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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r 02.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II 경상 병산서원

여덟. 밀양을 중심으로 좌 안동 우 함양, 그 세번째 마을 안동 병산서원

屛山書院 병산서원

드라마 징비록의 주인공 서애 유성룡.


1613년 정경세는 존덕사를 건립해 류성룡의 업적을 기리고 고려말 설립된 풍악서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류성룡이 부친상으로 화회마을에 오셨다가 병풍처럼 펼쳐진 강한산으로 이전하게 되서

1572년 풍악서당은 지금의 병산 앞으로 이전하면서 병산서당이 된다.

임진왜란때 또 왜놈들이 불 지르고 1607년 중건한다.

1610년 서애 류성룡의 위패를 모시는 尊德祠존덕사(덕을 공경하는 사당) 건립하면서 이제 병산서원이 된것이다.

1863년 철종이 병산서원이라는 편액을 내려 사액서원이 된거고.

조선말 서원은 본래의 갈고닦는 성스러운 교육의 장에서 패거리정치의 소굴로 타락해 흥선대원군은 1868년 서원 철폐령을 내려 수백 개의 서원을 때려부수지만 병산서원을 포함한 47개는 살아남는다.

병산서원으로 가는 도로 좌측으로 낙동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병산이 이를 감싸안는다.

정문인 솟을대문은 復禮門복례문(자신을 낮추고 禮예로 돌아가는 것. 인仁).

복례문 들어서면 바로 晩對樓만대루(睌對만대는 중국 최고의 詩聖시성, 두보의 五言詩오언시 「百濟城樓백제성루」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만하니’에서 따온 말).

숙여 만대루밑을 통과하면 시원한 안마당이다.

향교는 서민들의 자제도 입학 가능하지만 서원은 양반 자제만 입학 가능하다.

좌측의 東齋동재는 상급생 숙소이고

우측의 西齋서재는 하급생 숙소다.

정면에 立敎堂입교당은 가르침을 바로 배우는 교실이다.

15일 마다 열리는 강회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대청마루가 있고 동재의 상급생은 우측에 서재의 하급생은 좌측에 무릎 꿇고 앉아 강의를 듣는다.

철저한 위계질서로 여기서 합격하면 다음 숙제가 주어지고 불합격하면 낙제.

같은 내용으로 다음 강회에 참석한다.

서원은 배움을 마칠 때까지 짧게는 2년에서 10년 다니는 학생도 있다.

대청 좌측 방은 明誠齋명성재(정성이 빛나는 방)는 원장실이고

대청 우측 온돌방 敬義齋경의재(의로움을 공경하는 방)는 교무실인셈이다.


좌측이 높고 우측이 낮은 左高右低좌고우저의 배치.  입교당 뒤로 존덕사.

앞에는 학교를 뒤에는 사당을 놓는 서원건축의 배치법 前學後廟전학후묘.


뒤로 갈수록 더 중요한 방이 놓이고, 사당은 죽은 자들의 방이므로 정면에만 출입문을 달고 나머지 삼면에는 창을 두지 않아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서원의 정원은 20명.

학생이 넘치면 인근마을에서 하숙해야 한다.

원장실 뒤에 있는 목조건물은 장판각으로 인쇄용 목판을 보관하는 건물이라 바람 잘 통하라고 전부 나무판으로 만든거다.

7칸의 그야말로 장대한 누마루에 올라서면 이곳이 바로 淨土정토(부처님이 사시는 청정한 나라)이며 이곳이 바로 우주다.

다듬지 않은채 생긴대로 끼워맞춘 기둥들 사이로 보이는 푸른절벽은 한폭의 그림이 된다.

이제 만대루로 인해 이곳 병산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하나로 완성되니, 푸른절벽과 푸른강은 만대루를 휘감고 돌고 이 숭고한 만대루는 온갖 자연의 범상치 않은 까탈스러운 투정을 태풍이 불거나 파도가 치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개의치 않고 그저 담대하게 바라본다.

만대루는 그런 자연의 一喜一悲일희일비(한편으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슬퍼함)에 무관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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