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역사 읽기 III 조선사

여섯. 興淸亡淸 흥청망청

by Architect Y

자신의 생모인 폐비 윤씨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한 연산군이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면서 벌인 복수극이 바로 갑자 사화다.

이 일이 있은 뒤 연산의 광폭한 행동은 더욱 심해졌으니, 특히 사람 죽이는 일과 마시고 노는 일에서 더욱 그러했다.

갑자 사화 이듬해인 1505년 10월 2일의 「연산군 일기」에도 이렇게 적고 있다.


갑자년 이후의 하교가, 흥청·운평에 관한 일이 아니면 반드시 사람을 벌하고 죽이는 일이라,

인심이 날로 떠났다.


그러면 흥청과 운평은 어떤 사람들인가?

연산은 대신들을 전국 각지에 채홍사로 보내 사대부의 첩과 양인의 아내와 딸, 노비, 창기 들을 가리지 않고 징발했는데 그 수가 1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들을 운평·계평·채홍·속홍·부화·흡려 따위의 호칭으로 불렀으며 이들 가운데 나은 자를 골라 흥청이라 했다.

이런 이름들은 연산이 직접 지었는데, 흥청이란 사악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으라는 뜻이며, 운평이란 태평한 운수를 만났다는 뜻이다.

흥청 가운데 왕과 관계를 갖지 못한 자는 지과라 하고, 관계를 가진 자는 천과라 하며, 관계를 가졌으되 흡족하지 못한 자는 반천과라 했다.

이들 왕실 소속 기생들을 위해 모두 일곱 군데에 거처할 시설을 지었다.

또한 음식 공급을 위해 호화고를 두었고, 의복과 화장품 공급을 위해 보염서를 설치했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왕실 기생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모두 백성들이 부담했으니 불평 불만의 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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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청·운평에 대해 험담하는 자들을 잡아들이라는 명령까지 따로 내릴 정도였다.

또 이들 기생 가운데 곱게 화장하지 않은 자는 귀양을 보내고 그의 부모까지 처벌하도록 했다.

아이를 가질 경우 그 남편은 목을 베고 아이는 생으로 매장하게 했다.

연산이 서울 근교로 놀러 갈 때 왕을 따르는 흥청의 수가 1천 명씩 되었고 날마다 계속되는 파티에도 이들 흥청과 운평이 동원되었다.


연산의 이러한 행각으로 ‘흥청’은 ‘흥청거리다’는 말을 낳았고 오늘날의 ‘흥청 망청’으로 이어졌다.

연산은 말 그대로 흥청 망청의 원조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흥청의 본래 뜻이 ‘사악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으라’는 뜻임을 생각할 때, 연산에게는 좋은 말 하나를 변질시켰다는 죄목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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