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조선의 패망에서 독립까지 03 일본의 패망
끊임없이 이어진 항쟁과 열강에 의한 일본의 패망
일제의 무단통치의 위협과 회유앞에 그동안 많은 지식인들이 비굴하게 일제에 굴복하여 자신의 영달을 찾아 변절하고 민족을 배신하였으나, 그러나 노동자와 농민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와 봉건적 지주제의 착취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투쟁을 더욱 세차게 벌여 나갔다.
농민들은 일제의 폭압적 통치하에서 스스로를 조직하기 위하여 비밀스런 지하 농민조합을 창설하여 일제의 식민통치와 지주계급의 봉건적 착취에 대항하여 투쟁하였으며 이러한 비밀 농민조직의 투쟁은 함경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이들은 항일 무장대와 연대하여 일제 경찰이나 군 주재소, 면사무소, 우체국 등 관청이나 악질 지주를 습격하는 등 무장투쟁은 물론 '농민 투쟁기', '돌격대' 등 각종 출판물을 간행하여 선전활동을 하는가 하면 야학회, 신문강연회 등을 개최하여 농민대중을 각성시키기 위한 사업도 벌여 나갔다.
또한 1920년 대부터는 압록강과 두만강 연안, 그리고 간도지역을 중심으로 한 만주지역에서의 항일 무장투쟁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청천 장군이 이끄는 '한국 독립군', 양세봉의 '조선 혁명군' 그리고 '김일성 부대'가 활발한 항일 무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특히 '김일성 부대'는 1930 년대 중반 이후 만주에서 활동하던 대부분의 항일무장부대들이 중국 본토로 이동하여 간 뒤에도 동만주 지역을 거점으로 해방되던 1945 년까지 활발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1937 년 6 월 4 일 일어난 '김일성 부대'의 한반도 진공작전인 '보천보 전투'는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쾌거였던 대사건이었다.
중국 중경에서는 김구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임시정부는 군사조직인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여 중국 국민당 정부와 미군의 지원을 받으며 한반도 진공을 위한 맹훈련에 돌입하였다.
연안에서는 194 년 김두봉과 무정 등이 중심이 되어 기존의 '조선의용군'을 기반으로 '조선독립동맹'을 조직하여 화북지방을 중심으로 일본군과 항전을 하며 국내진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도 1944년 8 월 여운형이 서울에 비밀 조직인 '건국동맹'을 결성하고 일제의 패망에 대비하여 임정 등 해외 독립운동 조직과 계속 연락을 취하면서 독립의 그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6일
미 공군 B-29 폭격기에 탑재된 15 KTon 급 원자폭탄 Little Boy가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 신형 대형 살상무기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였다.
한 순간에 도시 전체를 버섯구름으로 덮으며 눈 깜작할 사이에 14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다.
히로시마의 충격에 휩싸여 있던 8월 8일에는 미국의 계속되는 참전 요청을 수락한 소련군이 대일선전포고와 함께 일제가 자랑하던 최강 전력의 만주 주둔 관동군에게 공격을 시작하였다.
다음날인 8 월 9일 또다시 나가사키에 21 KTon 급 원자폭탄 Pat Man이 투하되어 나가사키 시민 7만여 명이 죽었다.
1945년 8월 15일, 군국주의 일제는 드디어 종말을 맞았다.
그동안 종전에 대한 물밑 접촉을 해오던 미국에게 일본 국왕의 직위와 안전만을 보장받고 무조건 항복을 하였다.
1944 년 건국동맹을 결성하여 새로운 조국 건설을 준비하던 여운형은 1945년 8월 15일 아침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엔도의 행정권 인수 제의를 수락하면서 다음 5 가지의 조건을 제시하였다.
좌) 김일성 김두봉 박헌영 김원봉 김달현 허헌 / 우) 한자리에 모인 건국동맹
1. 전 조선의 정치범, 경제범의 즉시 석방.
2. 조선의 수도인 경성에 3 개월(8, 9, 10 월) 분의 식량 확보.
3. 조선의 치안 유지와 건설사업에 일절의 불간섭.
4. 학생들의 훈련과 청년들의 조직화 사업에 간섭하지 말 것.
5. 조선내 각 사업장에 있는 일본노무자들을 우리 건설 사업에 협력시킬 것.
이상 5 가지의 조건을 조선 총독부는 아무런 이의없이 즉시 수락하였다.
8 월 15일 저녁, 여운형은 안재홍 등과 함께 건국동맹 회원들을 중심으로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건국준비위원회는 조선총독부로 부터 치안유지의 권한 및 방송국, 각 언론기관 등을 이양받고 건준의 설립 목적과 건국사업을 위한 방안 등 각종 현안에 대한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8월 말 경에는 전국적으로 145 개의 건준의 지부가 설립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각 지역단위의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어 실질적인 통치 기능을 발휘하였다.
인민위원회는 조직부, 선전부, 치안부, 식량부, 재정부를 갖추고 있는 민중적 자치 기구이며 국가 권력을 대신하는 권력기관이었다. 민중들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표로 구성된 인민위원회는 행정, 사법 등 모든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각 행정단위 지역의 인민위원회는 중앙에서 임명되거나 선정되지 않고 해당 지역 인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된 인민위원회에 의해 독자적으로 구성된 완벽한 지방자치의 원칙이 고수되었다. 특히 인민위원회의 구성은 모든 계급 계층의 대표가 동시에 참여하여 러시아의 소비에트와는 달리 계급과 이념을 초월한 민족통일전선을 기반하고 있다는 특징도 있다.
건준은 이어서 국내의 치안유지와 질서를 확보하기 위하여 8 월 16 일에는 '건국청년치안대'를 조직하였고, 국군준비대를 창설하여 약 6 만여 명의 인원을 확보하고 군사훈련에 돌입하는 등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일련의 작업들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