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문 CCXII 재신론 Anatheism

; (깁더판) 리차드 카니

by Architect Y

한국갤럽이 2021년 3~4월 전국(제주 제외)의 만 19세 이상 1,500명에게 현재 믿는 종교가 있는지 물은 결과 40%는 '있다', 60%는 '없다'고 답했습니다.

종교인 비율은 1984년 44%, 1989년 49%, 1997년 47%에서 2004년 54%까지 늘었으나 2014년 50%, 이번 2021년 조사에서는 40%로 줄었습니다.

이러한 20·30대의 탈(脫)종교 현상은 종교 인구의 고령화와 전체 종교 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종교학자, John D. Caputo 존 카푸토의 분석에 따르면, “21세기는 종교다원주의도 아니라 종교 그 자체를 거부하고 부정하는 시대이다.”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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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희생당한 일을 보고도 침묵하는 신에 대한 회의 이후, 우리는 다시 신을 믿을수 있을까라는 의문 속에 침묵만을 강요하는 종교, 니체와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신의 죽음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궁굼증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는 이 시기에,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은 보스턴 칼리지 철학과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아일랜드 출신의 철학자 Richard Kearney 리차드 카니는 제목부터 생소한 Anatheism 재신론의 접두어 Ana는 ‘본래대로 다시, 새로이’라는 뜻(간추린 옥스퍼드 영어사전)으로 신과 신을 믿는 신앙을 다시, 또 새로이 사유하는 사유와 실천의 운동을 이야기 합니다.


1882년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우리 시대 유신론에 대한 가장 큰 부정은 1940년대 엘리 비젤이 아우슈비츠에서 “신”이 교수대의 밧줄에 달려 죽었다고 선언했을 때라고 이야기 합니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신의 죽음 선언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지목된 이 신은 이론적으로 죽었을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상황에서 이 전지전능하고 편재하는 신은 고통받는 인간의 심정을 알지 못했고, 그 고통받는 인간을 구할 힘도 없었고, 또 사람들이 고통받는 그 장소에도 없었다. 바로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신 이후의 신이 누구이고, 이 새로운 신을 믿는 신앙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 재신론의 모험이자 도전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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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어떤 변별점을 만들어내기보다 자신의 스승들로부터 재신론의 영감을 얻는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합니다.

즉신을 다시 사유한다는 자신의 기획은 완전히 새로운 기획이 아니라 이전에 있었던 유산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음을 그는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니체는 좀 다르겠지만, 아렌트, 본회퍼, 리쾨르는 재신론의 사유를 재신론이라는 이름 없이 선구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책 이름이 유신론이 아니라 Anatheism 재신론이라는 사실에 주의해야 합니다.

Theism 유신론이 아니라 해서 Atheism 무신론을 말하려는 것인가 오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신정론과 신정정치는 유신론적 통치성의 사악한 후예다. 나는 그 대안이 이방인의 재신론이라고 생각한다.

― 109p, 2장 내기를 걸며 : 5중의 운동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는데 서막이되는 1,2,3장 중 첫째장에서는 유대교에서 상수리나무의 아브라함, 기독교의 수태고지, 무함마드의 동굴을 통해 신은 그저 이방인으로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존재를 보증받는 것이 아니라 이 신에 환대로 응답하는 나의 ‘wager 내기’와 더불어 신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바로 그 순간」, 두번째로 상상, 유머, 헌신, 분별, 그리고 환대라는 를 통해 재신론을 함축적 의미를 보여주는 「내기를 걸며」, 「이름으로」라는 마지막 세번째장에서는 지배자와 종, 통치자와 이방인, 황제와 손님이라는 범주의 신에대한 물음을 이야기하기위해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의 경전을 새롭게 해석해내고, 안네 프랑크보다 1년 반전 아우슈비츠에서 스물아홉 살에 죽은 네덜란드 유대인 Etty Hillesum 에티 힐레숨, 교회 투쟁에 실망하고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했다 처형된 독일의 신학자 Dietrich Bonhoeffer 디스트리 본회퍼, 반나치 운동 등에 참여했던 철학자이자 ‘인간의 조건’의 저자, Hannah Arendt 한나 아렌트, 프랑스의 철학의 맥을 계승하는 철학자로 유한성으로 초월적 존재인 신을 해명하려고 한 Paul Ricoeur 폴 리쾨르, 타인에대한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한 프랑스 철학자 Emmanuel Levinas 엠마누엘 에비나스, Jacques Derrida 자크 데리다 등 홀로코스트 이후 철학자들의 논증을 재신론적으로 전유하고 발전시킵니다.


