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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10. 2024

맛있는 이야기, 添歲餠 첨세병

; 한국인의 새해 명절에 깃들은 해를 세는 맛.

천만 번 방아에 쳐 눈빛이 둥그니 저 신선의 부엌에 든 금단과도 비슷하네 

해마다 나이를 더하는 게 미우니 서글퍼라 나는 이제 먹고 싶지 않은 걸 

千杵萬椎雪色團 也能仙竈比金丹 천저만추설색단 야능선조비금단

偏憎歲歲添新齒 怊悵吾今不欲餐 편증세세첨신치 초창오금불욕찬

- 靑莊館全書 청장관 전서, 1권 嬰處詩稿 영처시고


얼마전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에서 ‘수라상 음식’이라는 주제로 여섯가지 음식이 나왔습니다.

너무도 생소한 이름의 음식 여섯가지는 순대 饀猪膓도저장, 간장치킨 炮鷄포계, 녹두빈대떡 貧者餠빈자병, 복어국 河豚羹하돈갱, 떡국 添歲餠첨세병, 카스테라 加須底羅가수저라였습니다.

그 중 남녀노소,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먹는 보편적인 음식이 떡국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조촐하고 깨끗한 음식은 언제부터 한국인의 새해 명절에 깃들었을까요. 

상고시대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한 해의 시작이 조촐하고 깨끗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 음식이 아주 잘 어울린다는 점이 떡국의 의의를 선명히 드러낼 것입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상고시대의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였고 떡국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역사문헌으로는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와 열양세시기 洌陽歲時記가 있는데 이들 책에서 떡국은 정조차례와 세찬에 없으면 안 될 음식으로 설날 아침에 반드시 먹었으며, 손님이 오면 이것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쉽게 먹을 수 있지만, 옛날 서민들은 먹기 힘든 음식 중 하나로 불과 40년 전만 하더라도 마트에서 쌀로 만든 떡을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쌀로 만든 떡국은 일반인들이 방앗간에 가서 돈을 주고 만들어서 먹었습니다. 

시중의 떡집에 가서 비싼 돈을 주고도 쌀로만 가공된 떡은 구매하기 힘들었고 밀가루와 전분을 주재료로 쌀은 10% 정도만 넣고 만들었습니다. 

쌀이 없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시절에 떡국은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정부에서 통일벼 다수확품종을 장려하며 쌀이 과잉 생산돼 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1986년 쌀 수백만t이 폐기될 처지에 놓였고 정부가 수습책으로 밀가루와 전분으로 만들던 떡과 떡볶이를 쌀로 대체하도록 쌀을 밀가루 가격으로 방출한 이후로 쌀 가공 떡 기계가 개발되며 떡 가공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添歲餠 첨세병, 떡국을 먹어야 한살을 먹는다.


떡을 넣고 끓인 탕을 병탕이라 불렀고, 나이를 물을 때 병탕 몇 사발 먹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특히 설날에 먹는 떡국을 한자로 添歲餠 첨세병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나이를 더해주는 음식이라는 의미입니다.

새해의 시작인 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하는 의미에서 떡국을 먹는 전통이 생긴 것으로 짐작됩니다.

떡국에는 우리 민족의 원대한 소망이 녹아 있습니다.

떡국에 들어가는 가래떡은 무병장수와 풍요를 기원했고, 썬 떡의 둥근 모양은 화폐를 형상화하여 재물도 많이 들어오길 바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단명과 배고픔을 숙명으로 알고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한과 염원이 담겨 있는 게 바로 떡국이었던것입니다. 

떡의 하얀 색깔에는 지난해 안 좋았던 일을 깨끗하게 잊고 새롭게 새해를 시작하자는 뜻이 함축돼 있습니다. 


지역색을 가지고 먹어왔던 떡국.


김매순의 열양세시기는 “먼저 장국을 끓이다가 국물이 펄펄 끓을 때 떡을 동전처럼 얇게 썰어 장국에 집어넣는다. 떡이 끈적이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으면 잘된 것이다. 그런데 돼지고기, 소고기, 꿩고기, 닭고기 등으로 맛을 내기도 한다.”라고 서울식 떡국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속에서도 오늘날과 비슷한 떡국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멥쌀가루를 쪄 큰 떡판 위에 놓고 떡메로 수없이 쳐 길게 뽑은 떡을 흰떡(白餠)이라고 한다. 이를 얇게 엽전 두께로 썰어 장국에다 넣고 끓인 다음 쇠고기나 꿩고기를 더하고 번초설(蕃椒屑, 후춧가루 또는 초피가루)을 쳐 조리한 것을 떡국(餠湯)이라고 한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모두 맑은 장국을 기본으로 해 흰떡을 깨끗하고 조촐하게 끓여내는 모습으로 이는 일제강점기의 조선 음식 연구자 방신영, 유명한 요리사이자 요리 강사였던 조자호의 요리책에서도 소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한 떡국이 이어집니다. 

반면 소고기 외에 닭고기, 꿩고기, 돼지고기도 활용되었는데 소고기를 바탕으로 한 장국이 기본이었지만 손에 잡히는 대로 또는 취향에 따라, 지역마다, 집집마다 내 식으로 다양한 떡국을 끓여 먹었을 것입니다.


북쪽의 개성 지방에선 조롱박 모양 같다고 해서 지어진 조랭이떡국을 먹었는데. 긴 가래떡을 썰어 대나무 칼로 가운데를 눌러 만듭니다. 
 강원도 지역은 진한 사골육수에 만두와 떡을 함께 넣어 끓여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내는 떡국을 먹는데 떡국에 만두를 넣는 지역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다고 합니다.

충청북도 지방에선 미역과 들기름, 들깨를 넣어 진하게 끓인 국물에 생떡을 넣는다고 하는데, 생떡은 보통의 방식처럼 가래떡을 찌는 것이 아니라, 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하는 '익반죽'해 만드는 떡입니다. 

이를 길쭉하게 만든 다음 동그랗게 썰어서 넣어 먹었다는 것이죠. 
 충남 지역은 지역 특산물인 구기자를 이용해 구기자떡을 만들고 그 떡으로 떡국을 만들어 먹습니다.

아홉 가지 효능이 있어 구기자라고 불리는 만큼 칼슘과 철분을 비롯한 각종 영양이 풍부하고 진한 노란빛이 보기도 좋은 구기자떡국입니다.

닭으로 육수를 내고 두부를 납작하게 썰어 넣어 만든 떡국은 전북의 향토 음식입니다. 

두부의 부드러운 맛과 깔끔함이 특징인데요, 두부와 닭고기가 자칫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을 보충해줍니다. 

전남의 닭장떡국은 진한 닭 육수에 간장에 졸인 닭고기가 고명으로 올라가는데, 구수한 맛이 떡국의 감칠맛을 더합니다. 

진한 삼계탕에 떡과 두부를 넣는 것과 비슷합니다.

경북의 태양떡국은 떡의 모양이 타원형이 아니라 태양 같은 동그란 모양이라 그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여기에 특별한 육수 없이 매생이와 굴을 넣어 시원하고 부드러운 맛을 살린 것이 특징입니다. 
 경남 지역을 비롯해 바다와 가까운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멸치떡국입니다. 

멸치육수에 국간장과 멸치액젓으로 간을 해 멸치 맛을 더해주는데, 여기다가 지역에 따라 굴을 넣어 먹기도 합니다. 


민족의 연원이 담긴 소울푸드, 떡국으로 설 아침을 열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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