis)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12세기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큰 영지는 지금의 벨기에 중부부터 네델란드 남부까지 뻗어있던 브라반트 공국이었다.
브라반트의 행정도시는 브뤼셀과 루뱅이었는데 이에 북부의 앤트워프와 브레다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세금이 브뤼셀로 흘러 들어가는 것에 반발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브라반트 공국의 왕위 계승자 고드프리 3세가 태어났습니다.
훗날 수도원 맥주로 명성을 떨친 그림버겐시에서는 이미 2년 전부터 폭동이 반발했다.
고드프리 2세가 갑자기 사망하자 오린 고드프리 3세가 왕위에 올랐고 그림버겐시를 다스리던 베르투트 가문이 대놓고 반란을 일으켰고 그 반란에 다른 북부 도시들도 가세하며 공격을 해오자 고드프리의 어머니는 플랑드르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플랑드르의 지배자 디트리히 폰 알자스는 공작의 청을 받아들였으나 뜻밖에 아기 고드프리도 전쟁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하자, 하는 수 없이 고드프리는 유모와 함께 요람에 누운 채 전쟁에 참전했고 반란군과 마주합니다.
램빅 맥주를 마신 유모의 젖(맥주를 마시면 젖이 잘 나온다는 속설이 있었다)을 배불리 먹은 어린 고드프리 3세가 나라의 운명이 걸린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브뤼셀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칸티용 괴즈 100% 램빅방오란 맥주를 소개하는데 람빅은 효모를 첨가하지 않고 공기 중의 야생 효모와 박테리아를 이용해 자연 발효시킵니다.
발효 기간은 몇 개월에서 최고 3년까지 걸리는데 괴즈라는 것은 갓 양조한 람빅과 묵은 람빅을 혼합한 맥주로 병에 넣은 후에도 발효가 계속 된다고합니다.
홉, 종교 개혁에 이바지하다
Einbecker Ur Bock Dunkel 아인베커 우어 보크 둔켈
종교개혁기념일을 맞이하면 루터 맥주가 빅 히트라고합니다.
그의 이름을 딴 맥주 축제도 있고 그의 고향에서는 항상 그를 기리는 맥주 축제를 연다고도 합니다.
독일 북서쪽 아이슬레벤이 유명한것은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태어났고 이곳에서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당시 이곳 북부 지역에서는 포도를 재배했지만 대부분이 밀과 보리, 홉을 심은 이곳의 주민들은 맥주를 마셨습니다.
루터는 성장하자 신학 공부를 더 하고자 비텐베르크로 가게되는데 비텐베르크는 작센주의 맥주 수도라고 불릴만큼 주민 수 2천명 정도에 양조장이 무려 172개나 되었습니다.
루터는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와 폐해를 비판한 95개조의 반박문을 발표하며 새로운 프로테스탄트(개신교) 교회의 토대를 닦았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루터를 추방했고 그 이후 그가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프리드리히 3세의 비호 아래 루터는 다시 비텐베르크로 돌아와 예전처럼 집이나 맥줏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등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했습니다.
루터는 유명인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가 무슨 맥주를 마시는지, 몇 잔을 마셨는지까지 셀 정도였지만 실제로 루터는 설교 때마다 절제를 강조했고 알콜을 남용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합니다.
마틴 루터는 이후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했고 한때 수녀였던 그녀는 수녀원에서 맥주 양조법을 배워 집에서도 빚은 비텐베르크 맥주를 칭찬했다고 합니다.
맥주를 좋아했던 루터가 종교개혁이라는 극적인 개혁의 주역이 됐고, 그 일은 역사적 사건이 되어 오늘날을 살고있는 우리의 삶에까지 영향을 주고있으니 당연히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양조업자들에게 좋은 이야기거리임은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루터 덕에 아주 유명해진 아인베크는 자신의 반박문을 변호하기 위해 참석했던 보름스제국의회에 참석했다 처음 맛 보고 사랑에 빠졌는데 4년 후 결혼식을 올릴 때도 아인베커 맥주를 무려 440리터나 주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때 인기를 누렸던 아인베크를 비롯한 독일 북부 지역의 맥주 양조장은 16세기 말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한자동맹 도시들의 힘이 약해지면서 예전만큼 많은 맥주를 수출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름을 날리던 양조 장인들이 뮌헨으로 이주하는 바람에 17세기 뮌헨에서 독한 맥주를 지칭하는 보크라는 명칭이 두루 사용된 게 오늘날 보크비어의 원조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아인베커 우어보크 둔켈을 소개하는데 이 맥주가 16세기의 맥주에 가장 가깝습니다.
구릿빛이 도는 갈색에 달콤한 맥아 향기가 나고 입에 들어가면 향신료 냄새가 감돌면서 캐러멜 같은 맥아 향이 나지만 뒤끝은 홉 맛이 강합니다
농부와 술집을 그린 화가들
Lindemans Faro 린데만스 파로
맥주를 마시며 작품을 구상하고, 맥주를 작품 소재로 삼기도 하며 많은 화가들이 맥주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특히 16-17세기 네델란드 미술에서 맥주가 많이 등장하는데 여러 화가 중 Pieter Bruegel the Elder 피테르 브뤼헬, Adriaen Brouwer 아드리안 브라우어르가 대표적이다.
프랑드르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브뤼헬은 평범한 시골 농부들의 삶을 화폭에 담았는데 브뤼셀로 옮긴 후에는 맥주 마시는 장면이 더 자주 등장합니다.
르네상스의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브뤼헬은 인간의 고결한 모습보다 초라한 농부들이 일하고 파티를 벌이고 춤추는 장면들에 풍자적인 요소를 담았습니다.
'The harvesters 추수하는 사람들'에선 밀죽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The Peasant Wedding 농가의 혼례'에선 사람 수만큼 많은 맥주잔과 병이 등장하고 'Peasant Dance 농부들의 춤'에선 거리에서 벌어진 축제에서 벌어진 술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유명한 화가로는 아드리안 브라우어르라는 화가가 있는데 브라우어르라는 이름이 바로 양조장이죠.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단박에 재능있는 화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술에 쩔어서 담배를 피우고 늘 빚에 시달리고 주먹다짐을 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 화가의 성향대로 그의 그림에는 주막과 술집이 자주 등장하는데 화가의 고향인 오우데나르데는 아직까지 '아드리안 브라우어르'라는 그가 가장 사랑하던 브라운 에일 맥주를 제조한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 '담배 피우는 남자들'은 술에 건아하게 취한 채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맥주를 마시고 있고 '술집에서'라는 그림에서도 한 잔의 갈색 맥주가 좌중을 황홀경에 빠뜨립니다.
이 장에서 소개하는 맥주는 린데만스 파로입니다.
람빅은 통에서 발효시키면 바로 마실 수 있지만 대부분 원액을 그대로 마시지 않고 묵힌 맥주와 섞어서 혼합주(괴즈)를 만들거나 가공해서 각종 과일 맥주나 '파로'를 만듭니다.
파로는 갓 발효된 람빅과 1년 숙성한 람빅, 그리고 얼음사탕을 혼합한 술로 괴즈보다 맛이 순하고 단맛과 신맛이 섞인 특유의 맛을 내는데 브뤼헬과 테니르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농민들이 마시던 맥주가 바로 이 파로입니다.
