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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offee b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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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Dec 29. 2023

coffee break…死의 讚美 사의 찬미

; 죽음에 대한 실존...대한 해협 사이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바다로 몸을 던진다. 

12월 1, 15, 22일에 이어 오늘 오후 8시에 뮤지컬 사의 찬미 공연이 온라인(네이버 TV)에서 송츨된다고 하네요.

사실이 아니라도 자극적 요소를 가진 이야기를 쉽게 속아 믿었던 중고교시절, 소위 ‘사형수의 노래’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불렀던 노래, 死의 讚美 사의 찬미.

사실, ‘사의 찬미’(死의 讚美)는 1926년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발표한 노래로 죽음을 칭송하는 것도 역설인데, 죽음을 노래로 불렀던 그 비장함과 용기가 묻어나는 곡입니다.

음반을 일본에서 발표한 후 이 생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었던 유부남 연인과의 동반 자살로 사랑의 완성을 꾀했던 뒷이야기가 알려지며 노래의 애잔함과 의미가 더해졌죠.

사회의 손가락질 속에서 스스로 죽음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음을 알았기에, 아니 죽음으로만 사랑을 완성할 수 있었기에 죽음을 칭송했던 그녀의 노래는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의 찬미는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런 뒷 이야기를 배경으로 연극으로, 영화로, 드라마로, 뮤지컬로 제작되었습니다.


그 중 오늘 온라인 송출되는 뮤지컬의 윤심덕은 매혹적입니다.

극중에서 숫기 없고 내성적인 김우진에 비해 오히려 우진을 리드하는 윤심덕은 '이지적이고 자유분방'하다고 묘사되는데 그녀에 대한 기록들과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초반의 심덕은 도쿄찬가라는 넘버(노래)가 끝나고 난 후 우진을 귀여워하며 먼저 키스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듯 뮤지컬 '사의찬미'는 심덕을 매혹적이고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는 여성을 그리고 있습니다. 

"잘 됐네, 어차피 오래 살 생각 없어. 난 찰나에 사는 사람이니까. 순간의 미, 그걸 얻을 수 없다면 난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밤에도 낮에도 나 사랑을 속삭일래

둘이서 영원한 하나임을 확인할래

내 안의 젊음을 뜨겁게 불살라

내 몸도 내 마음도 모두 열어 보여줄래 난

그런 탐미적인 사랑 그런 순간의 기쁨을 난 원해

탐미적인 사랑 그런 순간의 기쁨을... 난 원해.

"그럼 날 한 번 탐미해봐"

"내가 빠지고 싶은 남자는 네가 아냐."

-뮤지컬 '사의 찬미' 中 난 그런 사랑을 원해


1991년 장미희(윤심덕 역), 고 임성민(김루진 역)가 주연으로 만들어진 영화 사의 찬미는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히며 그들의 진실을 알고 있는 친구로서 윤심덕의 과거를 회상하는 홍난파의 시선으로 제작 되었습니다.

영화 사의 찬미에서 윤심덕은 당차지만 여성스러럽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재능보다는 사생활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 인해 점점 술에 젖는 생활에 빠져드는 모습이 강조 됩니다. 

홍난파는 윤심덕을 다시 무대에 복귀시키려 애쓰지만 윤심덕은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2018년 신혜선, 이종석주연의 6부작 드라마 사의찬미의 윤심덕은 현실적입니다.

같이 조국순회 공연을 하자는 우진과 사내의 제안을 호쾌하게 받아들인 뮤지컬의 심덕과 달리, 드라마의  그녀는 그 공연 위험한 것 아니냐라며 내켜 하지 않습니다. 

심덕과 우진이 썸을 타다가 우진이 유부남임을 알게 되었을 때, 심덕은 잊지 못할 그리움 같은 건 없다며 쿨하게 돌아섭니다.

물론 심덕 특유의 단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극의 초반부에서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번 심덕에게서는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있는 현실적인 심덕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 극에서는 초점이 우진의 서사에 많이 맞춰져 있다 보니, 심덕은 우진과의 로맨스를 위해 쓰인 캐릭터 같이 실제 윤심덕이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윤심덕의 캐릭터성을 제외하고는, 이야기를 가장 실제에 가깝게 고증했다는 점에서 극의 의의가 있습니다.


