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구영신예배는 기독교적인가.
오늘은 2025년 을사년을 보내고 새로운 2026, 丙午年병오년 첫날입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관점에서보면 한해의 마지막과 시작이라고 하기에는 설(음력 1월1일)이 있기때문에 신년이라는 느낌은 떨어지지만, 영하 10도의 추위에도 전국에서 타종행사는 불야성인 모습을 보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것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의미로 종교계에서는 오랜 행사를 가집니다.
기독교의 국내에서는 송구영신예배로 불리는 Watchnight Service외에도 12월 31일 밤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시점에 특별한 의식을 치르는 종교적, 문화적 전통은 인간이 가진 108가지의 번뇌를 종소리와 함께 씻어내고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다는 제야의 종의 타종과 일부 사찰에서는 신도들이 모여 밤을 새우며 참선하거나 염불을 외우는 '철야 정진'을 하며 새해 아침 첫 예불을 올리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불교와 생활문화가 접목되어 만들어진 初詣 はつもうで 하츠모데라는 행사는 예전에는 미디어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자정이 지나자마자 신사(Shinto)나 사찰을 방문해 새해 첫 기도를 올리는 행사와 12월 31일 밤, '해를 넘기는 국수'라는 뜻의 소바를 먹으며 장수와 액운 끊기를 기원하는 토시코시 소바 としこしそば (年越しそば)도 새날을 시작하는 행사로 오랜시간을 자리잡았죠.
날짜는 다르지만,
음력을 사용했던 우리나라 전통은 2월 31일 밤에 잠을 자지 않는 수세라는 풍습이 있었고 히브리식력에의한 1월첫날(그레고리력 9월경)에 Rosh HaShanah 로쉬 하샤나라는 심판을준비하는 새로운 시작의 회개 행사가 있고 역시 이슬람력으로 12월31일에 المحرّم 무하람이라고 기도에 집중하는 풍습이 있고 힌두교에서는 दीवाली 디왈리라는 축제가 있기도 합니다.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기도로 준비하는 철야 예배적 성격을 갖는 기독교의 송구영신예배는 전 세계 여러 교단(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개혁교회 등)에서 관행적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Watchnight 자체는 18세기 모라비안 교회에서 비롯됐고 이후 웨슬리 등에게 영향을 주었고 한국교회 고유의 송구영신예배는 1885~1887년경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제야 기도회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 등 초기 선교사들이 1885년 12월 31일 밤에 철야 기도회를 드린 것이 최초 유래로 기록어 있는데 당시에는 ‘언약갱신예배’, ‘언약예배’ 등으로 불리며, 새해에 복음을 위한 열매(최초 개종자 세례)를 바랍니다.
이후 1887년 정동교회(새문안교회)와 정동감리교회가 12월 31일 밤 예배를 드린 것이 오늘날 전통의 기원으로 여겨집니다.
1880~90년대 이후 한국 내 교회들이 증가하면서 12월 31일 밤 예배는 자연스럽게 각 교회에서 시행되었고 이후 교단과 교회 연합의 장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많은 목회자와 신학자는 송구영신예배를 영적 점검과 삶의 다짐의 장으로 보며, 신앙적 의미 강조를 권면합니다. 특히 한 해의 삶을 하나님의 섭리 아래 돌아보고 새로운 결단을 하는 기도 중심의 예배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 신학적·목회적 가치는 깊지만, 형식화·세속화의 위험 역시 지적되고 있습니다.
우선, 새해 0시에 과도한 영적 의미를 부여할 경우, time superstition에 빠질 수 있어 시간의 거룩화라는 딜레마에 빠지기 쉬운데 이에대해 20세기를 대표하는 구약성경학자, G. von Rad 게르하르트 폰 라트는 성경의 시간 이해는 연대기적(chronos)이 아니라 구원사적(kairos)이라고 이야기한것처럼 달력적 경계(12월 31일 → 1월 1일) 자체에 신학적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성서적 필연성 없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냐 종교행사냐에 대한 문제도 들 수 있는데 예배는 인간의 새 출발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미 시작된 나라를 증언하는 자리라고 말한 미국 예배신학자 James F. White 제임스 화이트의 이야기르르 비춰보면 지난 해 실패 → 새해 결단 → 개인적 목표 → 축복 선언의 경우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의 행위 → 인간의 의지 서사로 이동하며 예배가 영적 자기계발 세션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고 축도조차 결단에 대한 보상처럼 기능하는 왜곡이 가능해 집니다.
교회력은 세속 시간에 교회가 맞추는 방식이 아니라, 세속 시간을 복음으로 재배치하는 장치라고 이야기 한 Thomas J. Talley의 이야기처럼 12월31일과 1월1일은 초대교회·중세교회·종교개혁 전통 어디에도 ‘연말–연초 단일 예배’는 교회력의 중심이 아니고 성탄 → 사순 → 부활 → 오순 → 대림이라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반복적으로 재-거주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송구영신예배는 교회력 바깥의 준-비공식 예배로 성탄·주현절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할 때 발생하는 보편 교회 전통과의 긴장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송구영신예배가 새해 목표 카드, 신년 작정, 금식·성경통독 서약 과 결합될 때 실패 경험이 많은 성도에게 다시 시작하라는 메시지는 은혜의 초대가 아니라 압박으로 작동하기도 하기에 송구영신예배가 번아웃 신자, 우울·무기력 상태의 신자에게 spiritual performanceism (영적 성과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전 신부이자 작가인 Henri Nouwen의 의견처럼 영성은 더 잘 살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는점에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결산, 목표 설정, 운세·신년 계획, 송구영신예배가 이 흐름과 결합할 때: 기독교 예배가 기독교 버전 신년 의례가 한국 사회 문화와의 결합하며 새해의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내 삶의 개선으로 이동하게되며 기복적 무속과 다르지 않은 구조를 갖는 순간이 있거나 교회가 사회의 시간 감각을 세례주지 못하고 오히려 흡수당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비판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것이 아니라, 송구영신예배는 한국교회의 창의적 산물이지만, 신학적으로 성찰되지 않을 경우 은혜의 예배가 시간 관리 의례로 변질될 위험을 항상 안고 있기에 내년엔 잘 살겠다라기보다는 하나님은 이미 신실하셨다라는 결단이 아닌 고백으로 한해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인지하고 번아웃되고 어렵게 삶을 이어가는 이들을 중심에 두고 성공서사가 아닌 은혜·쉼·용서의 언어 사용한다면 Watchnight가 가지는 본래의 목적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