블레젠비크에서 만드는 린데만스 파로가 가장 유명한데 블레젠비크는 주민수가 3천명 밖에 안되는 브뤼셀 회곽의 작은 마을이지만 식음료 차원에서 보면 벨기에의 아홉게 양조회사 중 하나인 1822년에 설립된 가족 기업 린데만스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대도시나 마찬가지죠.
린데만스 파로는 얼음사탕 맛이 살짝 나는 반짝이는 호박색 람빅 맥주로 신맛이 적은 균형 잡힌 풍미가 좋습니다.
30년 전쟁의 승리를 이끈 우어 크로스티처
Ur Krostitzer Feinherbes Pilsner 우어 크로스티처 파인헤르베스 필스너
유럽의 옛 도시는 정방형 블록을 빙 둘러싼 가옥이 있고, 그 가운데 마당이 있고, 그 마당 둘레에 창고와 재래식 변소, 마구간과 가축 우리가 있고 그 한가운데 우물이 있어, 가축과 한데 어울려 살았으니 우물물의 상태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과거 전쟁이라 하면 적의 무기에 맞아 전사하는 병사보다 오염된 식수로 인해 여러 가지 질병, 특히 장 감염으로 사망하는 병사의 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맥주 양조업자들은 미량의 불순물만 섞여도 그 우물이나 샘물로 만든 맥주는 불순물이 섞인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양조 공정을 철저히 지켜 허브를 끓이고 당시로서는 정말로 깨끗한 통에 담아 발효시키면 홉의 쓴맛과 알코올이 박테리아의 성장을 억제하니 맥주는 안전한 음료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부대가 이동할 경우, 다는 아니지만 당연히 해당 지역에 맥주 저장고가 있는지를 확인 합니다.
30년 동안 계속 된 전쟁은 약탈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을 정도로 독일의 많은 지역 주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1631년 전쟁은 라이프치히까지 밀려왔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한 농부가 하인을 시켜 밑단을 가져오라고 시켰는데 오지 않자 궁금해서 밖으로 나왔고 그때 웬 기사가 말을 달려와 농부 앞에 멈추더니 스웨덴 스타브 아돌프 국왕이 여길 지나가니 맥주 한잔만 가장 좋은 잔에 폐하의 이름으로 줄 것을 정중히 요구했다고 합니다.
농부는 얼떨결에 그러라고 했고 왕의 부대가 다가오자 맥주잔에 맥주를 가득 채워 왕에게 건네며 잔을 비우고 적을 물리치라고 했자, 왕은 맥주를 비우고 그에게 자신이 끼고있던 루비가 박힌 금반지를 하사했다고 합니다.
17세기까지 맥주는 자기 지역 외에는 소비될 수가 없었지만 18세기가 되면서 넓고 단단한 도로가 생기면서 무거운 곡물과 맥주를 실은 운송 수단의 이동이 용이해졌고, 19세기에는 철도까지 추가되면서 대량 생산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교통 수단이 발달하자 맥주 기업들도 크게 도약하는데 하인리히 오버랜더라는 사람에 의해 22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맥주 기업 오버랜더 양조장이 그로부터 시작됩니다.
1878년 양조장은 기사령과 작별을 고하고 독립 기업이 되었으며 1907년에는 오버랜더 주식회사가 됩니다.
오버랜더 주식회사는 국영 기업 크로스티츠 양조장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독일이 통일된 후 크로스티츠 양조장은 라데베르거에 합병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스웨덴의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맥주병 라벨에는 여전히 구스타프 아돌프 초상화가 그려져있으며 맥주 축제 때는 스웨덴 군복을 입고 전쟁 당시의 장면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유럽을 향한 러시아의 갈증
Baltika #6 Porter 발티카 No. 6 포터
러시아 표트르 대제는 경제 상황은 어두웠고, 국민은 혁신을 거부했으며 교회가 사회의 구심점이었고 중국의 영향으로 머리를 기르고 변발까지 유행했던 러시아 상황을 개탄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문명이 발전하고 있는 서구 유럽에 눈을 돌립니다.
1690년 군주가 된 표트르는 1695년 오스만 제국과 싸워 아조프 해를 손에 넣은 후 유럽 땅에서 실제 경험을 쌓기 위해 조국을 떠났납니다.
여행의 목적은 군 현대화와 전함 건조 기술을 배우는 것이었지만 표트르는 음주 문화를 포함한 다른 분야에서도 현대화를 꿈꾸었습니다.
1698년 러시아로 돌아온 표트르는 군을 개혁했고 전쟁 마다 싸워서 이기는데 1703년 스웨덴과 싸워 빼앗은 네바강 어귀에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를 건설합니다.
이 요새를 시작으로 인공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건설됐고, 불과 1년 후 채 완공도 안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 제국의 수도로 삼게 됩니다.
건설 기간 중 노동자들을 독려하기 위해 표트르 대제는 맥주를 하사했습니다.
표트르 대제가 맥주를 수입하자 도시 중상류층이 보드카 대신 맥주와 유럽 술을 선호하기 시작했하지만 오래 가진 못했습니다.
궁중 암투 시대가 지나고 독일 출신의 예카테리나 2세가 권력을 잡자 그녀는 궁중에서 소비할 엄청난 양의 맥주를 영국에서 수입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영국은 인도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 인디아 페일 에일(IPA)이 거의 사라질 때라 이 시기에 엄청난 양의 맥주를 러시아에 수출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수입한 맥주를 임페리얼 에일, 또는 임페리얼 스타우트라고 불렀고 러시아 황실은 영국에서 수입한 독한 스타우트 맥주를 즐겼습니다.
18세기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그 인근 양조장들이 똑같은 흑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발티카 포터로 맥주의 품질은 고르지 않았지만 구소련 시절에도 양조 전통은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소련 맥주의 명성을 되살리고자 레닌글라드에 고급 맥주를 생산하는 새 양조장을 짓기로 했는데 양조장이 완공된 1990년 소련은 이미 붕괴되기 시작하는데 그 후 발티카 양조장은 1992년에 민영화 되었고 이후 4년만에 러시아 최고 양조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2008년 덴마크 양조 기업 칼스버그에 인수되면서 현재는 유럽 2위를 달리는 맥주 대기업이 되었습니다.
발티카 No. 6 포터.
영국 포터와는 달리 하면발효 맥주고 색깔은 검은색이고 잔에 따르면 희고 치밀한 거품이 생깁니다.
호밀빵과 로스팅 아로마, 맥아 맛에 초콜릿 맛이 살짝 감돌고 질감은 드라합니다.
맥주, 과부와 고아들을 구제하다_
A. Le coq Porter A. 르꼬끄 포터
중세 말부터 유럽 대도시에서는 몇백 년 동안 대규모 길드의 조합원에게만 맥주 양조권이 주어졌는데 18세기 접어들면서 소규모 길드들이 독점권을 맹비난하며 양조 권리를 요구하자, 양쪽 모두에게서 독점권을 빼앗고 앞으로 맥주 제조와 판매에 관한 권한은 과부나 고아 및 달리 생계비를 마련할 방도가 없는 빈민에게 줍니다.
