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실학자(?) 정약용 2/7
: 조선의 노비
우선 글을 잇기 전에 ...
다산의 장점 또한 수 없이 많다.
단지 장점이야 지금껏 우리가 짧게는 12년에서 길게는 16년을 넘도록 배워온 내용이기에 다른면을 보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과 조선시대를 살아온 성리학자들의 노비에 대한 생각에 앞서 조선시대의 노비에 관해 먼저 이야기 해 보자면...
조선시대의 노비를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지불식간에 이상하리만큼 노비에 대해서는 숨기려 하고 있다.
TV드라마나 영화에서의 사극은 과하게 치장하기 바쁘지만, 유독 노비에 관하여는 축소지향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조선시대 인구의 30%를 차지했던 계급.
王氏五百年間宗親巨室 왕씨오백년간종친거실
多聚奴婢 或有至千餘口 다취노비 혹유지천여구
- 조선왕조실록
왕씨 500년(고려) 동안에 종친과 거실이 노비를 많이 모아서, 혹은 천여 명까지에 이르렀다
사헌부의 보고서를 보면, 노비를 1,000명 가까이 보유하는 것이 보기 드문 광경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사회경제적 조건은 별반 다를 것이 없던것이다.
지주가 노비를 사용해서 수익을 올리는 경제구도는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기때문이다.
여기서 처음 접하는 어마어마한 수가 나와서 감당이 안된다.
천명의 노예...
떠도는 이야기를 해보자면...
1858년 철종 9년에는 양반 70.3%, 상민 28.2%, 천민1.5% 고종땐 양반의 수가 80%를 넘어 결국 일제가 아니라도, 조선의 신분제는 거의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일본학자 사카타 히로시가 유학이라는 품계를 양반으로 잘못 기재한 통계적 오류이며,
실제 양반 비율은 1910년의 전국 호구조사에서 확인이 되는데, 총 가구(家口) 수 289만 4,777호 가운데 양반이 5만 4,217호로 전체 인구의 겨우 1.9%에 불과했다.
여러이유중 함부로 펌글을 밴드에 올리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이유다.
오류의 반복과 고착되는 반지식, SNS의 어두운 면 중의 하나다.
分財記분재기(상속집행문서)에 의하면,
1494년 217명의 淸白吏청백리 중 한사람 李孟賢이맹현은 전국 70개 군현에 752명의 노비가 있었다고 하고
16세기의 도승지를 지내고 조광조를 실각시킨 權橃권별은 사망 당시 그의 노비는 317명이었다고 한다.
禦睡新話어수신화(한문 소화집)에는 홍씨 과부의 집에는 거의 1,000명이나 되는 노비가 있었다라고 한다.
하멜표류기를 쓴 하멜은 「조선국에 관한 기술」에서
양반의 수입은 소유지의 재산과 노비로부터 생긴다.
어떤 양반은 2,000~3,000명에 달하는 노비를 소유하고 있다
라고 기술했다.
이렇게 깊이 가지 않더라도 쉽게 접하는 소설 속에서도 노비에 관한 사실을 볼수 있다.
유명한 장화홍년전에서 자신이 재산 문제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홍련은 친엄마의 노비가 수천 구라고 했다.
당시 1,000명 정도의 노비를 보유한 가문들이 많았기에 문학작품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한 집안에 수백 혹은 수천의 노비들이 있는 경우, 이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위계질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노비들 사이의 계층질서에서 최상위에 있는 사람을 흔히 首奴수노라 불렀다.
오늘날로 치면 사실상 CEO 최고경영자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노비라고 해서 무조건 최하층의 지위에 처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작녕에 올린 글중 여사라는 호칭에 대해 올린 글이 있는데, 바로 이런 의미다.
쉽게 표현하자면 공무원 노비.
잠깐 정리를 하자면
수백, 수천의 노비들은 넓은 지역에 분포하며 양반에 무한제공을 하게 된다.
현대의 기업형태로 인식하는것이 수월하다.
물론 양반집안에서 함께 거주하는 노비또한 그 수가 수십은 되고.
이들은 비서실이나 수반으로 보시면 쉽게 이해가 간다.
이런 수 많은 노비의 노동력으로 조선의 양반들은 그 세를 유지 할 수 있었던것이다.
이제 연결지어 자면.
중국은 노비제도가 있었지만 세습되지는 않았다.
조선은 세습되는 영구적인 신분이었다.
중국은 학자의 평생 소원이 새로운 한자를 만들어 퍼 뜨리는것이라 혼자 열심히 고생하면 되는것이다.
조선의 선비는 평생 소원이 새로운 책을 내는것이니 많은 돈과 인력이 필요하다.
(물론, 재산의 증식, 권력의 소유등과 같은 소원은 접고)
조선을 통틀어 499권이라는 가장 많은 책을 만든 다산은 노비가 필요치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