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Zorba the Greek 일탈과 자유를 꿈꾸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아무것도 바라는것이 없다. 아무런 죽음조차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나는 자유다.
- Nikos Kazantzakis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카잔차키스가 생전에 미리 적어 두었다가 적음)
몇해전 10년간의 주요 10개 세계문학전집 브랜드의 판매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령대별 선호도조사를 한일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2016년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2집의 「피 땀 눈물」의 모티브가 된, 어린시절 오랜 방황과 투쟁을 이겨내고 진정한 자아 주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로 노벨문학상 작가 헤르만 헤세의 이 10~20대 Demian 데미안이 청춘의 애독서로 결과가 났습니다.
물론 40대에서도 이 책이 가장 많이 읽히는것은 0대 자녀를 둔 부모가 자녀를 위해 구입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에 비해 욕망이라는 키워드가 잘 맞을것 같은 30대는 역시 1920년대 사치와 향락이 난무하던 미국을 배경으로 돈과 사랑, 욕망을 좇는 개츠비의 이야기가 비슷한 또래의 독자들에게 공감을 일으킨 것으로 보이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가장 많이 구입하였습니다.
이 두 책 관련해서는 ‘첫 감동으로’라는 부재로 데미안을, 사치와 향락과 관련된 내용답게 ’하이볼’ 주제로 글을 올렸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일탈과 자유를 꿈꾸는 중년에게 호쾌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50~60대에서 판매고를 올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참고로 60대에는 인생의 황혼에 깨달은 잃어버린 사랑의 허망함과 애잔함에 관해 내밀하게 써내려간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을 많이 구입했습니다)
‘지성인들이 사랑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국어 판본은 여러 종이 번역되었으나 대개 중역(重譯; 한 번 번역된 말이나 글을 다시 다른 말이나 글로 번역함)이었습니다.
1946년 『그리스인 조르바』가 세상의 빛을 본 지 70여 년, 1975년 한국에 처음 소개된 지 40여 년 만에, 중역이 아닌 그리스어-한국어 번역본이 2018년에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작가 카잔차키스는 1917년 탄광 개발사업 과정에서 노동자 ‘기오르고스 조르바’를 만나고, 그의 자유로운 삶의 방식으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지만 사업이 실패하면서 두 사람은 곧 헤어지게 되고, 영원한 이별처럼 서로는 각자의 길을 갑니다.
1930년대 말 카잔차키스는 장편 「오디세이아」를 비롯해 여러 권의 여행기와 교과서 등을 집필하지만 궁핍함은 계속되던 1941년 독일이 카잔차키스의 조국 그리스를 점령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칩거하며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려 간간이 소식을 듣게 되지만, 좀처럼 다시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한 조르바를 모티브로 ‘조르바의 성스러운 삶’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 1943년 「그리스인 조르바」를 마무리하고 4년 뒤 파리에서 번역, 출간하고 영국, 미국, 스웨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이를 이어갑니다.
조국으로부터 벗어나고, 신부들로부터도 벗어나고, 돈으로부터도 벗어나고, 탈탈 먼지를 털었죠.
세월이 흐를수록 난 먼지를 털어냅니다.
그리고 가벼워집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난 자유로워지고, 사람이 돼갑니다.
- 그리스인 조르바 p.393
도입부는 오랜 연인을 우연히 만난 것처럼 의외로 무덤덤하게 시작합니다.
항구의 지형과 시제,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 등이 영상을 훑듯이 자세하게 묘사됩니다.
작가가 현장에 있는 듯한 1인칭 화법으로 주변 상황을 가볍게 설명하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첫 문단에서 주인공과 장소, 날씨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소설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합니다.
나는 나와 같은 부류의 책벌레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노동자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크레타의 갈탄광으로 가는 길에 곡괭이를 다루는 못이 박히고 흠집 가득한 손으로 산투리를 연주하고, 말이 다하지 못하는 곳에서 춤으로 대화하는 조르바를 만납니다.
그는 겁에 질린 불쌍한 인간들이 마음 놓고 편히 살고자 세워놓은 윤리, 종교, 조국과 같은 장애물을 단번에 깨뜨려 무너뜨릴 웃음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갈탄광을 찾는다는 실용적인 목표는 단지 세상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것으로, 우리는 어서 해가 저물어 광부들이 돌아간 뒤에 우리끼리 모래사장에 식탁을 차려놓고는 시골풍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크레타의 시큼하고 떨떠름한 포도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나는 그가 불가리아 반군에 대해서, 갈탄에 대해서, 여자들에 대해서, 하느님에 대해서, 조국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격정에 사로잡혀 더 이상 말만으로 성이 차지 않으면, 그는 벌떡 일어나 바닷가의 굵은 자갈밭 위에서 춤을 추곤 했습니다.