서유럽에서 맥주 양조업자 길드의 역사는 무려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누구도 양조장 수가 마구잡이로 늘어나는 건 원치 않았기 때문에 길드에 가입할 수 있는 방법은 상속과 매입, 딱 두 가지밖에 없었고 그 절차도 양조장 주인이 되려면 2년에서 5년 사이의 경력이 필요할만큼 까다롭게 양조권을 주니 맥주의 품질도 높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15세기가 되자 길드 체제는 한자 동맹 도시를 넘어 발트해 지역까지 확산되는데 당시 에스토니아 타르투는 독일에서 온 독일 기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따로 양조업자들의 길드가 없었고 대부분이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 기사단의 길드에 소속돼있었습니다.
16세기 기사단의 세력이 약해지자 러시아, 폴란드, 스웨덴의 지배를 거쳐, 최종적으로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에 들어갔고 표트르 대제는 독일 길드의 양조독점권을 인정했지만 소규모 길드는 이에 동의하지 않아 둘의 갈등은 심각했고 폭력 사태까지 유발하곤 했습니다.
1782년 볍원은 양쪽 길드 모두에게서 독접권을 빼앗고 새로운 기관에 독점권을 주며 타르투에 새로운 양조 회사를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라트비아의 리가의 양조 회사를 모델로 삼아 세운 타르투 양조 회사는 맥주를 둘러싼 길드 간 분쟁을 종식했을 뿐 아니라 사망한 길드 조합원의 아내나 자녀, 아무 잘못 없이 빈민이 된 길드 조합원에게만 이 회사에 들어올 자격을 주는등 빈민 구제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 결과 18세기까지 어마무시한 양의 맥주를 팔았고 발트해 연안의 다른 도시인 리가, 페르누, 탈린 등에서도 이와 같은 회사를 설립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맥주 양조권을 주었는데 사실 이러한 방식의 사회적 기업은 역사적으로 유례가 드물었습니다.
이렇게 맥주가 벌어들인 돈은 1821년까지 양조 회사를 거쳐 빈민 구제책으로 도시 빈민에게 지급되었습니다.
A. 르꼬끄 포터는 에스토니아의 타르투 맥주로 1807년 알베르 르꼬끄는 런던에 자기 이름을 딴 회사를 설립했고, 포도주와 맥주를 제조해 판매했습니다.
특히 르꼬끄 양조회사가 런던 양조장에서 러시아로 수출하던 독한 에일 흑맥주가 인기를 끌었는데 그게 바로 르꼬끄 포터로 1869년 발트해에서 침몰한 증기선 올리비아호가 1974년에 발견됐는데 그 화물 중에도 러시아로 향하던 르꼬끄 포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러시아가 자국 맥주를 보호하기 위해 수입 관세를 매기자 르꼬끄 양조회사는 20세기 초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사업을 확장하고 1912년 타르투의 티볼리 양조장을 매입해 러시아 영토에서 포터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같은 해 '황궁맥주 남품업체'라는 명예로운 이름도 얻었지만 구소련의 점령으로 르꼬그 양조회사도 국유화 되었지만 에스토니아가 독립하면서 다시 민영화 됐고, 1977년에는 핀란드 올비 양조회사가 새 주인이 됩니다.
르꼬끄 포터는 엄선한 검은색 특수 맥아로 제조해 진갈색을 띠고 거품이 치밀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나며 로스팅 아로마와 과일, 커피 맛도 느낄 수 있습니다.
미식가 장교
Olvi Sandels 올비 산델스
1764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Johan August Sandels 요한 아우구스트 산델스는 스웨덴의 위대한 사령관이자 음식과 술을 즐겼던 미식가로 유명합니다.
산델스는 러시아가 1808년 핀란드를 공격하자 스웨덴 사령부는 후퇴 전략을 선택해 남부 해안의 스바톨름과 비아포리 요새만 지키기로 했는데 그걸 지켜낸 사람이 바로 산델스로 스웨덴 전쟁사에 길이 남을 찬란한 승리를 거뒀습니다.
1813년에는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군대와 맞서 싸웠고, 스웨덴 전쟁위원회 회장에 임명되었으며, 노르웨이 총독 자리에까지 올랐고 군사 사학자들에게 북유럽 최고의 전술가로 추앙받기도 했던 그는 그의 포트폴리오만큼이나 맥주를 사랑했고 미식에 심취해 있어 있어 전쟁 중에도 그의 대식가적 면모는 돋보이는데, 전쟁으로 보 급품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병사들에게 맥주를 각각 지급했다고 합니다.
그래 1878년 핀란드 이살미에 세워진 양조장 올비는 1971년부터 산델스의 이름을 딴 맥주 올비 산델스를 출시합니다.
그래서인지 1971년 올비 양조장은 처음으로 산델스 맥주를 선보였습니다.
올비 산델스는 핀란드의 보리, 독일의 비터 홉, 체코의 아로마 홉을 재료로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숙성시킨 부드러운 라거 맥주로 알코올 함량도 4.7도로 낮습니다.
색깔은 황금빛이고 미디움 바디의 질감에 약한 홉 맛이 섞인 부드러운 맛입니다.
병 앞면에는 산델스 장군의 초상화가 붙어있고 뒷면에는 그의 짧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철로를 달린 맥주 두 통
lederer premium pils 레데러 프리미엄 필스
독일 최초의 증기기관차 아들러 (adler: 독수리)는 1835년 개통하였습니다.
열차는 뉘른베르크와 퓌르트를 연결하는 노선이었고,편도 9분이 걸렸고 말이 끄는 마차는 26분이 걸려 세배 더 걸렸다고 합니다.
이 열차는 처음에는 사람만 운송하였고, 1836년 최초의 화물 운송을 시작하였는데 첫 운송품은 레데러(Lederer)양조장의 맥주 두통과 신문 한꾸러미였다고 합니다.
퓌르트의 노동자들은 그날 점심 때 평소보다 신선한 맥주를 마셨고 이 사실을 대서특필한 신문들 덕에 레데러 양조장에는 기존의 거래 지역이 아닌 다른 외지에서 주문이 밀려들었습니다.
1867년 오스트리아 빈의 드레어 양조장은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박람회에 자사의 맥주를 기차에 실어 보내, 얼음으로 냉장한 라거맥주가 특수 제작한 차량에 실려 5일 동안 무려 15만 킬로미터를 이동했는데도 맥주는 출발할 때와 다름없이 신선했고 섭씨 4도를 유지했습니다.
뉘른베르크와 퓌르트를 연결한 선로는 철도가 각지에 보급되면서 루트비히반이 나머지 철도망에서 떨어져나갔고 결국 근거리 교통에만 이용되다가 그나마도 교통량이 줄면서 1922년엔 완전히 운행을 중지했습니다.
뉘른베르크시에는 그때를 기념해 철도 박물관을 지었는데 최신 고속 열차인 이체와 당시에 처음 레데러 맥주를 실어날랐던 증기기관차인 아들러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레데러 양조장의 레데러 프리미엄 필스.
레데러 양조장은 1468년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고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크리스티안 레데러가 인수하면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레데러 프리미엄 필스는 전통적인 독일 필스너 맥주로 밝은 노란색을 띠며 약한 홉 향이 있고 흙과 풀, 부드러운 레몬 향이 두드러집니다.
