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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Jul 18. 2023

육지것의 제주이야기 III 제주의 비경 차귀도

쉰둘補遺. 나만 알고 싶은 시크릿 아일랜드

지난 6월 제주관광공사는 2023년 여름철 제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제주관광 10선을 선정해 발표 했는데 그 세번째로 차귀도가 선정이되었네요.

그래, 오래전에 올린 차귀도에 대한 이야기의 보유(補遺) 개념으로 내용을 추가해 봅니다.

(사진은 작년 9월에 방문했던 사진입니다.)


차귀도를 건너가자면 고산리 자구내포구에서 배를 타야하는데, 차귀도에 연이 닿은 바로 옆, 용수리에 위치한 김대건신부 표착기념관을 함께 둘러보는것도 좋습니다.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였던 김대건 신부는 제물포에서 길이 7.5m, 너비 2.7m에 불과한 목선 라파엘호(구약성서에서 토비아의 여행길을 인도해 여행자들의 주보성인이 된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를 타고 상해까지가서 상해 진자샹(金家巷)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서품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장이나 표류하게 되는데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조선인 신자까지 총 13명이 탄 라파엘호는 28일간의 표류 끝에 남쪽으로 흘러가 제주도 최서단 섬인 죽도(차귀도)에 닿게 됩니다.

1845년 9월28일 김대건 신부 일행이 차귀도에 표착 후, 한국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한곳이 차귀도 입니다.

이후 라파엘호는 용수리 포구에 정박해 반파된 배를 수리하고, 식량을 얻어 충남 강경 황산포구에 도착한것을 기념해 용수항 앞에 2008년에 기념성당이 건립된 것입니다.

기념관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수월봉과 차귀도, 용수포구 등 제주 서북해안을 한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이곳이 무인도 소재 영화를 제작했던 장소로도 인연이 있는데 1977에 나온 영화 ‘이어도’ 그리고 벌써 개봉한지 38년이된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발에 족쇄를 채우고 거대한 나무를 어깨에 짊어진 채 날카로운 화산석 바위를 달리는 모습을 담아낸 지옥훈련 장소도 이곳입니다.

혹시나해서 유튜브를 검색해보니 영화가 나옵니다.

어떻게 저곳에서 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는지…

차귀도는 임산부가 누운 것 같다는 와도, 본섬인 죽도, 지실이섬 또는 매바위로도 불리는 비상하는 독수리를 닮은 독수리바위를 묶어 부르는 이름입니다.

차귀도는 바닷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며 태어난 수성화산체로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42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먼 옛날 화산폭발의 생생한 흔적인 차귀도는 가까이 보면 전혀 다른 생동감으로 다가옵니다.

차귀도는 처음부터 무인도였던것이 아니고 1970년대까지 보리와 콩, 참외, 수박 같은 작물로 농사를 지으며 7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1970년대 말, 나라에서 간첩사건 등을 이유로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후 무인도로 남아 30여년간 출입을 제한하다가 2011년에야 다시 길이 열린것입니다.

고산리 자구내포구(차귀도포구)에서 차귀도 본섬인 죽도로 들어가는 유람선(왕복 1만8000원)을 탈 수 있습니다.

7,8월에 오전 9시부터 7회 운행 예정이지만 인원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섬까지는 직선거리로 1.3km, 10~15분 정도 소요되고 섬에 머물 수 있는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섬 곳곳을 여유롭게 누빌 수 있습니다.

전체 면적이 0.16㎢(약 4만8400평)이고 한 바퀴 도는 4.1㎞ 길이의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차귀도는 제주에서도 아열대성이 아주 강한 지역으로 바닷속에 많은 물고기가 서식해 강태공들이 좋아하는 낚시터로도 유명한데 참돔, 돌돔, 벵에돔, 자바리 등이 잘 잡히고 특히 1∼3월과 6∼12월 사이에 낚시꾼들이 많이 찾습니다. 

부둣가에는 오징어, 한치가 줄에 매달려 꾸덕꾸덕 맛있게 건조되는 풍경이 볼 수 있는데 상점들도 늘어서 즉석에서 구워주는 한치나 반건 오징어 들고 차귀도 유람선에 오르는것도 괜찮은 경험이됩니다.

세 섬 중 가장 큰 죽도에 선착장이 있으며, 나머지 섬은 배로 둘러봅니다. 

죽도(대섬) 선착장에 내리면 곧장 짧은 오르막길이 이어집니다.

