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발 하라리,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사피엔스(Sapiens)는 하라리가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진행했던 강의를 바탕으로 2011년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로 처음 출판되었으며 영문판은 2014년에 출판되었죠.
한국어판은 2015년 11월.
당시 무명의 역사학자가 쓴 책임에도 출판 이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65개 국어로 출간되어 2,300만부 이상 팔려 글로벌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국내에서도 2023년 1월 기준, 200쇄 발행, 115만부 판매라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는 북클럽에서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추천하였고, 빌 게이츠, 재레드 다이아몬드, 데미안 허스트, 헨닝 망켈 등 여러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명사들이 주저 없이 읽기를 권했지만 세계적인 고고학자나 미래학자들이 보기엔 이 책엔 새로운 사실이라기 보다 여러 팩트를 조합한 것에 불과하고 일부는 확인되지 않는 내용을 기정사실화했다고 비난을 받기도 하며 대단히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입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출간되는 빅 히스토리 계열의 책이 보통 자료 정리, 분류에 주로 치중하는 데 반해 이 책은 저자의 주관적 해석이 지나칠 정도로 넘쳐 이에 동의하지 못하면 저항해야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관의 과도한 노출이 막무가내라기보다는 씨줄과 날줄로 엮여 정교한 비단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서툴거나 밉지 않죠.
생물학, 물리학, 종교에 대한 성찰이 놀랍도록 탁월합니다.
그래,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역사를 지엽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한 발 뒤로 물러나 객관화시킨 뒤, 넓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기때문 입니다.
사피엔스는 인지 혁명으로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게 됐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3가지 신화, 즉 돈, 제국,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자본, 정치, 믿음.
인간이 인지 혁명 당시 만든 상상의 질서 아래 여전히 살고 있고, 여태 벗어나지 못했고 경제 문제는 지금도 세계의 화두고, 제국의 문제, 종교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죠.
이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온 인간의 역사를 두고 저자는 커다란 틀에서 하나의 이행기로 보는데 넓은 시야에서, 이 또한 지나가는 시기에 불과한 거죠.
눈앞의 자잘한 문제는 치워버리게 하고, 사피엔스라는 종의 차원에서 인간으로서 통찰을 갖고 온전히 바라보게 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은 이렇다.
2백 만 년 전부터 약 1만 년 전까지 지구에는 다양한 인간 종이 동시에 살았다.
왜 안 그랬겠는가?
오늘날에도 여우, 곰, 돼지 등 수많은 종이 동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몇만 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상한 점은 옛날에 여러 종이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이다.
-26p
저자는 인류역사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의 세단계로 나누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20여만년전에 탄생했을 때만 해도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적인 지위는 아니었지만, 7만년전에 인지혁명을 거치면서 협동을 하게 되어 다른 동물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고, 1만2천년전에 농업혁명을 이루면서 약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1500년대 과학혁명을 통해 인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를 열었고, 동식물과 지구환경을 지배하게 되었다는것이 책의 뼈대입니다.
제1부 인지혁명
인류의 진화는 250만년전 Australopithecus 오스트랄로 피테쿠로부터 시작하는데 그들은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로 이동 정착하며 새로운 종으로 진화합니다
Homo neanderthalensis 호모 네안데르탈인은 유라시아의 추운 기후에서 살아남기위해 근육과 몸집을 키웠고 인도네시아 프로레스섬의 Homo Floresians 호모 프로레시안스는 자원이 부족한 환경을 극복하기위해 난장이가되었지만 1만년 전 이들은 모두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그들이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지구상에 남은 호모 사피엔스가 그 비밀을 쥐고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세계 무대에 이미 등장하였지만, 당시까지는 아프리카의 한구석에서 자기 앞가림을 해나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동물이 언제 어디서 처음 진화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사실은 15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에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피엔스가 살고 있었다는 것이죠.
만일 그중 한 명이 오늘날의 시체안치소에 시체로 등장하더라도 그곳 병리학자는 특이한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불이 있었기 때문에 이전 선조들에 비해 치아와 턱이 작았고 뇌의 크기는 이미 현대인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또 하나의 사실은, 약 7만 년 전 동아프리카의 사피엔스가 아라비아 반도로 퍼져나갔고 거기서부터 유라시아 땅덩어리 전체로 급속히 퍼져나가 번성했다는 것입니다.