루이 파스퇴르의 맥주 연구
Whitbread Best Bitter 위트브레드 베스트 비터
단시간의 가열로 식품의 보존 기간을 연장하는 '파스퇴르 살균법(저온 살균법)"으로 유명한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프랑스인 루이 파스퇴르는 주를 거의 마시지 않아서 맥주 맛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정통 맥주 강국인 독일을 꺽기 위해 맥주를 연구했습니다.
프랑스 중부 지방에 있는 퀸 양조장에서 이미 사용한 맥아즙의 효모를 새 맥아즙에 덜어 넣는 방식을 보고 기겁해 연구소에 작은 양조장을 짓고 라거 타입의 하면발효맥주에 사용하는 효모를 냉장하지 않고도 더 빠른 시간 안에 저렴한 가격으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합니다.
그리고 런던의 위트브레드 양조장에서 상면발효맥주를 생산하는 런던의 양조장 에서 에일에까지 영역을 넓힙니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맥주 양조 이론과 실제 적용 사례를 집대성한 '맥주에 관한 연구'를 출판하면 그의 연구는 식품 산업과 의학에 헤아릴 수 없는 혜택을 주었는데 양조 분야에 있어서 가장 큰 수혜자는 코펜하겐의 칼스버그 양조장과 위트브레드 양조장이었습니다.
칼스버그 설립자인 야콥센 부자는 실제로 파스퇴르를 만났고 그의 연구 결과를 적극 활용하며 양조장 부지를 가로지르는 길의 이름도 '파스퇴르 길'이라 명하고 동상까지 세웠습니다.
그 결과 칼스버그 연구소의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이 마침내 미생물 없는 라거맥주 효모를 배양하는 데 성공합니다.
파스퇴르가 실제 찾아가 연구를 했던 위트브레드 베스트 비터란 맥주
근데 현재는 이 오래 된 양조장이 사라지고 그곳에서 만들던 맥주를 웨일스 마고란 양조장에서 소량 생산합니다.
코펜하겐의 메디치 가문
Carlsberg 칼스버그
양조의 역사에서 가장 큰 도약은 아마도 정제된 효모를 얻어 늘 좋은 맥주를 만들 수 있게 한 1883년 우리의 발견일 것이다.
칼스버스 대니시 필스너(Carlsberg Danish Pilsner)’ 용기 뒷면의 글귀입니다.
코펜하겐에도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처럼 도시의 예술과 문화를 생성시키고, 부흥시키고, 후원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 위대한 가문이 칼스버그 맥주의 창시자인 야콥센 가문입니다.
야콥센 가문은 양조를 가업으로 삼은 사람은 크레스튼이고 칼스버그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사람은 그의 아들, Jacob Christian Jacobsen 야콥 크리스티안 야콥센이과 손자 Carl Jacobsen 카를 야콥센입니다.
덴마크의 왕은 양조가들에게 덴마크와 왕실을 세계에 대표할 걸작을 만들 것을 주문하자,
야콥 크리스티안 야콥센은 바이에른을 여행하다가 라거 맥주를 처음 맛 봤고 덴마크에서도 라거 맥주를 생산하고 싶어 1847년 새 양조장을 세우고 아들의 이름 칼(Carl)과 공장이 위치한 언덕(berg, hill의 덴마크어)을 따 칼스버그를 만들어 왕실에 헌정하였고, 덴마크 왕실은 칼스버그를 덴마크 왕실의 공식 맥주로 선정합니다.
하지만 제조 과정은 과학적 지식에 바탕을 두고 기업의 성장이 관리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따지는 아버지 야콥센과 맥주의 품질에 상관관없이 생산량을 늘리려했던 아들 카를과 6년간 대립하다 아버지에게서 독립해 새로운 맥주 양조장을 차리기로 하고 뉴 칼스버그란 이름을 붙입니다.
양조장의 두 공장을 가르는 길 이름은 원래 '동맹의 길'이었는데 부자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파스퇴르 길'이라고 바꾸었고,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싸움은 계속 되어 라거 맥주를 제조하는데 쓰이는 효모를 분리하는데 성공을 거둡니다.
결국 부자는 화해했고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비를 맞고 감기에 걸린 아버지 야콥센이 그만 병환으로 사망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사랑하던 시대의 예술품을 하나둘 모으며 독일 고고학자 볼프강 헬비히에게 15년간 카를을 대신해 다량의 미술품을 구매할 것을 요청합니다.
루트비히 1세가 건립한 뮌헨의 글립토테크를 모델로 코펜하겐에 뉴 칼스버그의 클립토테크를 완성해 문을 열며 코펜하겐은 예술의 도시로 거듭나게 되어 사람들은 카를 야콥센을 고대 로마의 예술 후원자 Maecenas 마에케나스에 빗대어 새로운 Mecenat 메세나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15세기 피렌체를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었던 메디치 가문에 견주어도 절대 빠지지 않는 가문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것입니다.
칼스버그 산하 연구소의 한센이 효모 분리에 성공해서 양조 관정에서 다른 종의 효모가 섞여나갈 위험이 차단되자 이 효모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당시에도 이미 덴마크의 맥주 시장을 선도하던 칼스버그는 20세기 들어 세계 최대의 맥주 양조 대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기업의 이름을 딴 제품 칼스버그는 가벼우면서도 홉이 많이 들어간 미디엄 바디 라거 맥주로 물과 홉 맛이 살짝 감도는 부드러운 맥아 맛이며 황금빛이 돌고 칼스버그가 개발한 품종 보리를 원료로 사용해서 향기와 거품이 오래 가고 보존 기간도 길다고 합니다.
맥주의 힘을 빌려 북극으로
Ringnes Imperial Polaris 링그네스 임페리얼 폴라리스
노르웨이의 사업가이자 정치가, 외교관이었던 악셀 하이버그는 세계 여러 나라에 체류하면서 지리에 관해 폭넓은 지식을 쌓았고 긴 외국 생활을 끝내고 다시 노르웨이로 돌아와 아문드 링그네스와 엘레프 링그네스 형제에게 자금을 대어 양조장을 열었는데 링그네스 형제의 양조장은 장사가 잘 되었죠.
링그네스 형제는 하이버그의 열정에 전염되어 양조장의 수익금으로 노르웨이 학자들의 북극해 탐사를 아낌없이 지원해 세계 지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링그네스 양조장은 노르웨이 탐험대를 지원하면서 많은 관심과 호응을 얻었습니다.
랑그네스 형제는 악셀 하이버그와 함께 진정으로 지리 탐사에 힘을 보태고 싶었는데 난센의 탐험대를 위해 특별히 제조한 보콜 도펠보크 맥주 또한 이런 협력 활동의 일환이었습니다.
이 독한 보크 맥주는 긴 항해에도 맛을 유지했고 다른 약한 맥주보다 추위에도 잘 견뎠습니다.
이 양조장은 1978년까지 링그네스 가문 소유였지만 2004년에 소유권이 칼스버그 그룹으로 넘어갔습니다.
2012년 링그네스 양조장은 100년 전 북극 탐험을 기리기 위해 보콜과 같은 도펠보크 타입의 특별 제품을 생산했는데 그 맥주가 바로 '링그네스 임페리얼 폴라리스'입니다.
캐러멜 향과 꿀, 감귤 향기가 나는 이 맥주는 섭씨 10~12도일 때 마시면 가장 그 맛을 잘 느낄 수 있고 병도 북극 느낌이 납니다.
