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에 이은 전통의 두번째 문화건축
이어지는 욕심에서 시작된 잿빛 아트센터
1983년 전두환 정권시절 새로운 문화 이슈로 오페라 극장이 낙점된다.
역시 김원소장이 나서고 독립기념관 마스터플랜 팀이 재가동된다.
서울시에서 옛서울고등학교자리를 추천하는데 이곳은 그 파란 만장한 경희궁터.
경희궁으로 달려가 보니 양악, 국악을 아우르는 서울 아트센터를 질려면 5만평은 필요한데 너무 좁다.
2차 후보지는 서초동의 정보사 터.
서울시에서 이만큼 고즈넉한 땅은 찾기 힘들다.
아트센터는 일단 소리를 지르는 곳이므로 조용해야 된다.
하지만 (당시)문공부가 정보사를 이길 수 없던 시절.
김일성이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고 있는데…
3차 후보지는 뚝섬이다.
압구정동에서 성수대교를 건너면 좌측에 골재회사가 있어 당시 분진발생업소로 이전대상지였다.
삼각분지.
넘실거리는 한강이 내려다보인다.
길 건너에 수십만 평의 뚝섬공원도 있고 한강유람선도 좋고.
이진희 장관과 김원.
북쪽 조망이 문제로 결사반대.
달동네 앞에 문화센터를 둘 수 없다고 이진희 장관은 주장.
전통은 재임 중 준공테이프를 끊어야 되니 시간이 없다.
우면산아래 땅이 후보지로 올라왔다.
차도 별로 없던 시절이라 화물차들이 날라 다니는통에 남부순환로의 소음이 문제다.
전철역도 없고.
하지만 방법이 없다.
준공테이프만 아니어도 좀 좋은 곳을 찾을 수 있지만…
좌측에 예술의 전당, 우측에 국립국악원이 자리잡는다.
이진희 장관은 Ieoh Ming Pei를 불러 지명현상설계하려 하지만 거절한다.
I.M 페이(1917- ) 중국 광동생으로 MIT 졸업 후 1935년 미국 귀화하고 1989년 설계한 파리 루브르박물관 피라미드를 디자인한 분이다. 지금 98살. 아직도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당선작은 마흔살의 김석철.
스페이스 프로그램에 충실 하라는 지침을 위반했다고 시대의 풍운아 김중업, 김수근 선생은 마스터플랜을 무시한다.
그냥 한지에 붓으로 아트를 난치듯 쭉 그린거다.
예술의 전당 마스터플랜 작성 소위원회에서 활동하던 김석철은 이걸 노린다.
내용을 알고 현상설계에 참여했으니 이 때문에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김석철(1943- )
서울대 건축과 졸.
첫 직장이 김중업연구소.
3년 만에 김수근연구소로 옮긴다.
대한민국에서 이 양대 거장에 두루 사사한 유일한 건축가.
이 예술의 전당에서 두 스승을 이긴(?) 거다.
대지면적 7만평에 연면적 36,000평의 설계자가 된 거다.
10년 동안 김석철은 여기 우면산 아래서 논다.
공사비만 600억.
지금으로 환산하면 수천억.
디자인을 오더하는 갑질이 시작되니…
원래 원안도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여기서부터 더욱 웃기는 디자인이 된다.
우리 것 중에 갓하고 부채를 얹게으라는…
그래 오페라하우스에는 갓이 얹어지고 콘서트홀에는 부채가 얹어진다.
원래 예술의 전당 마스터플랜에 의하면 이 역에서 예술의 전당까지의 지하에는 쇼핑몰이 계획돼 있었다.
그래야 서울시민들이 안전하게 예술의 전당까지 접근할 수 있게.
이게 돌연 취소된다.
공사비가 없다고.
1997년 좋은 기회가 온다.
부도난 진로가 남부터미널 남측 부지 수천 평을 매물로 내 놓자 군인공제회가 이걸 덥석 문거다.
아파트 지어 돈을 좀 벌어보겠다는 거다.
그런데 이 땅은 터미널 부지로 묶여 있다.
서초구청은 이때다 싶어 예술의 전당으로 연결되는 지하에 쇼핑몰을 건립할 것을 제안한다.