Homo erectus soloensis 호모 솔로엔시스의 마지막 흔적은 약 5만 년 전, Homo Denisovan 호모 데니소바는 그 직후, 네안데르탈인은 약 3만 년 전 증발했고, 플로레스 제도의 난쟁이 비슷한 인류는 약 12,000년 전 사라졌졌습니다.
사피엔스의 탓이든 아니든, 사피엔스가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의 토착 인류가 멸종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피엔스의 성공비결 중 가장 그럴싸한 해답은 바로 이런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언어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었다는것입니다.
저자는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사람이나 사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는 사피엔스뿐이라는 것이죠.
사피엔스는 허구 덕분에 집단적으로 상상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창세기, 호주 원주민의 드림타임(dream time)과 같은 공동의 신화를 창조해 냈고, 그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무리를 지어 협력하는 임계치는 150명이라는 연구가 있는데 사피엔스는 이 숫자를 넘는 수십만명의 도시, 수억명의 국가를 제국을 형성할수 있었고 그 원동력은 바로 허구의 등장에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서로 다른 인간이 공동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집단적 상황 속에서 공동체 의식을 형성했는데 현대의 국가, 중세의 교회, 고대도시, 원시 부족 모두 집단적 신화라는 허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교회는 종교적 신화를 토대로 사람을 모았고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도 카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국가도 공동의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데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사람도 같은 국민이란 이유로 동질감을 얻습니다.
사피엔스는 허구를 통해 대집단을 형성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맹수를 제압하고 만물의 영장이 되었습니다.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제2부 농업혁명
호모사피엔스는 뛰어난 인지능력으로 먹이사슬의 최 상층부에 오르며 무리지어다니는 수렵, 채집인의 삶을 살아갑니다.
때때로 폭력과 잔인함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배고픔과 질병,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풍요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사피엔스는 모씨를 뿌리고 식물을 키우는 정착을 꿈 꿨고 그들의 정착은 농업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중동에서 밀과 완두콩을 재배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중미 사람들은 옥수수와 콩을 작물화한것처럼 농업은 한 지점에서 시작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간 게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생겨났습니다.
중동과 중국, 중미에서 농업이 일어났지만, 호주, 알래스카, 남아프리카에서는 농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그곳의 식물과 동물이 작물화 또는 가축화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밀과 쌀, 감자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이들 식물이 오히려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입니다.
밀은 1만년 전에 수많은 잡초 중 하나였고, 중동의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던 풀이었는데 몇천년이 지나면서, 농업화가 진행되면서 밀은 지구역사상 가장 성공한 식물이 되었습니다.
밀은 많은 노동력을 요구했고, 바위와 자갈이 없는 밭에서 잘 자랄뿐 아니라 해충과 토끼등을 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며 밀 밭에 물을 끌어다 대야 합니다.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였던것이죠.
농업혁명이 인류를 발전시켰다는 일부 고고학자들의 해석은 틀렸습니다.
여분의 식량이 더 나은 식사와 여유시간을 제공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지배자들을 낳았습니다.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많이 일했으며, 더 열악한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밀 경작은 단위 면적당 식량생산을 크게 늘렸고, 경작을 위해 사피엔스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여리고 인근의 인구가 수렵채집 시기에 고작 100명이던 것이 BC 8000경엔 1,000명으로 팽창했고 인구가 증가할수록 인류는 더 열악하나 환경에서 살게 됩니다.
농업이 시작되면서 정착촌이 생겨났으며 수확을 위해 돌 낫과 사발 등을 발명했다.
정착촌은 식량을 저장하기 위해 창고가 생겼고, 도둑과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벽을 쌓고 보초를 세웠습니다.
사람들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허구를 생산했고, 그 허구는 종교로 발전하며 사원이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은 집을 지어 그 안에 살게 되었고 내집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습니다.
농경사회가 되면서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알게 되고, 내일을 생각하고 미래가 중요해 졌습니다.
늘어난 수확물과 인구로 지배계급이 생겨났고 지배계급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 살면서 농부에겐 겨우 연명할 것만 남겨 주었습니다.
왕궁, 성채, 기념물, 사원들이 세워지고 엘리트들이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며 지배계급을 먹여살렸습니다.