발사 중지! 맥주를 가져 왔다
Grain d’Orge Cuvee 1898 그랭 도르주 뀌베 1898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5개월 정도 지났을 때 성탄절이었기 때문에 서부전선 곳곳에서 병사들이 총을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를 코 앞에 둔 12월 23일, 벨기에와 프랑스 접경 지역인 서부전선의 북쪽 참호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졌습니다.
노랫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병사들은 양초와 크리스마스트리로 참호를 장식합니다.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쓴 글자판을 만들어 독일군에게 보여주자 독일 병사들이 큰소리로 맥주를 주겠다고 하자, 의심의 눈초리로 말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무모한 병사들이 비무장 상태로 뛰어나가자 독일군도 비무장 상태로 참호 밖으로 나와 맥주통을 건네냈고 그 모습을 본 지휘관들은 그날 자정까지 임시 휴전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병사들은 선투 식량과 맥주로 벌써 성탄 축하 파티를 시작하고 성탄절 오후에는 독일군과 영국군이 축구도 함께 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3:2로 독일의 승리.
성탄절을 맞이해 독일군과 프랑스군 양쪽 진영 병사들이 같이 축구 시합을 하고 맥주도 나눠 마시고 전쟁을 초월한 형제애를 나눈것입니다.
이 후 이러한 독단적인 휴전을 사령부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적군과 교류는 용납할 수 없다는 지시가 내려왔고, 자기들 멋대로 휴전에 참여한 병사들을 조치를 취해햐 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군사재판까지 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1차 세계대전은 그 후로도 몇 년 더 끌었지만 이러한 성탄절 휴전은 다시는 없었고 그 뒤로는 끝을 모를 전쟁과 잔혹한 사살, 가스 공격과 같은 잔인한 전쟁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번 장의 맥주는 에일 맥주, 그렝 도르주 뀌베 1898.
1차 세계대전 종전 90주년을 맞이한 2008년에 영국군과 독일군의 성탄절 휴전을 기리기 위해 기념탑을 제막하고 친선 축구 시합을 했고
시합 후, 성탄전 휴전 때와 마찬가지로 독일 측이 축구장으로 맥주통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Radeberger Pilsener 리데베르거 필스너를 가져왔는데 사실 성탄절 휴전 때 마신 맥주는 필스너가 아니라 에일 맥주였을 가능성이 높더고 합니다.
프렐링헨 양조장에서 제조한 에일 맥주였을텐데 원래 맥주로 유명한 도시로 그중 그렝 도르주 양조장이 유명한데 1차 세계대전 때 인기를 누렸던 그렝 도르주 뀌베 1989를 만든 곳이입니다.
냉장 보관해 숙성하는 맥주로 호박색을 띠며 달콤한 과일 맛에 약한 홉 향이 나는데 알코올 도수가 좀 높은 편이지 8도.
비어할레(Bier Halle )의 선동가
Lowenbrau Original 레벤브로이 오리지널
1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는 사병으로 입대해 일반병으로는 드물게 1급 철십자 훈장도 받아 전쟁이 끝나고 소속 부대에 들렸다가 특별한 임무를 뮌헨에서는 얼마 전에 '레테' 공화국을 수립하려던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미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한 상태라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 히틀러는 독일노동당, 일명 나치스라는 소규모 집단이 25여명가량 모인 비어할레 슈테르네커브로이갔다가 연설이 탐탁치 않았던 히틀러가 그를 밀치고 연설하자 사람들은 넋나간 얼굴로 명연설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나치스가 창당대회를 연 슈테르네커브로이라는 비어할레의 히틀러 최초의 정치 연설이었습니다.
독일어로 비어할레는 맥줏집, 우리나라의 호프집 같은 곳으로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가 게르만 민족은 중요한 큰일을 의논할 때 맥주를 마신다고 기록했을 정도로 비어할레는 모임 장소로 사랑받았습니다.
이 후 히틀러는 비어할레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며 당원 수는 급격히 늘어났고 히틀러는 자신의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비어할레를 순회했고 곧 히틀러는 나치스의 1인 당수가 됩니다.
계속되는 폭동에 바이에른 주 정부의 카르 총리는 11월 8일 뮌헨에서 가장 큰 비어할레 뷔르거브로이켈러에서 연설을 하기로 했고 1885년에 문을 연 거대한 비어할레 Bürgerbräukeller 뷔르거브로이켈러에 모여들었습니다.
혁명을 일으키지만 히틀러는 반역죄로 5년 징역형을 선고고 8개월만 복역하고 출소하여 그의 독재의 시작이 됩니다.
오늘의 맥주는 편의점에서도 쉽게 접하고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뢰벤브로이 오리지널입니다.
뢰벤브로이 양조장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바이에른의 맥주순수령을 잘 지켜 만든 페일 라거입니다.
풀 바디 맥주로 맥아와 홉 맛이 살짝 납니다.
맥주에서 나온 외교력
Berliner Kindl Weisse 베를리너 킨들 바이세
맥줏집 아들에서 독일의 총리까지 올라간, 1920년대부터 하나의 유럽을 주장한 Gustav Stresemann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은 제적 효율성을 강조했고 양조장과 도매상은 적군이 아닌 동맹으로 전문화와 협업을 권유해서 경제성을 높히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베를린 병맥주 사업의 발전'이라는 논문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그는 이러한 맥주 상거래를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25년 후 독일의 외교정책을 이끄는 주인공이 됩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공화국이 되자 슈트레제만은 국민자유당 창설에 동참했고 초대 당수로 임명된 후 국민자유당은 인기가 높아서 그는 대연정의 총리로 선출됐고, 후에는 독일 외무장관을 지냅니다.
심장 질활을 앓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이 1929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자, 민자유당에서 많은 추종자가 이탈했고 결국 극좌, 극우 정당들이 날뛰기 시작하더니 1932년 이미 아돌프 히틀러가 이끌고 있던 나치스가 독일 최대 정당이 되었고 화해와 균형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입니다.
베를리너 킨들 바이세야.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러시아를 향해 진격하던 중 베를린에서 처음 밀맥주를 마시고 '북쪽의 샴페인'이라 부를 정도로 가히 역사적 유물이라 부를만한 맥주라고 합니다..
라거 맥주가 세계를 정복하면서 밀맥주 양조장이 하나둘 문을 닫았지만 베를린은 예외였죠.
20세기 살짝 그 기세가 주춤했지만 21세기 전통적인 지역 맥주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면서 베를리너 바이셰는 지역 특산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여과하지 않은 베를리너 킨들 바이셰의 색깔은 품종에 따라 맑은 노랑색에서 진튼 황금색까지 다양하고 식초, 밀, 레몬 냄새가 강하고 감귤과 사과 맛이 납니다.
바이세는 그대로 마시기도 하지만 라즈베리나 우드러프(독일허브)같은 시럽을 넣어 신맛을 줄여 마시기도 합니다.
투르 드 프랑스 Tour de France와 맥주
Kronenbourg 1664 크로넨버그 1664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 얽힌 맥주 이야기입니다.
1935년 경기에 바람은 잠잠 했고, 기온은 오전인데도 섭씨 30도를 넘겼고 선수들은 보르도까지 총 17구간 224km의 평지를 무더위와 싸우며 달려야 했습니다.
