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chitect Y Feb 22.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V 전라 松江亭 송강정

여섯. 담양의 삼승一洞之三勝과 溪山風流 계산풍류 05

정철(1536-1593). 

본관 영일. 

호 松江송강(나무 즐비한 강에서 놀겠다) 

성종의 셋째아들 계성군의 양자인 계림군에게 정철의 누나가 시집을 가면서 시련이 시작된다. 

1545년 을사사화. 

계림군의 역모가 있었다. 

온갖 투서가 날아들어 계림군 참수형에 이르고 장인인 정유침 유배간다. 

9살의 송강은 부친 따라 전국 방랑한다.

1551년 사면되고 고향 지금의 담양, 창평으로 내려갔다. 

시대의 거목 김윤제가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는데 자미탄에서 용이 노니는 꿈을 꾼다.

잠에서 깨 자미탄으로 내려가 보니 소년이 멱을 감고 있다. 

총명하여 제자를 삼는다.

10년 동안 자미탄의 불세출의 선비들인 송순, 김인후, 기대승 등에게 큰 가르침을 받는다. 

1552년 김윤제의 외손녀와 결혼도 하고.

1561년 진사시로 다음 해 별시문과에 각각 장원한다. 

1566년 이율곡과 함께 賜暇讀書 사가독서(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것).

1570년 부친상 3년 시묘한다.

1572년 한양으로 올라가 벼슬을 받지만 1573년 모친상으로 다시 3년 시묘하고 인생 고단하다.  

1575년 첫 번째 낙향.

1579년 두 번째 낙향. 

1580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가 <관동팔경>을 노래한다.


關東관동은 영동지방을 이야기 하고 관서는 평안도

팔경은 간성의 청간정, 강릉의 경포대, 고성의 삼일포, 삼척의 죽서루, 양양의 낙산사, 울진의 망양정, 통천의 총석정, 평해의 월송정. 


1581년 세 번째 낙향.

1585년 네 번째 낙향. 

이미 50살, 지천명.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초막 짓고 안빈낙도한다. 

현판을 걸었다. 

竹綠亭죽록정(초록빛 대나무가 울창한 정자) 

<사미인곡>을 집필한다.  


정송강사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을 따라 태어나니,

한 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이 또한 하늘이 어찌 모를 일이던가?

나는 오직 젊어 있고,

임은 오직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없다. 

1589년 우의정으로 복귀하지만 동인 정여립이 쿠데타를 준비 중이라는 상소가 올라 왔다. 

木子亡奠邑興 목자망전읍흥(이 씨는 망하고 정씨鄭氏가 일어난다는 괴소문) 

기축옥사일어나고 정여립은 자살하게되고 이후로 전라도는 반역의 고향이라 찍힌다.

1천여 명의 동인 사형 또는 유배당하고 이 공으로 송강은 좌의정에 오르지만 이제 역풍을 맞는다. 

영의정 이산해가 찾아 왔다. 이산해는 동인.

장남인 광해군을 책봉하는 상소를 올린고 그 길로 이산해는 선조가 총애하는 인빈 김씨를 찾았다.

송강이 아들인 신성군을 죽이려 한다고 고하고 인빈 김씨는 잠자리에서 선조에게 일렀다.  

1591년 진주로 유배가다 압록강 가의 강계로 돌린다.   

圍籬安置 위리안치 (집 둘레에 가시덤불로 울타리를 쳐 외인의 출입을 금한다)

1592년 임진왜란나고 사면되어 호남, 충청 군총사령관으로 참전하지만 끊임없는 동인의 모함으로 강화 송정촌松亭村으로 피신한다. 

58세 12월 영양실조로 눈을 감는다.

고양시 원당면에 모셨다.

1665년 우암 송시열이 찾아 송강선생 묘를 충북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로 옮긴다. 

충북기념물 제106호. 


1770년 송강의 후손들은 죽록정 자리에 정자를 건립하고 송강정松江亭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전라남도기념물 제1호.

전남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매거진의 이전글 건축가의 주유천하 V 전라 醉歌亭 취가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