그는 Sisyphus 시지프스의 바위 굴리기같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우리 삶을 받아들이고 즐기며, 동시에 묵묵히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사자처럼 능동적으로 살아가고, 심지어 어린아이처럼 매 순간 경탄하고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조국, 관습,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의 소리에 따라 주저 없이 행동하며, 하느님과 악마에게도 당당히 맞서는 조르바. 나는 많은 순간, 최고의 미친 짓을, 삶의 본질을 행하라라고 소리치는 내 영혼을 꼭 붙잡고 그렇게 하지 못한 내 삶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조르바 앞에 있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이여, 당신께서 제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제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겨우 저를 죽이는 것이 고작이겠죠. 저를 죽이십시오. 그래봤자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악의를 다 버리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습니다. 저는 해냈고 춤도 췄습니다. 더 이상 제게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 그리스인 조르바 p.504
근본적으로 조르바의 놀라운 자연스러움과 젊은 화자인 내가 적용하는, 보다 합리적이고 절제된 고대 그리스식 사고방식 사이의 철학적 논쟁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 카잔차키스는 수도자들이 은둔하는 아토스산에 올라갔다가 고행하는 수도자들을 보고 되려 믿음에 대한 환멸을 경험했다고 하며, 발칸전쟁 당시엔 마케도니아에 종군했던 경험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결국 조르바의 인생경험은 어느 정도 작가의 그것과 공유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학사를 통틀어 보아도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주인공 알렉시스 조르바만큼 강렬하고 유명한 캐릭터도 드물텐데, 이 인물은 식사든 일이든 연애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몰입합니다.
65세인데도 여전히 모든 것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세상에 대해 생생한 호기심을 유지하고 있고 위험에 빠진 자를 구하려고 목숨을 걸고 싸우기까지 합니다.
소설의 막바지에서 갈탄광산이 망하고 '나'가 상심해있을 때 조르바는 '나'에게 음식과 술을 권하고, '나'는 그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둘이서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이 부분은 어쩌면 소설의 결산이며, 전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조르바의 삶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영감을 얻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그리스인 조르바’는 인간의 자유와 삶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는 작품이죠.
이 소설은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제시합니다.
“아뇨, 대장! 대장은 자유롭지 않수다. 대장이 매여 있는 줄은 다른 사람들 것보다 조금 더 길기는 하지만 그뿐이오. 대장, 대장은 조금 긴 끈을 갖고 있어 왔다 갔다 하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 끈을 잘라내지는 못했수다. 만약 그 끈을 잘라내지 못하면……”
“어느 날엔가는 그 끈을 잘라낼 거예요.” 내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왜냐하면 조르바의 말들이 아직 아물지 않은 내 상처를 건드려 아팠기 때문이다.
“대장, 그건 어렵수다. 아주 어려워요. 그러려면 미쳐야 하는데, 듣고 있수? 미쳐야 한단 말요. 모든 걸 걸어야 해요! 하지만 대장은 머리가 있어 그게 대장을 갉아먹고 있죠.”- 그- - 그리스인 조르바 p.520
인간, 삶, 의지, 자유와 함께 그리스인 조르바는 크레타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문장 한 줄 한 줄에 가슴이 끓어오르고, 눈앞에는 짙푸른 바다, 거친 바위산, 한껏 부풀어 오른 올리브열매가 아른거리는 크레타 섬.
회색빛 석회암 구릉에 제멋대로 자라난 관목, 숲을 이룬 올리브 나무, 종을 딸랑이며 절벽을 기어오르는 야생 염소들… 투박하지만 묵직하고 강인한 이 풍경들은 결코 크레타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카잔차키스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곳은 부친 미할리스의 고향이기도 한 Myrtia 미르티야로 카잔차키스의 작품을 포함해 자필 메모, 사진, 다큐멘터리 영상, 개인 소지품, 그리고 그리스인 조르바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 알렉시스 조르바의 사진, 카잔차키스와 조르바가 실제로 주고받은 편지 등을 만나 볼 수 있는 오롯이 니코스 카잔차키스만을 위한 박물관이 있고 크레타 문학을 사랑하는 자들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스테루시아 산맥을 넘으면 리비아해를 초승달 모양으로 껴안은 마을, Lentas 렌타스가 나오는데 카잔차키스는 30대 시절에 종종 렌타스로 내려와 조용하고 비밀스러운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신비로운 자연 속에서 영감을 찾고, 사자 머리 절벽에 난 동굴에 들어가 글을 썼고 후에 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엘레니와 함께 이곳에서 뜨거운 여름 한 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내 집 앞마당처럼 작고 아늑한 렌타스 해변을 바라보면 카잔차키스가 크레타의 많고 많은 해안 마을 중 왜 하필 이 깊숙한 곳까지 찾아 왔는지 완벽히 이해될 만큼 자유롭고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