출발 직후에는 급수대와 간단한 음식, 음료를 제공했지만 그 후로는 구간의 간격이 너무 멀어서 선수들은 구경하던 군중에게 음료를 얻거나, 길가의 분수대에서 목을 축이거나, 길가의 술집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는 갑자기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길가에서 경기를 구경하던 한 무리의 관중이 기다란 테이블을 펼치고 그 위에 시원한 냉장한 맥주를 올려둔 것이죠.
지금은 결과적으로 술이 활동적인 사이클 선수들의 체력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려 전체적인 기량도 함께 감소시킨다고 하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선수들은 오아시스라도 본 듯 테이블로 몰려들고, 선수들이 너도 나도 맥주를 주머니에 챙겨넣는 혼란한 틈을 타 쥘리앵 무아노 선수가 미친 듯이 페달을 밟습니다.
결과 선두 그룹과 15분 33초이라는 엄청난 차이를 벌이며 승리합니다.
1929년 이후 투르 드 프랑스 역사상 단일 구간 시간 격차 중 최대차이 입니다.
이것은 그날 구간우승을 차지한 무아노선수는 결승선을 넘어와 시원한 맥주를 즐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맥주는 크로넨버그 1664입니다
시원하고 향긋하고 깔끔하고, 호가든처럼 스타우트 계열의 맥주와 섞어 먹으면 잘 섞이지도 않고 비주얼도 좋습니다.
크로넨버그 1664는 과일 맛과 맥아 향이 강한 상쾌한 라거 맥주로 프랑스 맥주 점유율의 약 40 퍼센트를 차지하는 자타 공인 최고의 맥주죠.
맥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여성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맥주, 크로넨버그 1664.
옥스퍼드 펍의 단골 문인들
Gravitas brill 그래비타스
옥스퍼드 대학교의 대학가 끝에 이글 앤드 차일드(The Eagle and Child)라는 펍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COVID-19 판데믹 상황으로 2020년부터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17세기부터 학생들과 교수들이 교류했던 곳으로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 나니아 연대기를 쓴 C.S. 루이스가 회원 이었던 문학 토론 모임도 20여 년 동안 이 펍의 단골이었습니다.
톨킨과 루이스는 1926년 처음 만났는데 본격적으로 잉클링스를 결성하게 된 건 루이스의 형인 워런이 옥스포드로 오면서부터였습니다.
사교성이 좋은 워런은 동생의 연구실에 들렸다가 루이스와 톨킨의 대화에 끼게 되었고, 대화가 길어지자 근처 펍에 가서 점심겸 맥주를 제안하다, 아예 술집의 작은 방 중 하나를 잡아 정규적으로 만나 문학과 옛 전설, 혹은 서로의 간심사에 대해 신다게 토론과 대화를 하는 잉클링스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문학, 학술 서적과 순수 문학에 대해서도 폭넓게 이야기했는데 잉클링스의 멤버들은 특히나 전설과 신화는 물론이고 신화 서사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모임의 주도적 인물이었던 루이스와 톨킨은 1930년대에 판타지 소설을 한 편 구상했습니다.
그 결과 톨킨의 처녀작인 '호빗'이 1937년 세상에 나왔고 루이스는 우주 3부작 시리즈의 1권인 '침묵의 행성 밖에서'를 선보이며 그 유명한 톨킨의 '반지와 제왕' 3부작과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찰스 윌리엄스의 '모든 성령의 날 전야'도 그 펍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고
루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구상했던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집필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잉클링스의 정규 모임은 1940년대 말에 들어 뜸해지다가 1949년 10월에 완전히 끝났지만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이글 앤드 차일드에서 자주 만났다고 합니다.
1962년 그들이 모이던 래빗 룸이 수리를 거쳐 홀의 일부가 되자 잉클링스는 단골 펍을 옮겼는데, 바로 건너편 램 앤드 플래그라는 펍이라고 합니다.
이번 장에서 소개하는 맥주는 그래비타스라는 영국 맥주입니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브릴 마을의 실제 모델인 영국 브릴에서 제조한 맥주로 현재 옥스포드에는 양조회사가 없지만 거기서 동쪽으로 20니km 떨어진 브릴 마을에는 영국에서 제일 유명한 에일 양조장 가운데 한 곳인 베일 브루어리가 있습니다.
베일 브루어리는 호빗을 기억하려는 목적으로 매달 돌아가며 특별 제품도 선보인다고 합니다.
베일 브루어리는 마을과 톨킨의 인연을 기억하고자 매달 선보이는 특별 제품에 '호빗'과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사건의 이름을 붙여왔습니다.
그리고 잉클링스 문학 모임의 이름을 딴 특별 맥주도 선보였다고 합니다.
베일 브루어리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는 쓴맛의 페일 에일 '그래비타스'입니다.
감귤, 수지, 홉 맛이 나는 황금빛 에일로 뒷맛이 드라이하고 쓴 홉 맛이 돕니다.
맥주, 전투기 타고 해협을 건너다
Spitfire Premium Kentish Ale 스핏파이어 프리미엄 켄티시 에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영국군이 일반적으로 사용한 전투기는 바로 스핏파이어였고, 활동 반경이 약 750km정도라 정기점검을 받기 위해 영국 본토의 기지를 오가야 했는데 런던 남부 켄트 지방의 비긴힐은 191년에 문을 연 영국 공군의 주요 기지였고 공교롭게 그 바로 옆에 웨스터햄 양조장이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테드 터너는 영국 공군 전투기의 보조 연료탱크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1944년 여름 영국 공군과 웨스터햄 양조장으로부터 스핏파이어의 보조 연료 탱크를 맥주 수송용으로 개조해달라는 이색적인 주문을 받았습니다.
터너는 탱크를 더 두꺼운 알루미늄판으로 제작하고, 격벽을 설치해 내부 구조를 보강했고 마닥의 마개를 꼭지로 교체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맥주탱크에 맥주를 가득 실은 스핏파이어가 마침내 노르망디 비행장에 도착합니다.
얼마 후 전선은 연합군의 숭리로 기울어졌고, 승리가 눈앞에 보이자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에 고무된 많은 양조장이 조종사들에게 공짜로 맥주를 내놓았습니다.
그에 힘입어 스핏파이어의 다양한 기종과 변형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었던 시험 비행사 제프리 퀼은 주날개의 고정장치에 맥주통을 곧바로 부착하는 실험을 했고 고정장치의 개폐기에 쇠바퀴 두 개를 부착하고, 그 안에 영국 양조장에서 쓰는 규격 맥주통인 케그를 넣어 고정한 것입니다.
그렇게주날개 아래에 맥주통을 매다는 이 방법은 금새 널리 사용되었고, 평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조종사들은 맥주통 비행을 명 받았습니다.
스핏파이어 프리미엄 켄티시 에일.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조종사들의 목을 적셔준 맥주 양조장 중 없어진 양조장도 있고, 아직도 영업을 하는 양조장도 있더고 합니다.
웨스터햄 양조장과 셰퍼드 님 양조장인데 셰퍼드 님 양조장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중에도 생산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유서 깊은 양조장 셰퍼드 님이 영국 본토 항공전 50주년을 기념해 출시한 에일 맥가 바로 주 스핏파이어 프리미엄 켄티시 에일입니다.