그들은 왕, 정부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들을 구성하며 농부가 땅을 갈고 물을 대는 동안에 소수 지배자들이 역사를 움직여 온 것입니다.
신화에 기반하고, 신화는 사람들의 신분질서에 의해 유지되었던 공동체가 만들어낸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데 군대, 경찰, 법원, 감옥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강제하는 수단이죠.
그렇다고 폭력만으로는 질서가 유지되기 힘들고 진정으로 신화를 믿는 신도가 있어야 하는데 군대와 경찰의 지휘관은 신화의 신봉자여야 했죠.
신이든, 명예든, 조국이든, 돈이든, 뭔가 진심으로 신봉하는 자들이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이 되고 사회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상상의 질서를 신봉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간 집단이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데이터의 양도 많아져 인간의 두뇌로는 그 많은 정보를 암기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살던 고대 수메르인들은 ‘쓰기’라는 데이터 처리시스템을 개발해 문제를 처음 극복하는데 쓰기는 기호를 통해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입니다.
수메르인들은 점토판에 두 종류의 기호를 새겼는데 그 하나는 숫자였습니다.
그들은 6진법과 10진법의 혼합으로 10, 60, 600, 3600, 36,000을 나타내는 기호를 만들어 냈고 6진법은 하루 24시간, 360°의 분할 형태로 오늘날까지 활용되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문자를 가질 필요성을 느꼈고 오늘날 쐐기문자라고 불리는 문자를 발명했습니다.
BC 2500년이 되면서 왕이 포고령을 내릴 때, 사제들이 신탁을 기록할 때, 시민들이 편지를 쓸 때 문자를 사용했고 비슷한 시기에 이집트인들도 상형문자를 사용했고, 중국에서는 BC 1200년경에, 중미에서는 BC 1000~500년 경에 문자가 발달했습니다.
문자체계의 발달과 함께 세금체계와 관료제도가 쌍둥이처럼 연결되어 자리잡아 갑니다.
농업혁명 이후 인간사회는 오랫동안 남성 우위의 가부장적 사회를 유지해 왔는데 그 배경은 여러 가지로 분석되지만, 어느 하나도 뚜렷한 근거가 없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문화가 여성보다 남성이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한 근거의 그 첫째 주장은 남자가 여자보다 더 힘이 세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 견해는 남자보다 강한 여자가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습니다.
두번째 주장은 남성의 공격성이 여성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남자가 군대를 통제했기 때문에 남자가 사회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견해는 여성은 임신을 하고 아이를 가져야 하므로 의존적이라는 것인데 코끼리나 보노보의 사회에서는 모권 중심의 사회가 나타나는것을 보면 이 주장도 근거가 없죠.
저자는 가부장제가 생물학적 사실보다 근거가 없는 신화들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이 제도가 이토록 보편적이고 안정적으로 유지된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사피엔스의 후반부 과학혁명의 파트에 들어가면 다소 초점이 흐려집니다.
16세기 종교개혁, 구대륙과 신대륙 연결, 과학의 혁명적 발전, 산업혁명을 설명하면서 과학의 발전이 인류를 행복하게 하지 않다고 논쟁적 소재를 자신의 관점에서 단정했습니다. 분명 이 부분도 농업혁명의 반론(농업혁명의 부정적 결과를 극복했다는 의견)처럼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제3부 인류의 통합
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 지며 사피엔스는 수백만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하도록 하는 인공적 장치를 창조하는데 그 네트워크가 문화입니다.
문화는 환경의 변화나 이웃 문화와의 접촉에 반응해 스스로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거나 스스로 내부적 역동성으로 인해 변이를 겪기도 합니다.
인간사회는 그 자체에 있는 모순을 메워주고 결합시키고 치유해주는 역할을 문화가 한다.
BC 1000년 이후에 보편적 질서가 된 문화의 후보 세 가지가 출현하는데 그것은 은 화폐, 제국, 그리고 종교로 이 세가지는 상인과 정복자, 예언가에 의해 발전되었습니다.
