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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25.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 강원 경포대

여섯. 강릉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경포대

강원도의 도청소재지는 춘천인데 원래 강원도와는 그다지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춘천이 도청소재지가 된건 1910년이고 1967년 의암댐이 들어서면서 500만평의 의암호가 만들어져 졸지에 산악도시 춘천은 호반도시가 되면서 성장을 하게된거다.

하지만 아직도 원주는 32만, 춘천은 27만으로 원주가 우세하고.


1395년 영동의 강릉도와 영서의 교주도(원주지역)를 합하여 강원도로 합도함으로써 도명이 공식적인 행정구역으로 확정되었다.

인구는 도 전체 박박 긁어봐야 150만.

해발 830m의 대관령을 넘어야 되기 땜에 발전이 안 된다.

경포대, 경포~송정해변, 안목커피거리, 허난설헌생가, 오죽헌, 중앙시장...

이게 대세.

강릉하면 관동8경중 하나인 경포대를 떠올리니 가 보겠고, 바다 봐야 하니 경포대해수욕장에서 송정까지 가면서 커피로 이름난 안목거리 들르겠고, 먹거리 찾아 중앙시장 들러 허난설헌 생가, 그리고 유명하다는 오죽헌이다.

강릉대도호 풍속이 좋을시고,

절효정문(節孝旌門)이 골골이 버티고 있으니,

비옥가봉(比屋可封)이 이제도 있다.

- 관동별곡, 정철


鏡浦湖경포호

호숫물이 거울과 같이 맑다고 하여 鏡湖경호라고도 한다

호수 가운데에는 紅粧巖홍장암과 鳥巖조암이라는 바위섬이 있는데, 조암에는 송시열(宋時烈)이 쓴 ‘鳥巖’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전설에 따르면,


경포호수는 옛날에 어느 부자가 살던 곳이었는데 어느날 스님이 그 부자에게 쌀 시주를 청하였는데 그가 똥을 퍼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갑자기 그 부자가 살던 곳이 내려앉아서 호수가 되었고, 쌓였던 곡식은 모두 작은 조개로 변하였다고. 


해마다 흉년이 들면 조개가 많이 나고 풍년이 들면 적게 나는데, 조개의 하나인 맛의 맛이 달고 향긋하여 요기할 만하며, 세상 사람은 이를 적곡조개라 부르게 된다.

봄여름이면 먼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운 조개를 이고 지고 갔다.

호수 밑바닥에는 아직 기와 부스러기와 그릇들이 남아 있어 헤엄을 치는 사람들이 가끔 줍는다고 한다.

鏡浦臺경포대

강릉시 저동, 운정동, 초당동의 경포호수 북쪽에 위치한 누각으로 경포대해수욕장과 가까운 곳에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경포호수를 내려다보는 위치인데 경포대해수욕장을 찾는 사람은 많아도 경포대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경포대는 1326년(충숙왕13) 강원도안렴사였던 박숙이 신라의 사선(四仙)이 놀았다던 방해정 뒷산 인월사 터에 세웠다가 그 뒤 1508년(중종3)에 강릉부사 한급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韓汲한급

본관은 청주(淸州).

1503년(연산군9) 별시문과에 삼등과로 급제하였고. 장령을 거쳐 강릉부사로 재직.

정면 5칸, 측면 5칸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경포대는 우물천장을 하게 마련인 팔작지붕인데도 연등천장이며 주춧돌도 자연석을 그대로 놓은 뒤 기둥에 딸린 부위만 둥글게 다듬어놓았다.

1626년 강릉부사 이명준이 크게 중수하였다.

인조때 우의정을 지냈던 장유가 지은 『중수기』에는  


태조와 세조도 친히 경포대에 올라 사면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었다


라고 적혀 있다.

현재의 건물은 1745년 부사 조하망이 세운 것이며, 낡은 건물은 헐어낸 다음 홍수로 사천면 근처 앞바다까지 떠내려온 아름드리나무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관동팔경 중 첫손에 꼽히는 경치를 자랑하는 경포대의 현판은 전서체와 해서체로 쓴 것 두 개가 있다.

해서체는 순조 때 한성부판윤을 지낸 이익회가 썼고,

전서체는 조선 후기의 서예가 유한지가 썼다.

第一江山제일강산은 전주객사의 豊沛之館풍패지관을 썼다고 알려진 명나라 사신 주지번의 글씨라고도 하고 또는 조선전기 4대 서예가 중의 한 사람인 양사언의 글씨라고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고, 뒷부분의 파손된 두 글자는 후세 사람이 써서 덧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 밖에 숙종의 어제시와 명문으로 널리 알려진 조하망의 상량문 등 여러사람의 글이 걸려 있는 가운데 율곡 이이가 열살 무렵 지었다는 「鏡浦臺賦경포대부」도 편액되어 있다.  

하늘은 유유하여 더욱 멀고 달은 교교하여 빛을 더하더라.

해 뜨는 이른 아침이나 달 밝은 가을밤에 경포대에 올라

경포호를 굽어보거나 호수 너머 동해의 푸른 바다를 대하면

속세는 간데없이 온통 선경이요


옛 사람의 시가 주위의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등이 알맞게 어우러진 운치 있는 경관을 보면 생각난다.

강릉사람들은 경포대에서 볼 수 있는 여덟 개의 경치를 경포팔경이라 불렀는데,


경포대에서 바라보는 해돋이와 낙조 그리고 달맞이,

고기잡이배의 야경,

노송에 들어앉은 강문동,

초당마을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홍장암에 내리는 밤비,

시루봉 신선이 바둑을 두고 피리를 부는 신선경 이 경포팔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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