연극 '관부연락선’의 윤심덕은 유쾌합니다.

윤심덕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성악가일 뿐 아니라 최초의 여성 국비유학생, 최초의 대중가수, 최다 레코드 판매 기록 보유 등 최초라는 경력을 다수 보유한 인물이죠. 

흔히 현해탄에 몸을 던져 자살한 비운의 주인공으로 후세에 기억되고 있지만 당대 지인의 평가 속에서는 오히려 호탕한 모습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윤심덕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그녀는 ‘왈녀’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만큼 대범하고 쾌활했다는 식의 평가가 많은 실제 그녀의 모습과 가장 유사하게 인물을 그려낸 것이 연극 '관부연락선'의 윤심덕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 어쩌면 매혹적인 윤심덕도, 현실적인 윤심덕도, 유쾌한 윤심덕도 실존하는 윤심덕이라는 인물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실존했던 윤심덕이란 인물은 호탕하고 유쾌하면서, 어떤 때는 매혹적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여성이기도 하면서도, 집에서는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던 가장이기도 했기에 극의 분위기마다 느껴지는 윤심덕의 매력이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뮤지컬 사의찬미의 윤심덕을 가장 사랑한다. 그건 내가 그 뮤지컬의 넘버를 좋아한다는 극의 특성도 분명 작용할 것입니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를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은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은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우에[2] 춤추는 자로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은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알겠느냐
 세상의 것은 너의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에 모두 다 없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은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일제강점기인 1926년 8월에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발표한 음반이며 이 음반의 타이틀곡인 사의 찬미는 Iosif Ivanovici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the ripples of the Danube (다뉴브강의 잔물결/ Donau Wallen Walzer)을 윤심덕이 직접 가사를 쓰고 편곡도 원곡인 다뉴브강의 잔물결 이란 군악대를 위한 곡의 4번을 절, 6번을 후렴으로 하여 본인이 편곡한 가창곡으로 한국어 음반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에서 발매되었습니다.

이후에 1987년 compilation LP로 개사되어 김정호의 목소리로 취입되었습니다.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러 왔는냐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녹수청산은 변함이 없건만, 우리 인생은 나날이 변했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곡명 死(사)의 讚美(찬미)란 죽음을 아름답게 칭송한다는 뜻이겠죠.
 가사 내용을 보면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달리는 인생, 도대체 무엇을 찾으려 이 쓸쓸하고 험악한 끝없는 괴로움의 바다 같은 고해(苦海)를 건너려 하는가, 웃는 꽃이나 우는 새나 모두 죽으면 그만인걸, 삶에 몰입하여 칼 위인지도 모르고 춤추는 위험한 인생,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속이며 허영에 빠져 날뛰는 미친 인생, 세상 모든 것은 허무이니, 나 하나 죽으면 그만이라고 말 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보자면, 윤심덕은 키르케고로나 니체 그리고 마르틴 하이데거의 인간은 신의 의해 창조된 존재로 신과 인간의 사이에는 절대적 단절이 놓여있어 신이 어떠한 본질을 인간에게 부여했는지 인간 이성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 인간은 자기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현실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실존주의(Existenzialismmus)에 심취되어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큰 키의 서구적 외모와 자신감 넘치고 활달한 성격에 풍부한 성량으로 조선총독부 관비 유학생에 선발되어 뭇 남성들과 스스럼없이 사귀고 스캔들도 있던 신여성이었습니다.


원치 않는 결혼이었지만 부인과 자녀가 있는 유부남으로 와세다 대학을 나온 극작가였으나, 장성군수를 지낸 부호 아버지와 뜻이 맞지 않아 번민하고 있던 김우진은  스트린드베리의 표현주의 극과 버나드쇼의 사회문제 주의 극의 영향을 받아, 1920년 때 우리나라 신극 운동을 주도하던 연극 운동가이자 평론가였습니다.

그렇게 대한해협에서 몸을 던졌다는 이제까지 알려졌던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체도 발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명으로 승선하였기 때문에 정사를 가장하고 이태리로 사랑의 도주를 하였다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이태리에서 두 사람을 보았다는 이야기, 악기상을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 등, 이들을 소재로 한 스토리텔링은 한동안 진행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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