복잡한 상업 체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모종의 화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화폐 경제하의 제화공은 다양한 종류의 구두에 매겨지는 가격만 알면 족하지, 신발과 사과, 신발과 염소의 교환율을 암기할 필요가 없고 사과 재배 전문가도 돈만 있으면 사과를 좋아하는 제화공을 찾을 필요가 없는데, 돈은 모든 사람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돈의 가장 기본적 속성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항상 돈을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항상 돈을 원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곧 당신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모든 것과 돈을 교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제화공은 당신에게서 돈을 받으며 언제나 만족할 텐데, 그가 실제로 원하는 것이 사과든 염소든 이혼이든 무엇이든 돈을 주고 그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공동체와 가족들은 늘 명예, 충성심, 도덕, 사랑처럼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삼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시장 영역의 바깥에 있었으며, 돈으로 사거나 팔려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죠.
설령 시장이 값을 잘 쳐주겠다고 하더라도, 어떤 것은 그냥 해서는 안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노예로 팔아서는 안 되고, 경건한 기독교인은 대죄를 범해선 안 되고, 충성스러운 기사는 영주를 배반해서는 안 되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부족의 땅을 낯선 사람에게 팔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돈은 언제나 이런 장벽을 돌파하려고 댐의 틈새에 스며드는 물처럼 기를 써왔습니다.
부모는 자식 몇 명을 노예로 팔아 나머지 자식들에게 먹일 식량을 사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고 독실한 기독교인은 살인과 도둑질과 사기를 저질렀으며 그렇게 얻은 돈으로 교회에서 면죄부를 샀습니다.
야망에 찬 기사들은 자신의 충성심을 경매에 붙여 가장 높은 값을 부르는 사람에게 팔았으며 자신을 따르는 시종들의 충성심도 현금 지불로써 확보했습니다.
글로벌 경제에 진입하는 티켓의 대가로 부족의 땅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낯선 사람에게 팔렸습니다.
돈에는 이보다 더욱 어두운 면도 존재하는데 돈이 서로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편적인 신뢰를 쌓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신뢰, 인간이나 공동체, 혹은 신성한 가치가 아니라 돈 그 자체 그리고 돈을 뒷받침하는 비인간적 시스템에 투자됩니다.
우리는 이방인이나 이웃집 사람을 신뢰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닌 주화를 신뢰할 뿐, 그들에게서 주화가 떨어지면 우리의 신뢰도 사라집니다.
돈이 공동체, 신앙, 국가라는 댐을 무너뜨리면, 세상은 하나의 크고 비정한 시장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대규모 정치 체제의 출현이 시작되었는데, 제국이 무역, 상업, 그리고 기술 혁신의 성장 결과로 나타났고, 이것은 더 크고 복잡한 사회를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제국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권력의 중앙집권화인데요. 이는 최고위층의 소수의 사람이 다수에게 영향을 미칠 결정을 내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로써 인류는 군대, 세금 제도, 법적 틀과 같은 규모 있는 제도를 만들어내게 되었고, 이는 많아진 인구를 통제하는 방법이었으며 동시에 계층을 더욱 분명하게 분리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제국은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모으면서 아이디어, 문화, 기술의 확산을 촉진하는 등 이점이 있었습니다.
제국의 부상은 사상, 문화, 기술의 확산을 만들어내고, 현대 민족 국가의 기반을 만드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종교의 등장은 사람들의 삶에 의미와 목적을 제공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사회적, 정치적 통제의 수단으로 작용했습니다.
종교는 초기 인류가 주변의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하면서 등장했기때문에 초기 종교들은 태양, 달, 그리고 지구와 같은 자연적인 힘과 요소들에 대한 숭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적 믿음이 종종 도덕, 윤리, 영성의 요소들과 어우러지며 뿌리를 내렸습니다.
종교의 발전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데 도움이 되는 공통적인 도덕 기준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덕분에 대규모 사회적, 정치적 시스템의 기반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종교는 또한 타지역 사람들과의 정보 교환을 용이하게 했기 때문에, 사상과 문화의 확산에 역할을 했습니다.
성경, 코란, 베다와 같은 종교적인 경전이 생겨나며 후대까지 종교적인 믿음을 전달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확산되었습니다.
종교의 출현은 사람들의 삶에 의미와 목적을 제공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많은 이들이 하나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었기에 사회적, 정치적인 시스템에 유용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인류가 점차 모여들며 필요한 문화적인 요소와 경제적, 정치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점진적인 과정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4부 과학혁명
지식의 정복과 영토의 정복은 점점 더 긴밀하게 합쳐져 제국주의를 쫒습니다.