신의 죽음은 삶의 신을 낳는다. ... 신의 약함에 대한 반응은 인간의 강함에 대한 반응이다.

― 133p, 3장 이름으로 : 아우슈비츠 이후 누가 신을 말할 수 있는가?


막간이라는 2부의 첫째장이자, 네번째 장인 「살이되어: 성사적 상상」에서는 Maurice Merleau Ponty 모리스 메를로 퐁티와 Julia Kristeva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같은 철학자들의 일상속의 성사적 경험을 다루며 무한하고 절대적인 신에 대해서는 학적인 인식은 있을 수 없으며, 단지 신앙에 의한 도덕적 확신을 이용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불가지론적 탐구공간으로부터 인간으로 돌아온 존재를 새롭게 평가하는 곳으로 제안합니다.


무신론자인 사르트르가 자신과 깊이 공명하는 메를로-퐁티의 ‘은유’와 마주하여 펜을 든 어느 구절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케노시스, 곧 자기비움을 반향하면서도 집도 없이 굶주리는 손님 horses과 신을 동일시하는 독특한 대목이다.(마태오복음서 25장)

- 168p, 4장 살이 되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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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장 「텍스트에서: 조이스, 프루스트, 울프」에서는 유명 소설가와 시인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유신론과 무신론을 가로지르는 재신론적 상상의 산물을 발견하는데 재신론은 개개인의 실존이 신을 찾아나서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기성 종교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이들도 이방적인 것, 곧 낯선 것과의 만남 아래 재신론적 모험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급하는 작품을 보면, 예외 없이 일상 안에서 초월을 발견하는 신비의 경험이 언급되는데 우리는 명시적인 형태의 종교적 신이 없이도 초월을 경험하고, 신비를 경험한다고 볼 수 있을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유사-성찬례적 경험이라거나 성사적 상상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조이스는 가톨릭, 울프는 개신교, 프루스트는 그리스도교와 유대교가 혼합된 배경을 갖고 있다.

그어나 어느 누구도 노골적으로 유신론적 입장을 개진하지 않았다.

- 178p, 5장 텍스트에서 : 조이스, 프루스트, 울프 중


나는 여기서 고찰된 세편의 소설이 ‘이방인’에 대한 깊은 재신론적 개방성을 에피퍼니의 서막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보면, 이것이 우연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조이스에게서 블룸과 스티븐의 만남, 프루스트에게서 마르셀에의한 프랑수아즈의 인식, 울프에게서 릴리를 통해 램지씨를 맞이한 것.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인 환대가 없다면 자기와 타자 사이의 성변화는 있을 수 없을것이다.

- 220p, 5장 텍스트에서 : 조이스, 프루스트, 울프 중


결론으로 이어지는 6장 「세상으로: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 사이?」에서는 전쟁과 평화, 민주주의와 폭력, 공감과 불관용에 대한 최근 논쟁들을 아우르는 정치적 행위와 해석학으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저자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뿐 아니라, 무신론, 힌두교, 불교 등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습니다.

