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先生선생에 대하여
봄바람 좋은 새벽을 맞이한다.
공기가 차지 않은 지난 밤을 지나고 이어지는 새벽의 그것도 봄이 지남을 느끼게 한다.
3월은 학기, 학년, 학교의 시작이 되는 달이다.
중심에는 학생 본인이 있겠지만 결국 그 뒤로는 늘 선생님이 서 있다.
우리의 교육은 정치에 휩쓸린다.
어려운 기원이 될지 모르겠지만 흔들리고 혼란스런 세상에 바로 길을 열어주는 선생님이 있기를,
단순히 먹고 살기 안정된 직업이 아니라 그들이 백년뒤를 생각하는 교사, 강사, 교수가 아닌 선생으로 서기를 기도한다.
子游자유가 武城무성의 宰재가 된 이야기에서 선생의 모습을 바라본다.
자유는 공자보다 45세나 아래이니 제자들 중에서도 나이 어린 편에 속했다.
공자가 자유에게 이야기했다.
닭을 잡는데 어째 소 잡는 칼을 쓰느냐?
조그만 고을을 다스리는데 큰 나라를 다스리는데 쓰는 예와 악을 쓰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자 자유가 반문한다.
政事정사에 종사하는 사람이 예악을 배우면 백성을 잘 인도할 수가 있고,
백성이 예악을 배우면 윗사람이 부리기가 쉽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하온즉 어느 누구나 예악은 배워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孔子가 이내 자유의 말에 承服승복한다.
제자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좀 전에 내가 한 말은 농담이었다.
이럴 수 있는 선생이 있다면...
적어도 스승이라면 당돌하고도 사리가 분명한 제자의 말에 雅量아량있게 승복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二三者 偃之言 是也 이삼자 언지언 시야
前言 戱之耳 전언 희지이
- 論語 陽貨 논어양화편
제자들아, 언(偃)의 말이 옳다.
좀 전에 내가 한 말은 농담이니라.
자유는 孔子가 세상을 뜬 후 문학으로 한 계통을 세워 후진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어린 친구들을 보면 미안한 맘이 앞서지만 염치 없게도 그들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모습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