18~19세기 유럽을 출발해 먼 나라로 향한 주요 군사탐험대는 거의 모두 과학자들을 배에 태우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전투가 아니라, 과학지식의 발견이었죠.
1789년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165명의 학자를 데려갔는데 이들은 무엇보다도 이집트학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학문을 구축했고, 종교, 언어, 식물 연구에 중요하게 기여했습니다.
근대 유럽인에게 제국 건설은 과학적 프로젝트였고, 과학이란 분과를 건설하는 것은 제국의 프로젝트였습니다.
영국은 인도를 정복하면서 고고학자, 인류학자, 지리학자, 동물학자들을 모두 데리고 갔습니다.
1802년 4월 인도 대측량사업이 시작되었던 프로젝트는 6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수만명의 현지 노동자와 학자, 안내인들의 도움을 받아 영국은 인도 전체의 지도를 꼼꼼하게 작성하고 국경선을 표시하고 거리를 측정했으며, 심지어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히말라야 봉우리들의 정확한 높이를 최초로 측량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은 인도 각지의 군사적 자원을 탐지하고 금광의 위치를 조사했고, 희귀 거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희귀한 나비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사멸한 고대 인도언어들의 기원을 추적하고, 잊힌 유적자를 발굴하는 수고도 아까지 않았습니다.
그런 지식이 없었다면 적은 숫자였던 영국이 수억명의 인도인을 2세기에 걸쳐 지배, 억압, 착취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19세기 전반과 20세기 초에 걸쳐 최대 3억명에 이르는 인도인을 정복하고 지배하는데는 5천명이 채 되지 않은 장교, 4만~7만명의 사병, 그리고 사업가들, 한량들, 그 가족을 합쳐 10만명의 민간인으로 충분했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자신의 제국이 거대한 착취사업이 아니라, 비유럽 인종을 위해 시행된 이타적 프로젝트라고 주장했고 이는 과학이 제국에게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아담 스미스는 탐욕이 선한 것이며, 내가 부자가 되면 나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이기주의가 곧 이타주의라고 말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도덕적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는 부자에게도 천국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산업혁명 덕분에 인류는 주변생태환경에 예속된 상태에서 대체로 벗어나게 되는데 인류는 숲을 베어내고, 앞의 물을 빼고, 강을 댐으로 막고, 들판에 물을 대고, 수십만km에 달하는 철로를 놓고, 고층빌딩이 즐비한 거대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세상이 호모사피엔스의 필요에 맞게 변형되면서 거거 녹색과 푸른색이던 우리의 행성은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쇼핑센터가 되어 가는 중이죠.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개체의 유전자를 조작해 원래 해당 종에 없던 특성을 부여하는 정도까지 자연선택의 법칙을 위반하는 중입니다.
프랑켄슈타인 신화는 호모 사피엔스로 하여금 종말의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만들고 잇습니다.
인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무책임합니다.
우리는 친구라고는 물리학밖에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며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가면 결국 인간이 마주한 새로운 문제, 즉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느냐'를 화두로 꺼냅니다.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문제로 이런 질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알려주죠.
현재 우리 삶을 지탱하는 세 가지 시스템, 즉 돈, 정치, 신념이 제공하는 조건이 현재 우리 삶에 만족을 주는데 부족합니다.
인간이 눈앞의 일에 묻혀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못하고 우리 모두 발밑만 내려다보면서 삽니다.
행복을 다룬 일반적인 책은 어떻게 해야 행복하다를 이야기하는데, 이 책은 행복이라는 문제가 어떻게 탄생했는가, 왜 우리한테 이 질문이 중요한가를 묻습니다.
사피엔스는 결국 근시안적 세계관에 갇혀버린 현대인, 특히 한국인에게 인간을 넘어서는 거대한 세계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커다란 통찰까지 제공하며 누구나 자신이 품어 왔던 신념 체계의 한계를 인지하고, 그 덕분에 눈앞에 탁 트이는 느낌을 받을수 있습니다.
Sapiens 사피엔스(인류)
자기 존재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상상하는 종족-사유하는 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