나치 독일의 공격을 막아 조국을 지킨 전투기 조종사들을 기리는 맥주로 영국 남동부 특유의 쓴 맛이 나는 에일이죠.
색깔은 밤갈색이고, 토피와 홉 향이 진하게 납니다.
이탈리아의 아메리칸 드림
Peroni Nastro 페로니 나스트라즈로
1960년대 금발 미녀가 등장해 날 페로니라 불러줘요라고 한 이탈리아 맥주 페로니는 이탈리아의 주류 소비량을 바꿔놓았습니다.
주로 식사나 유흥으로 마시던 포도주의 자리를 넘보며 맥주 소비량을 무려 10배 이상 늘려갔습니다.
맥주 소비량이 급장한 것은 전후 수십 년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모던 라이프를 연상시키는 페로니의 광고도 한 몫 했습니다.
이번 장에서 소개할 맥주는 페로니 나스트라즈로인데 프란체스코 페로니가 1846년 이탈리아 북부의 비제바노에 자기 이름을 붙인 양조장을 세웠습니다.
그러다 이탈리아가 통일 되면서 수도 로마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로마로 양조장을 이전합니다.
가족 기업으로 출발한 페로니 양조장은 20세기 초 이탈리아 남부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60년대부터 국제 시장에 진출합니다.
2002년에는 다국적 기업 SAB 밀러에 인수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취향을 사로잡은 페로니 나스트라즈로는 색깔이 옅은 미디움 바디 라거 맥주로 이탈리아 라거 맥주 대부분이 그렇듯 맥아 맛을 순화하기 위해 옥수수를 넣습니다.
맛은 신선하고 곡물 맛이 나며 홉의 쓴맛이 뒤에 남습니다.
페로니는 아주 오래 전부터 마셨던 라거 맥주인데 별 특별한 맛이 없는 깔끔한 라거입니다.
양조장 일꾼, 대통령이 되다
Krakonoš Světlý ležák 크라코노시 스베틀리 레작
1948년 공산당은 체코(당시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권력을 장악하며 조국이 공산화되자 유명 식당 주인의 아들로 풍족한 삶을 누리던 하벨의 인생도 순식간에 뒤집혔습니다.
재산을 몰수당했고 부르주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원했던 인문학조차 전공할 수 없어 간신히 공대에 입학했지만, 학업을 포기한 하벨은 연극을 통해 공산주의의 모순을 고발하면서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소련의 침공으로 독재정권이 들어서자 하벨은 펜 대신 맥주 통을 들었습니다.
프라하에서 폴란드 국경의 작은 도시로 이사한 뒤 양조장 일꾼이 되어 추운 겨울날 200㎏이 넘는 맥주 오크통을 옮기는 것이 그의 업무였습니다.
허리가 끊어질 듯, 하벨은 육체노동에서 행복을 느꼈지만 공산당의 압력으로 결국 양조장에서도 쫓겨납니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객’이라는 단막극을 만들었고 연극이 유명해지면서 반체제 운동의 기수로 떠올랐습니다.
당연히 정권의 탄압도 거세져, 하벨은 79년부터 4년간 감옥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하벨의 곁에는 늘 맥주가 있었는데 소련의 개방정책으로 체코 민주화운동에 숨통이 트이자 새로운 조국을 꿈꾸며 토론한 곳이 단골 맥줏집이었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사람이 맥주를 사랑했지만, 하벨은 진정한 맥주 마니아였습니다.
1993년부터 대통령 재임 10년 동안 프라하의 단골 펍이 그의 만찬장이었습니다.
트루트노프는 폴란드 국경과 가까운 체코공화국 북부에 있는 도시로 바츨라프 하벨은 이곳을 좋아해 인근 시골집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이곳 트루트노프 양조장의 대표 제품은 크라코노시 스베틀리 레작은 저온 살균 처리과정을 거치지 않은 호박색 필스너로 거품의 농도가 짙고 맥아, 과일, 토피향이 나고 맥아맛과 홉맛이 강하며 체코 필스너 특유의 드라이한 홉맛이 남습니다.
폴란드의 맥주 애호가 정당
Zywiec 지비에츠
30여 년 전 폴란드에는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정당이 있었습니다.
공식 명칭은 ‘Polska Partia Przyjacioł Piwa’로 직역하면 ‘폴란드 맥주 친구 정당’, 말 그대로 폴란드의 맥주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모여 하는 파티에서 유래한 이 정당은 장난스러운 이름과 달리 의석을 16석이나 차지했던 영향력 있는 정당이었습니다.
맥주 애호가당은 그 자체로 화제를 몰고 다녔지만 화려했던 겉모습과 달리 당 내부는 의회에 입성하자마자 분열되었는데 ‘이젠 술에서 깨고 제대로 된 정당의 모습을 갖추자’는 ‘Big Beer(큰 맥주)’와 ‘초심을 잃지 말고 맥주를 통해 세상을 보자’는 ‘Small Beer(작은 맥주)’로 갈라졌습니다.
치열한 분열 속에서 심지어 당을 최초로 설계했던 할베르마저 당적을 사회민주당으로 옮겨버리며 중추들이 다 빠진 당은 이어진 1993년 총선에서 겨우 0.1%의 표를 얻어 의회 재입성에 실패했고, 그다음 총선인 1997년 총선 이전에 결국 당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비록 역사는 짧았으나 그들은 맡은 바 임무를 다해, 0년간 폴란드 술 소비에서 보드카가 차지하는 비중은 30퍼센트로 줄어들며 폴란드는 맥주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맥주 문화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모두 꽃을 피워 현재 폴란드는 유럽에서 독일, 러시아, 영국에 이어 네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맥주 생산국이고 국민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 역시 세 배로 증가해 20년 만에 거의 100리터에 육박합니다.
소개하는 폴란드 맥주는 지비에츠로 풍부하게 올라오는 하얀 거품과 달콤한 향을 음미할 수 있으며, 황금빛의 맑은 색상은 맥주의 향취와 품격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첫 맛은 맥아 고유의 은은한 달콤홤과 과일 향을 동시에 느낄 수 있고 여운이 느껴지는 뒷맛은 동유럽 맥주 고유의 쌉쌀하면서 진한 풍미를 가지고 있어서 고유의 깊은 맥주 맛에 한번 더 감탄하게 됩니다.
사라예보의 생명수
Sarajevsko Pivo 사라예브스코 피보
1989~1990년, 동유럽 공산주의가 붕괴하면서 다민족, 다종교 국가이던 유고슬라비아도 갈가리 찢겼습니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휩쓴 민족주의의 쓰나미는 결국 보스니아에까지 당도해 1992년 2월 보스니아 정부와 세르비아군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모든 수원이 세르비아군의 점령 지역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사라예보 시를 관통하는 미야츠카 강에서 물을 길어다 먹을 수는 있었지만, 탁 트인 강변에서 물을 긷자면 세르비아 저격수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뿐 아니라 세르비아군이 강 상류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이 도는등 수질도 의심스러워 마당이나 지붕에 통을 놓고 빗물을 받아 보기도 했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고 결국 그런 상황에서 7, 8월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여름이 다가 왔습니다
몇몇 개인의 집에 파 놓은 우물만으로는 물을 공급하기에 턱도 없던 그때, 사라예브스카 양조장의 깊은 우물이 1년 6개월 동안 이 도시의 생명수가 되어 주었습니다.