재신론은 교리 중심적 신론과 신앙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신은 어떤 교리나 전통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한 종교가 다른 종교를 무시하거나 배제할 근거가 재신론적 기획 안에서는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유대교는 그리스도교에게, 그리스도교는 이슬람교에게, 또 이슬람교는 힌두교, 불교에게, 이처럼 각 종교의 신앙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 곧 종교적 타자라는것인데, 이방인의 환대는 이렇게 종교적 타자와의 만남을 함축하고 무신론도 유신론자에게는 타자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도 재신론은 참된 신을 찾기 위해서는 무신론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여기서 무신론은 종교의 소멸을 추구하는 전투적 무신론이 아니라 신의 부재를 알려줌으로써 영혼의 밤을 맞이하게 하는 기능을 합니다.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의 유신론 비판을 통해 신자들은 ‘신이 없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내가 믿는 신은 참된 신이 아니지 않을까’하는 영혼의 밤에 처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바로 이 밤을 거쳐야만 신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는 점에서 무신론은 신을 찾는 데 필수적인 방편입니다.

저자가 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무신론자에게도 유신론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방편이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대화하는 무신론자들은 바람직한 종교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배움을 얻고자 하는 무신론자들, 그리고 무신론자이지만 종교의 유산이 너무 귀하여 버릴 수 없다고 한 알랭 드 보통을 보면 무신론자도 종교적 신앙을 통해 어떤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고 이런 식으로 재신론과 무신론은 공존합니다.


재신론은 모든 아브라함 신앙에 내장된 선택지다. 그것은 이방인 앞에서의 신의 에피파니로 시작하고 또 끝나기 때문이다.

― 250p, 6장 세상으로 :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 사이?


마지막장인 7장 「행동으로: 말과 살 사이에서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삶에서 이방인을 환대하는 삶을 몸소 보여준 Mahatma Gandhi 마하트마 간디나 카톨릭 시민 운동가, Dorothy Day 도로시 데이의 삶과 사상을 쫒아가면서 행동으로 몸소 재신론을 실천한다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봅니다.

이에 독자들은 철학과 신학, 종교, 문학, 실천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종횡무진 모험에 동참하면서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물론이고, 이론과 실천의 갱신을 위한 여러 통찰을 얻게 될 것입니다.


분명, 오해하지 말아야 할것은 마치 고난받는 그리스도나 Liberation theology 해방신학의 메시아론을 설명하기 위해 책을 쓴것처럼 보일 수 있는것은 리처드 카니 자신이 어린시절부터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뿐만 아니라, 그의 스승 Paul Ricoeur 리쾨르와 Emmanuel Levinas 레비나스도 자신들의 철학 함에 있어 각자의 신앙(개신교, 유대교)에 깊이 영향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의 두 스승과 달리 저자는 낯선 타자와의 마중에서 타종교들의 마중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연구를 펼쳐갔다는것입니다.

그는 낯선 다른 종교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환대하는 경험을 통해 우리 자신의 재신론적 신 체험과 케노시스 사랑의 참여가 더 확장될 수 있다고 겸허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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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대학의 석좌교수이자 왕립 아일랜드 아카데미 회원이며, 출판사의 소개 상 ‘현존하는 가장 탁월하고 통찰력 있는 종교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철학자, Richard Kearney 리처드 카니는 어쩌면 시대 착오적일지 모를 'Divine 神聖’을 선택한것은 ‘주인-주체’에게 요청하기때문일것입니다.

낯선 타자의 도래와 함께 주체의 책임 문제가 함께 제기된 것입니다.


늘어가는 외국인 노동자, 여성, 소수자 혐오에 갇힌 우리 사회 앞에 타인에 대한 환대 혹은 적대라는 선택지는 거부할 수 없는 도전이고 환대를 통해 우리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카니의 ‘재신론’은 깊은 울림을 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재긍정의 해석학을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환영적 신을 버리고 살아있는 신을 되찾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익한 것이라도,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은 다시 한번 ‘예’라는 말로 답해져야 한다.

― 257p, 7장 행동으로 : 말과 살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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