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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Feb 28.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V 전라 군산 근대건축 동국사

아홉. 근대건축의 보루…군산 02 동국사

동국사 東國寺


서해안고속도로를 군산 IC로 빠져나가서 15~20분 차로 움직이거나, 기차역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로 5분 정도면 유일하게 일본사찰형식을 볼 수 있는 동국사에 닿게 된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건축전문기자였던 작고한 구본준 기자는 동국사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일본 절, 한국에 귀화하다」 는 타이틀을 사용 했던 것처럼 팔작지붕에 홑처마 형식의 일본 에도시대의 건축양식이다.


동국사의 종파는 曹洞宗조동종.

당시 불교는 일본의 국교였다.

조선의 조동종 중시조는 매월당 김시습이다.

1930년대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공적을 기린다며 장충단공원에 박문사란 절을 세운 것도 조동종이었다.

이등박문을 기리는 절 박문사는 해방 후 철거되고 신라호텔이 들어섰다.


1877년 중국, 한반도를 거쳐 현해탄을 거쳐 전해졌던 불교는 일본화 되어 대한민국 상륙합니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종군승이 속속 상륙하게되고.

1911년 조선총독부 새로운 사찰령 발동하여 일본사찰과 한국사찰은 친하게 지낼것을 밀어 부친다.

1913년 지금의 군산시 금광동 135-1번지에 「금강사」를 창건한다.

건축자재로 쓰인 향나무를 전부 일본에서 공수해서 사용한것이다.

금강사를 창건한 우치다(內田佛觀)는 1909년 당시 77세의 고령으로 군산 일조통에 있던 집을 빌려 포교소 개설한것이 시작이었다.

2012년 참사문이라하여 사용된 문구에도 나와 있드시 1919년 일본인 주지 현정이 쓴 명문은 다음과 같다


천황의 은덕이 영원히 미치게 하니,

국가의 이익과 백성의 복락이 일본이나 한국이나 같이 굳세게 될 것이다. 


명문에 붙인 발기인들은 김제 등 호남평야의 대부분을 차지해 지금도 군산시 지적부에 이름이 남아 있는 일본인 유지들이고.

일본 게이오대를 졸업한 뒤 군산에 자리잡고 900만평을 경작했다는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와 등의 대지주 6명이 시주한 돈으로 지은것이다

동국사 입구 현판의 석주 2개중 왼쪽아래에 그 글귀를 읽어 볼 수 있다.

1945년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재산으로 귀속되고 1955년 전북 종무원에서 매입한다.

1970년 남곡 스님이 「東國寺동국사」로 개명합니다(해동대한민국).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에 기증된것.

등록문화재 제64호.

지진에 늘 시달리는 일본은 당연히 축대를 튼튼하게 쌓는데 모든 신경을 쏟는다.

축대는 전형적인 일본식 쌓기다.

네모난 돌을 마름모꼴로 뉘에 쌓아올리고, 맨 위쪽 돌은 상부가 평평하게 되면서 5각형 모양이 된다.

올라가는 길을 좀 꾸며본다고 가짜 돌무늬 바닥으로 깔았다.

안 까느니만 못한 전형적인 공무원 취향의 디자인과 처리다.

특히 근대문화유산들은 고친다고하면서 엉망으로 고쳐 옛 건물의 정취와 이미지를 망쳐놓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입구에는 1921년에 조성된 동국사 대문의 기둥이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입구의 두 기둥 중 하나에 하단엔 발기인의 이름이 상단엔 金江禪寺가 선명히 남아 있고 동국사라는 현판이 걸린 왼쪽 기둥에는 현판뒤로 희미하게 지워진 일본 천왕 연호 「昭和」가 흔적만 남아 있다.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딱 보기만해도 우리 전통 한옥과는 다른 느낌의 동국사 대웅전이 등장한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단층 팔작지붕 홑처마 형식의 대웅전은 일본 에도江戶시대 건축양식인데, 외관이 무척 단조롭다.

지붕 물매는 비가 많은 일본이라 빗물 빨리 내려가라고 75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건물 외벽에 창문이 많으며,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한옥과는 대조를 이룬다.

대웅전 출입 공간인 정면 앞 칸의 바닥은 시멘트로 마감했다.

법당에서 신발을 벗지 않고 선 채로 예배를 드리는 일본 불교 전통에 맞춘 것이다.

대웅전 바닥엔 원래 다다미가 깔렸으나 한국전쟁 중 인민군이 철거하고 대신 장마루 깔았다.

창호의 살 무늬도 분위기가 다르다.

뒤편은 일본 특유의 단순깔끔한 느낌이 더한다.

지붕에 지붕이 덧대이고, 차양이 나오면서 건물이 생물처럼 자라난 듯한 모습, 중첩되는 모습은 한중일 목조 건축의 매력 포인트들 중의 하나다.

대웅전과 스님의 숙소인 요사체는 복도 건물로 연결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 입구가 있다.

일본 건물은 한옥보다 복도가 발달해있고, 창호 문 위로 또 벽 공간을 배치한다.

법당을 살펴보면 지붕은 무지하게 높지만 내부는 단층이고 천장을 설치해 오히려 실내 높이는 낮다.

삼존불은 나무에 흙을 입혀 만든 불상으로 원래는 김제 금산사에 있다가 해방 후 이곳으로 옮겨 왔다.

불교에서 삼존불을 모시는 것은, 석가모니 이전에도 부처님이 있었고,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에도 계속 존재하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세상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삼존불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3호.

외부로 나오면 종각이 있다.

일본은 종을 높게 올려 단다

종은 일본 교토에서 만들어 물 건너 온 것이다.

1919년, 삼일운동 난 그해에 만들어 조선땅에 왔다.

종의 몸통에는 일본 왕을 칭송하는 시구가 있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세상에서 오로지 인간만이 가장 존귀하다.

삼계의 모든 중생의 괴로움, 내가 이것을 편안케 하리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던 5백여 개 일본식 사찰 전부 불 지르고 이거 하나 남았다.

일본식 절이니 철거하자는 논란에 대해 회주 재훈스님 왈.


아픈 역사도 엄연한 역사인데 지우려고만 든다고 지워지나요.

반면교사로 삼아 후대에 교훈으로 남겨야지요.


몇해 전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이 보물 제1718호로 지정되었다.

불상은 석가불, 아난존자, 가섭존자만으로 구성된 석가여래형식의 희귀한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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