밀고 당기고…
군인공제회는 빼째라 버틴다.
그래 서초구청은 육교 하나 겨우 건졌다.
설계자는 고속터미널 후면에 central point bridge 센트럴 포인트 육교를 설계한 David Pierre Jalicon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이 된다.
그래 55억짜리 斜張橋사장교(둥 없이 케이블로 상판을 잡아당겨 고정시킨 다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올림픽대교처럼 수백 미터의 다리에 적용해야 경제적이지만 아트를 만들어야 되는 관계로.
길이 50m, 폭 3.2m, 높이 6.15미m의 구조물을 8개의 케이블이 들고 있다.
1968년생인 잘리콩은 테제베 역사 감독관으로 왔다가 물 좋다는 소문에 아예 대한민국에 자리 잡은 유일한 프랑스 건축가다.
그래 잘 나간다.
육교가 왜 꼭 못생겨야 되냐.
'육교도 아트다'가 그의 모토다.
우선 거대한 원을 우면산 경사도에 맞게 우면산 기슭에 약간 눕힌다.
가운데 원형 구멍을 뚫어 우면산의 氣를 도심으로 내뿜는다.
우면산의 계곡 물을 모터로 끌어 올려 원판 폭포를 만들어 이웃한 관악산의 불의 기운을 잠재운다.
이 원판폭포는 그대로 해태(소방소 역할)가 된다.
예술의 전당 쪽에서 시작된 장애인용 램프로 올라가면 비틀린 원형 구멍을 통해 다리를 건너게 된다.
시원한 폭포수가 쏟아지고 물방울이 튄다.
우면산 계곡.
단순한 육교통행인보다는 필자처럼 일부러 찾아와 여름밤의 더위를 쫓는 시민들이 더 많다.
한밤중에 레이저 쇼도 펼쳐진다.
그런데 예술의 전당 쪽에서 램프로 올라온 휠체어는 남부터미널쪽에서 내려갈 수 없다.
아파트도 다 팔아먹고 이제 나 몰라라.
돈 떨어졌다.
이 아쿠아 브리지를 건너 예술의 전당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먼저 한가람미술관.
평범한 상자형 건물.
로비에는 바우하우스 커피숍이 성업 중.
예술의 전당의 식음료 코너는 전부 신라호텔에서 운영한다.
매년 적자인 예술의 전당의 최대 후원자가 홍라희관장이라…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좌측은 엄청난 스케일의 오페라 극장이다.
곡면이 쭉 돌아가면서 갓을 재현한다.
무거운 처마는 공장에서 생산된 조립식 패널이 한옥처마의 느낌을 재현하려는 듯 자잘 자잘하게 분절되어 붙여진다.
어쩌면 500개의 실로 엮어지는 갓 양태(햇빛가리개로 촘촘할수록 고급)를 재현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지럽다.
야외 광장에 올라가니 우측에 부채를 흉내 낸 2,600석의 콘서트홀.
역시 원형이다.
김석철에게 있어 원은 화두다.
지구도 달도 태양도 산도 다 원이잖냐.
왜 꼭 직선으로만 도시를 꾸미냐. 그러니 도시가 삭막해지고 범죄가 들 끊는 거다.
이렇듯 김석철은 착한 도시 만들기에 인생을 건다.
오죽하면 그의 사무실 이름도 archiban 아키반(architecture+urban의 합성어)이다.
멀리 국립국악원을 바라보며 좌회전하면 거대한 유리상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분관.
1993년 석관동 옛 안기부자리에 설립된 한예종은 6개 단과대로 구성된다.
음악원, 연극원, 영사원, 무용원, 미술원, 전통예술원.
이중에서 음악원과 무용원이 이곳 예술의 전당으로 1999년 이사 온 거다.
설계자 역시 김석철.
5,000평 추가.
이제 연면적 40,000평을 넘어선다.
기존 예술의 전당에 하두 돌을 써서 유리로 좀 바꿔본거다.
그럼 왜 원이 아니고 직선일까.
안에 들어가면 원 투성이다.
한예종옆에 서예관.
서예관 사람의 얼굴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정면이 좀 이상하다.
눈도 코도 입도 있다.
관람객들이 이 서예관을 무시해서 눈길을 끌어 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