방파제에서 지그재그 계단을 따라 섬에 오르며 대나무 숲을 통과하면 완만한 곡선의 구릉이 펼쳐지는데 언덕 위 갈림길에 허물어져 벽채만 남은 낡은 건물 한 채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건물 터 주변엔 연자방아와 빗물 저장시설도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섬에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지금은 초지 가운데서 몇 개의 작은 신이대숲만 눈에 띄여 이 작은군락을 제외하면 섬 전체가 억새에 덮여 있습니다.

억새가 고스란히 거센 바닷바람을 감당해 더러는 빗질을 한 듯 가지런히 눕고, 더러는 산발한 것처럼 헝클어진 억새 물결이 거대한 추상화처럼 보입니다.

집터에서 길은 섬을 가로질러 반대쪽으로 가거나 왼쪽으로 장군바위로가는 길과 오른쪽으로 해발 37m의 산 정상으로 가는 길, 이렇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에는 대나무, 억새가 넘실대고 이름 모를 들풀, 들꽃들이 생명력 넘치는 초록 물결을 이룹니다.

섬 남쪽 끄트머리의 장군바위 전망대가 가장 전망이 좋은 장소로 붉은빛이 도는 화산 송이 절벽과 장군바위, 그리고 멀찍이 수월봉과 산방산까지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장군바위는 한라산 영실코스에 있는 499개의 장군바위에서 나온 1개만 차귀도에서 우직하게 섬을 지키고 있는데 재밌는 설화를 만나게 됩니다.

제주창조의 여신인 거녀 설문대할망은 설문대하르방을 만나 낳은 오백장군 아들들을 먹일 죽을 쑤다가 펄펄 끓던 솥에 빠져 죽었습니다. 

사냥에서 돌아온 형제들이 먹은 것은 어머니의 피와 살로 쑨 죽이지만, 막내가 본 것은 어머니의 유골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피와 살로 쑨 죽을 먹은 형들과 같이 있지 못하겠다며, 막내는 그 먼 길을 실성한 심정으로 걷다가 섬 끝 지점인 이곳에서 바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형제들도 비통한 심정을 가누지 못해 영실 도처에 떨어져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제주민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일 것입니다.

해안을 따라 절경이 이어는데 예쁜 하얀 등대로 오르는 볼래기 언덕에서 서자 화산송이 절벽, 장군바위에 기암괴석의 쌍둥이바위와 넓은 평원까지 더해지며 차귀도 풍경을 완성합니다. 

볼레기언덕 위에 고산리 주민이 세운 아담한 등대가 있는데 돌을 들고 언덕을 오르면 힘들어 제주말로 숨을 ‘볼락볼락’ 내쉬게 된다고 해서 볼래기 언덕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1957년 첫 점등 후 지금까지 주변 바다에 생명의 빛을 비춰오고 있으며 차귀도 풍광의 중심이기도 한 이 등대는 섬의 어디서건 도드라져 보이기에 섬을 둘러보는 동안 위치와 방향을 가늠하는 기준점이 되어 줍니다. 

등대 앞에 서면 차귀도의 억새 평원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남쪽과 북쪽 해안을 제외하면 사방이 온통 깎아지른 절벽이고 섬의 대부분은 완만한 구릉을 이룬 가운데 띠와 억새가 뒤섞인 넓은 초지가 펼쳐져 바다에 떠 있는 목장 같습니다.

정상인 동쪽 봉우리 남사면에는 1974년, 고산리 부녀회가 심었다는 곰솔이 무리지어 자라지만 바람 때문인지 키가 작습니다.

트레킹을 마치고 유람선을 타면 선장의 설명과 함께 차귀도 바위들을 코앞에서 즐기는 시간입니다. 

죽도 선착장을 떠난 배가 독수리바위를 오른쪽에 두고 돌아나가자 독수리바위의 기암괴석과 겹겹이 쌓인 단층이 또렷합니다. 

이 독수리 바위는 섬이름이 만들어진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차귀도(遮歸島)란 이름은 고려 16대 임금 예종 때 송나라 복주출신의 술사 호종단(胡宗旦)의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호종단은 제주에서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날 것을 경계해 제주의 혈맥과 지맥을 끊고 다녔고 그가 중국으로 돌아가려 할 때 한라산의 신인 광양당신이 독수리(매)로 변하여 폭풍을 일으키자, 이에 호종단의 배가 난파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섬의 이름이 ‘돌아가는 것을 막은 섬’이라는 뜻을 가진 차귀도가 됐다고하는 재밌는 설화죠.

가까이서 본 화산송이의 단면은 붉은 진흙을 발라놓은 것 같고 장군바위는 남근석을 닮아 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이름처럼 발길을 돌리기 쉽지 않아 아쉬움이 가득 남는 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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