1991년 사라예브스카 양조장의 연간 맥주 생산량은 7천480만 리터로 포위된 사라예보 시민에게 나누어 줄 경우 1인당 200리터가 넘는 양이었습니다.
양조장 안에 공식적인 물 배급소가 설치되었고 다른 구역으로는 물 배급차가 오갔습니다.
양조장에는 물이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생산량은 많지 않았으나 사기진작 효과로 포위 기간 3년 내내 쉬지 않고 맥주도 만들었습니다.
1994년 1월, 미국 구호 활동가들에의해 정수 시설이 설치되자 미야츠카 강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사라예브스카 양조장의 우물은 맡은 바 임무를 마치고 다시 맥주 원료라는 본연의 목적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라예브스코(Sarajevsko):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맥주로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에 위치한 사라예브스카 맥주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맥주이다.
홉이 적게 들어간 신선한 라거맥주로 노란색을 띄며 첨가물질 없이 물, 보리맥아, 홉, 효모등의 자연 원료로만 만들어졌습니다
켈트 호랑이의 비상착륙
Guineness Draught 기네스 드래프트
기네스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Cowen Brian 브라이언 카우언입니다.
불과 스물네 살이던 1984년, 아일랜드의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1997~2004년까지 보건 및 외교부 장관을 지냈으며 2004년 9월에는 재무 장관 , 2008년에는 총리가 됩니다.
가족은 중부 아일랜드 털러모어에서 펍을 운영했고카우언은 자주 펍에 들러 맥주를 마셨습니다.
장관이나 총리시절에도 카우언은 한밤중까지 나라 경제를 의논할 때, 기네스 맥주로 에너지를 채우곤 했습니다.
성공한 젊은 기업인들은 현대식 술집을 즐겨 찾아가 비싼 술을 마시고는 했지만, 카우언은 동네 펍에서 보통 사람들처럼 기네스 맥주를 마셨습니다.
천박한 장관이라는 조롱도 받았으나 여론은 확실히 그의 편인 듯했습니다.
문제는 아일랜드 경제의 추락의 끝에 음주 기삿거리로 그가 있었다는것입니다.
아일랜드 국내 총생산GDP은 2000~2006년 사이에 두 배로 뛰었고 유럽 연합에 새로 가입한 동유럽에서 노동 인력이 밀려 들어왔는데도 실업률이 5퍼센트를 밑돌아 순항했습니다.
아일랜드 부동산 거품의 위험은 현실이 되어 2008년 한 해 동안 아일랜드 증시의 주식 지수는 66퍼센트 떨어졌고 실업률은 두 배로 증가해 12퍼센트로 뛰었으며 부동산 가격은 20퍼센트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브라이언 카우언과 공화당의 인기도 무너져 2009년 1월의 여론 조사에서는 카우언 정부가 일을 잘했다고 응답한 국민이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총리의 음주가 1면 기삿거리가 된 때는 경제 위기가 최악의 단계는 넘긴 2010년 9월로, 아일랜드 공영 라디오 방송국 RTE의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한 카우언이 쉰 목소리로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자 카우언이 취했거나 숙취에서 깨지 않은 상태로 방송에 임했다는 이야기가 불거져 나왔습니다.
켈트의 호랑이가 이룩한 경제 기적이 비상착륙으로 끝나지 않고 정상적으로 안전하게 활주로에 착륙했더라면 브라이언 카우언이 들이켠 맥주잔도 재미난 일화 정도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기네스는 스타우트 맥주의 모델로 자리잡았는데 맛은 강하고 드라이하며 홉맛이 많이 나는데 특유의 맛을 내는 비결은 싹을 틔우지 않고 로스팅한 보리입니다.
생맥주에도, 캔맥주에도 질소통이 있어서 마ㅐ를 따면 기포가 발생해 특유의 풍부하고 고운 거품이 납니다.
FC 하이네켄 vs AB 인베브 유나이티드
Heineken 하이네켄
하이네켄은 자사 라거 맥주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워 챔피언스 리그를 후원하며, 칼스버그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와 2012년 및 2016년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EM를 후원했습니다.
AB 인베브 그룹은 버드와이저Budweiser를 주력 홍보 상품으로 내세워 영국 FA컵과 월드컵을 지원합니다.
주력 제품이 아닌 다른 제품도 각 제품이 가장 잘 어울릴 법한 지역을 찾아서 그곳의 국가대표 팀이나 리그 팀을 후원하는데 AB 인베브 그룹의 주필러Jupiler 맥주는 베네룩스 3국 밖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지만,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는 가장 유명한 축구 후원 상품 가운데 하나로 벨기에 1부 리그의 공식 명칭이 ‘주필러 프로 리그’일 정도입니다.
주필러는 벨기에 국가대표 팀의 주요 후원 제품이기도 하고 여러 리그 팀의 협력 파트너이기도 해서, 2013-14 시즌에는 네덜란드 팀인 아약스와 빌럼 II, 스파르타 로테르담 그리고 벨기에 팀인 안데를레흐트, 스탠더드 리에주, 클럽 브루게를 후원했습니다.
지역이 바뀌면 주력 홍보 제품도 달라지는데 독일에서는 AB 인베브의 주력 제품이 하서뢰더Hasseröder입니다.
AB 인베브는 이 제품으로 독일 리그 팀 베르더 브레멘과 하노버 96을 후원했습니다.
하이네켄 그룹 역시 같은 방식으로 각기 다른 제품을 앞세워 각국의 국가대표 팀과 리그 팀들을 후원한다. 바르카Warka는 폴란드 국가대표 팀, 암스텔Amstel은 맨체스터 시의 주력 후원 상품이고 심지어 유명한 포도 산지인 이탈리아 캄파니아 주의 SSC 나폴리마저 비라 모레티Birra Moretti를 앞세운 하이네켄 사의 후원을 받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홍보의 장이 문화와 여가 분야로 이동했는데 팬들은 경기장뿐 아니라 술집과 소셜 미디어에서도 경험을 공유해 운이 좋으면 술집이나 인터넷에서 응모 이벤트에 참여해 맥주회사가 후원하는 경기의 관람권을 얻을 수도 있고, 거꾸로 경기 관람권으로 온·오프라인의 맥주 이벤트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하이네켄이 2012년 챔피언스 리그에서 진행한 광고 캠페인과 칼스버그와 리버풀의 오랜 협력 관계는 수많은 팔로워와 ‘좋아요’를 얻어냈는데 내부 정보에 따르면 매출액도 기대만큼 올랐다고 합니다.
하이네켄은 칼스버그보다 17년 늦게 출발했지만 세계 70여 나라의 공장 165곳에서 8만5000여 명이 연간 122억 L의 맥주를 생산할 정도로 급성장해 세계3위 양조기업입니다.
하이네켄 라거는 밝은 노란색을 띄며 거품이 많습니다.
맛은 신선하고 과일 맛이 나며 중간 정도 홉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리하다보니 완전 요약 스포가 되었네요.
소강상태의 찌뿌둥한 장마주말이라, 시원한 맥주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책을 소개 했습니다
깊지 않은 내용이라 쉽게 읽히고 소장까지는 갈것 없어서 e-book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