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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23.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II 경상 함양 일두고택

다섯. 밀양을 중심으로 좌 안동 우 함양, 그 두번째 마을 함양 둘

그 두번째 마을 함양 둘. 일두고택, 청계서원, 교수정, 거연정

사림.


일두고택, 남계서원, 청계서원, 교수정은 10분거리의 5km거리에 있고, 마지막에 소개 할 거연정은 30분정도 떨어져 있다.


함양 청계서원

청계.

마음은 옛날 것을 생각하더라도 지금 것은 시대에 맞게끔 해라.

그래서 그 시대의 옷을 입어라. 경남문화재자료 제56호.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699-1.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기에 앞서 백성을 위한 좋은 정사가 있어야 진정 자연도 빛이 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산하의 풍광도 인간과 함께 하였을 때, 또한 인간의 도리를 깨우치고 실천하였을 때 비로소 자연의 가치가 찬연히 빛난다


김일손은 풍경에 도취하는 가벼움을 경계하였습니다.  

일두 정여창 선생을 모신 남계서원의 도움으로 함양의 청계서원은 살아난다.

동재 현판은 '구경재'.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다.

서재의 현판은 '역가재'.

바른 사람과 어울리면, 나 또한 저절로 바르게 된다.

지금 남계서원과 청계서원을 잊는 부지를 매입해 성지 복원 중이다.


함양 교수정

조승숙(1357-1417)

본관 함안.

정몽주의 제자.

1376년 사마시와 1377년 정시문과 합격한다.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달변으로 명나라 황제를 감복시켜 자금어대(紫金魚袋 황제가 정5품 이상에게 하사하는 붉은 주머니)를 받아 이름을 알리게 되고 그가 어머님 봉양을 이유로 부여감무(지금의 부여군수)를 자청해 외관직으로 나갈 때는 임금이 침향궤(침향나무로 만든 팔 받침대)를 하사했는데, 그 궤에 '강호에 있을지라도 나라를 잊지 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1392년 이성계 쿠데타로 고려 멸망하여 스승 정몽주 선죽교에서 살해당하고 조승숙 등 72명의 선비들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을 이름을 문을 닫는다는 의미의 杜門 두문동이라하게 된다.

칡 캐 먹고 버틴다.

마을 입구에 이방원이 도착해 달라는 벼슬은 뭐든지 드리겠다고 회유하게 된다.

참여 속에 개혁 하겠다라고 하며 황희가 문을 나선다.

열 받은 이방원 두문동에 불 지르고 조승숙 두문동 탈출, 낙향하여 후학들을 길러 후대를 대비하겠다고.  

1398년 고향 함양에 정자 건립하고 현판을 건다.

敎授亭 교수정.

가르침을 전하는 정자.

문화재자료 제76호.   

조승숙이 선산에 은거한 4년 선배 길재에게 편지를 띄웠다.  


산을 등지고 물에 다다라 속세 떠나 살아가네,  

저녁에 달뜨고 아침에 안개 끼니 흥이 남아 있구려,

한양에 사는 벗이 내 소식을 묻거들랑,

대숲 깊숙한 곳에 누워 글 읽는다 하게나.


답장...  


새벽녘 지는 달빛 창 앞에 밝고,

십리를 불어오는 솔바람은 베게위에 맑구나.

부귀는 많이 힘들고 빈천은 괴로운 것이니,

조용히 살아가는 재미를 누구와 이야기 하랴


고려의 충신 조승숙 드디어 눈을 감았고, 성종이 賜祭文사제문(왕이 내린 제문)을 내렸다.  


首陽明月 栗里淸風 수양명월 율리청풍


수양은 백이숙제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며 숨어든 산이고, 율리는 도연명이 은거했던 마을 이름.

성종은 조승숙을 수양산의 밝은 달과 율리의 맑은 바람에 비유했다.  


함양 거연정 居然

자연 속에서 살겠다

전오륜.

본관 정선. 고려 말 충신.

이성계 쿠데타로 조선 건국한다.

不事二君 불사이군.

선비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법이라 하여 고향마을 정선군 낙동리 백이산 입산하고 고사리 캐 먹으며 살아가게 된다.


누가 내 이름을 알리.

알리는 아라리가 되고 아라리는 아리랑이 되나니.-전오륜


정선아리랑의 작사가.


정선으로 가지고온 관복을 몸에 걸치고 멀리 송도를 바라보니 슬픔만 하네.

요순시대는 멀리 갔으니 내 어디로 가리오.

서산을 향하매 머리 드니 진세塵世(티끌 많은 세상)와 인연을 끓었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1637년 지족당 박명부가 화림동계곡을 찾는다.

서울에 사직서를 보내고 예조참판 사직한게 된다.

이미 67세.

지금으로 말하면 문광부 차관을 버린 것.

화림동계곡은 해발 1,500m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이 서상-서하를 흘러내리면서 냇가에 기이한 바위와 담, 소를 만들어낸 장장 15km 이어지는 무릉도원이다.

거연정 전오륜의 7대손 충주부사 전시숙의 쉬는 집.

바위위에 얹었다.

 

이어서 아들이 지붕을 올린다.

이렇듯 인물은 인물을 낳고 명품은 명품을 양산하는것.

현판을 건다. 弄月(농월:달을 희롱한다.)정.

달빛은 술안주.

2003년 10월 5일 누군가 농월정에 불을 질렀다.

1시간 만에 잿더미.  

이제 화림동계곡에 있던 8개의 명품 정자 중 3개 남았다.  


東湖亭 동호정.

1895년 동호 장만리공을 추모해 9대손 장재헌이 건립한것이다.

장만리는 임진왜란 때 피난길의 선조를 등에 업고 뛰신 분이다.

그냥 바위위에 얹었다.

경남 문화재자료 제 381호.


조금 올라가니 君子亭 군자정.


일두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해 1802년 전세걸이 1802년 건립.

군자가 노닐던 집.

경남 문화재자료 제 380호.

전세걸 영월 전 씨.

정여창의 부인이 영월 전 씨.

위대한 선비 일두를 우리가 키웠다.

군자정을 지나면 거연정이 보이고.

영남의 빼어난 경치는 三洞 (삼동: 심진동, 원학동, 화림동 등 덕유산 남쪽에 형성된 세 고을)이 최고가 되고, 삼동의 경승은 화림동이 최고가 되나니, 화림동의 경승은 이 아름다운 곳에 세운 이 정자를 최고라 할 것인 바

- 거연정기


*정기精記: 건립 배경을 적은 글.

정자 앞을 흐르는 물은 訪花隨柳川 방화수류천(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간다) .


1853년 소실.

다음 해 중건.

1868년 소실.

1872년 전재학이 중건.

경남유형문화재 433호.  


밀양을 중심으로 좌 안동 우 함양으로 이어지는 성리학 사림의 이야기 그 두번째 고을, 함양을 마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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