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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23.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V 서울 북촌

다섯. 북촌을 걷다.

상업마인드로 잠식되어가는 북촌과 서촌 01

첫번째 이야기 북촌을 걷다.

북촌엔 사람이 버글거리고 있다.

해외 단체관광객으로 북적거리며 이제는 국적불명의 카페들리 다닥거리며 즐비하하다.

조용하고 사색하기 좋던 그 한옥마을은 지방의 유명한옥마을처럼 이제 생활하기에는 불편한 곳으로 변한다.

내게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사용한 사무실이 광화문광장이라 자주 들르곤 했는데....

서촌은 손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벌써....

북촌은 위치상 경복궁의 동쪽을 이야기하고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서촌은 서쪽인데 지금 서촌(통인동 인근)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원래 上村상촌, 우리말로 웃대다.

3,4년 전부터 그 지역에서 문화운동하는 한 단체가 경복궁의 서쪽지역이니 서촌이라는 식으로 부르기 시작한걸 미디어가 받아쓰면서 서촌으로 굳어졌던 거고.


원래 서촌은 신문로와 정동일대다.


앞 궁궐이야기에서 살짝 언급한 경희궁에서 덕수궁 사이정도.

북촌의 한옥은 서울 한옥의 10% (2008년 조사)에 달한다.

이곳 한옥을 조선시대의 오래된 집들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대개는 1930년대부터 지어진 것이다.

조선 말,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유지되던 권문세도가의 큰 땅이나 임야가 쪼개져 중소규모의 한옥이 들어섰다.

도시로 사람이 몰리고, 자본력을 가진 주택경영회사가 등장하며 벌어진 개발의 풍경이다.

이들 한옥은 이전 것과 달리 마당을 가운데 두고 주변을 채우듯 들어선 컴팩트한 모양이다.

수없이 많은 한옥이 온 땅을 덮듯 지붕의 물결을 이루며 들어선 것이 당시 북촌의 풍경이자, 도시 한옥이 점령한 근대도시 서울의 풍경이었다.

1397년 태조 이성계는 현 현대건설 계동사옥 자리에 전국의 약재를 수거해 판매하고 못사는 백성들을 살려내는 병원인 제생원 설립한다.

백성들 건강이 우선이라는거다.

처음엔 제생원이 있던 동네라 제생동이라 불리다 계생동이라고도 부르고 기생동이라고도 들린다.

1894년 갑오개혁때 동네에 계수나무가 많다고 계동으로 정리하게된다.

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모친이 돌아가시고

1824년 지금의 계동 146번지 현대 계동사옥터에 경우궁 건립하고 위패를 모신다.

1908년 궁정동 칠궁으로 이사간다.

일제강점기 毓祥宮洞육상궁동, 溫井洞온정동이 통합되면서 육상궁의 궁과 온정의 정을 빌려와 宮井洞궁정동이 된거고.

고종의 사촌형 이재원의 집 桂洞宮계동궁도 이 필지내에 있었다.

왕족이 살던 집은 전부 ‘궁’이다.

조선시대 말 이 동네에 무려 45개의 궁이 있었지만, 지금은 운현궁 하나 남았다.

이 지역 일대 땅 6,000평을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휘가 몽땅 사들인다.

1906년 민영휘는 이 땅에 휘문고 설립한다.

1977년 강남바람에 역시 휘문도 강남 대치동으로 이사 간다.

1930년 일제가 보기 싫은 원주민들은 돈이 있으면 뒤로 물러나 성북동으로 가거나 안동,양동등 고향으로 내려가고 이곳 북촌은 50평 규모의 택지로 자잘하게 나눠지게 된다.

난개발.


굽이치는 옛길은 지금도 그 폭 그대로고, 주변의 건물도 나지막해 정겹고 따스하다.

동네의 다른 말 ‘고을’은 골짜기의 ‘골’에서 유래했고 골이 졌으므로 사람들은 그 주변을 하나의 공간으로 생각하고 동네를 이뤘다는 것이다.

북촌에서 보면 계동과 가회동이 그런 ‘한 골짜기 한 동네’를 이루는 셈이다.

다만 가회동은 길을 넓히며 동네가 동서로 나뉘어 버려 아쉽다.


1984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고 난개발 금지되지만

1992년 이 또한 해제한 이후

1994년 김영삼다통령은 고도제한도 폐지한다.

2000년 북촌을 살리자고 시민연대가 팔을 걷어붙인다.

20만평의 북촌에는 2,300동의 집이 있고 그중 1,200여동이 한옥.

대한민국에 이런 땅은 없다.

그래 이 지역은 이제 다시 한옥보존지구가 된다.

4층 이하만 건축 가능.

전국적으로 1년간 새로 지어지는 한옥은 800가구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는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연간 5000가구는 지어져야 시장이 형성된다.

현재 한옥에 거주하는 가구는 전체의 0.5%에 불과하다.

현재 서울 북촌마을을 기준으로 한다면, 땅값을 뺀 순수 건축비가 평당 1200만원대.

서울시가 북촌 살리기에 나선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총 3700억 원을 투입해 4대문 안 3080동, 4대문 밖 1420동의 한옥을 신축·보전키로 했다.  

북촌 등 기존의 5개 한옥밀집지역에는 다양한 자금 혜택이 지원된다.

신규 한옥사업에 대해서는 공사비 3분의2 범위에서 보조금 8000만원과 2000만원의 저리융자(3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 연리 1%) 혜택을 준다.

기존 한옥을 보수할 경우 공사비 3분의2 범위에서 6000만원의 보조금과 저리로 4000만원을 융자해준다.

부분 보수는 1000만원까지 보조.

사라질 위기에 놓인 한옥은 시가 직접 매입, 개보수를 한 뒤 문화시설 등으로 활용하고.

또한 매달 지역 지구단위 계획에 지정된 한옥을 보수하고 있다.

북촌 방문객은 10만 명을 넘어섰고...

북촌 한옥 마을 안내책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옛 도성도의 북촌을 자세히 보면 백악과 응봉을 잇는 능선에서 골짜기를 따라 길들이 나 있는데, 이 길과 물길을 중심으로 두 궁궐 사이에 삼청동, 안국동, 가회동, 계동, 재동 등이 나란히 자리한 북촌은 볕이 잘 들고 배수가 잘 될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도성의 중심에 놓여 있어, 주거지로서의 조건도 다른 어느 지역보다 뛰어나 예로부터 권문세가들의 주거지로 자리매김해왔으며, 아울러 궁궐이 가까이 있어 재동 일대는 팔도 각지에서 올라온 양반들의 주택들과 육조관아에 근무하던 관리들과 이들에 딸린 하인들이 살던 작은 집들이 모여 있었다.

한옥은 웰빙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공간 속에 가장 잘 녹여낸 주거형태로, 자연 재료로 만들어졌고 자연의 이치를 이용하는 구조형태를 가지는 등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을 담아낸 집이다.

친환경적이고 건강에 유익한 한옥은 세계 어느 주택과 비교해도 우위에 있다.

한옥은 온도 차이를 이용해 공기가 순환되게 함으로써 에어컨 없이도 살 수 있는 집이다.

요즘 첨단 건축에서도 자연과 비슷한 자재를 만들려고 애를 쓰는데 한옥은 자연 그 자체의 자재를 쓴다.

지혜와 오랜 경험이 모여 있는 것이 한옥의 장점이다.

한옥은 현대생활에 맞게 변화해 가고 있다.

사람이 사는 집은 생활에 걸맞게 변화해야 집의 생명력이 유지될 수 있다

- 윤상구(윤보선대통령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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