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가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은 사회
거장 これえだひろかず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을 보며 나와 나의 가족, 학교, 회사, 사회를 생각합니다.
영화는 결국 '누가 괴물인가'라는 물음에 감독과 작가는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질문으로 향하도록 길을 여는 방법으로 싱글맘 사오리의 시점, 호리 선생님(나가야마 에이타)의 시점 그리고 미나토의 시선이라는 세 개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괴물로 비치는 세상에서 '괴물'은 각자의 시선을 넘어 제3자의 시선이라는 게 때로는 얼마나 비겁하면서도 쉽게 타인을 오해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직접 상대방의 시선에서 상황을 바라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쉬운 일인지 체험하게 만듭니다.
여기에는 분명 서로의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단절이 모든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은 사회.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Defense mechanism 방어기제가 일상화되며 병은 깊어가지만 알 수는 없습니다.
Leonardo DiCaprio 디카프리오 주연의 2010년 영화 셔터 아일랜드에서 수용소는 연방보안관 테디(리어너도 디캐프리오)의 수용소 기억은 래디스가 만든 테디의 환상일 뿐이다.
래디스는 참전은 했지만 일반적인 전쟁의 참혹함에서 발생한 트라우마와 직업적 스트레스에 시달려 알코올중독이 되었고 이는 전쟁의 후유증과 더불어 미국이 세계의 헤게모니를 잡게 됨으로써 파생된 자본주의 승리의 어두운 이면에 의해 파괴된 인간의 자아분열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는 대놓고 방어기제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콜세지가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악몽이죠.
돌아, 주마등처럼 스치는 나의 인생도 수 많은 방어기제로 누가 괴물인지 혼란스럽습니다.
1978~79년께에 쓰여져 1980년에 출간된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라는 이성복 시인의 책에 실려있는 시, 그날.
아버지, 여동생, 어머니, 나, 네 사람은 제각기 자기 볼일을 보는 가족이지만 가족답지 않은 가족이 등장합니다.
암울했던 시절의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것처럼 잘 돌아갑니다.
이어서 전개되는 장면은 아수라장으로, 세상은 완벽하지 않고 허무와 결여로 꽉 차 미래도 희망도 없습니다.
세상은 신음으로 가득한데, 아무도 듣지 못하는 건지 안 들리는 건지… 모두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은 이상한 세상입니다.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병들었어도 병든 줄 모르고, 신음을 내뱉어도 아무도 듣지 않고, 내 신음이 고통의 토설인지도 모르는 사회.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영화 괴물처럼 변한것이 없어 보입니다.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전방)은 무사했고 世上(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占(점) 치는 노인과 便桶(변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그날,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63p
Franz Kafka 카프카의 중편 소설, 변신(Die Verwandlung)의 원제는 Ungeziefer 웅가지퍼(; 희생 제물로 사용되기에 깨끗하지 못한 동물)입니다.
벌레의 모습으로 죽음에 이르는 그레고르는 ‘악마여, 제발 좀 이 모든 것들을 다 가져가다오’라고 이야기 하죠.
변신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공동체가 한낱 가족이기주의를 만들고 그것에 굴종하기를 요구하는 끔찍한 곳임을 고발합니다.
100년도 더 훌쩍 넘긴 현대의 가족과 사회는 어떤가요?
스스로를 속이는 방어기제로부터 탈출하며 나 자신에게, 내 가족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신음하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봐야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