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길...대한민국에서 건축하기
건축을 하며 많은 시간을 흘렸다.
아래 건축을 하고싶다는 밴친을 보며 흐르는 시간 속에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시간을 갖게 된다.
집을 짓다...
이건 세계 어느나라에도 없는 우리의 표현방식이다.
'농사짓다' ,'짝을 짓다', '글을 짓다'...
우리에게 집을 짓는 행위는 경영을 하는 것이었다.
자녀를 낳아 미래를 대비하듯이 우리 선현은 건축을 천 년을 대비하는 신성한 행위로 본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건축의 현실은...
대한민국 사람의 반은 아파트에 살고 있죠.
그런데 아파트는 일부 대형 설계사무실이 독점하고 있고 나머지 48%는 허가방(창작 없이 도면 카피해서 인허가 빠르게 진행해 주는 건축사무소)이 판 표준 도면에서 살고 그럼 이제 남은 건 2% 남짓.
아파트 시장은 인문학적인 건축가들이 들어 갈 수 없다.
대형 건설회사 일을 받은 대형 설계 사무실은 이미 덤핑 수주를 할 수 밖에 없고 이 역시 치열하니,
더군다나 요즘에는 외국 유명 건축가들도 들어 오고 그럼 대형 설계 사무실은 근처에 있는 공장 설계 사무실에 덤핑 하도를 준다.
할 사람은 많으니 다시 재하도...
이미 설계비는 반토막도 아니고 3토막 났고 설계를 할 수 없는것이다.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으니 그럼 방법은 하나다.
기존에 있던 아파트 도면을 조금 변형해서 남품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아파트 모양이 다 비슷비슷하다.
사람들은 인문적인 집에는 관심이 없다.
주변에 전철역이 있는지 학교는 있는지, 부동산 추세는 어떤지...
어차피 '살 집'을 찾은 게 아니다.
팔아 치우고 차익 남기고 '이사갈 집'을 찾은 거니.
그래서 요즈음 '하우스 푸어'가 유행이다.
이미 떳다 방은 다 떠났고 막차 탄 사람만 길거리에 나 앉게 된다.
젊은 건축가들은 자기만의 브랜드를 천천히 만들어 갈 생각은 안하고 묻어가려고 한다.
대형 설계사무실 근처에서 어정거린다.
답사를 통해 학문을 높이고 시공도 직접 해 보고 그럼 이미 40대가 되는건데, 이걸 감당하기 쉽지 않다.
건축사는 1만명.
집 짓겠다는 사람 보다 건축사가 더 많다.
그럼 이제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 줘야하는데...
뭘까, 그게...
각자 알아가는것이다.
건축사가 1만명인지 2만명인지 상관 없다. 어차피 정글.
건축이라면 로망이 있다.
하지만 어느나라도 건축전공자가 건축다운 건축을 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그게 도를 넘어선거고.
상위 1%정도도 나라 밖을 나서면 별게 아니다.
건축의 노벨상인 Pritzker Architectural Prize 프리츠커 어워즈
일본이야 벌써 6명이나 랭크되어 있고
대한민국 건축가들이 깔보는 중국 건축계에서 조차 2012년 그 이름을 올렸다.
대한민국은 AIA디자인 상조차 작년에 겨우 40대 건축가가 수상했다고 미디어에 올랐다.
그 어려운 길을 가면서도 자기색을 고집해야 한다.
그 힘들었고 여전히 어렵지만,
건축은 인문적건축을 지향해야 하며
파묻는 집이 아니라 흐름에 뭍혀 눈에 띄이지 않는...그런걸로 우리가 속한 자연속에서 함께 흐르는 건축으로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
치기어렸던 20대를 지나고
이름을 남기고자 명예욕에 불타던 30대도 지나고
이제 40대 중반의 인생의 끝을 바라보며 그 어느것도 남기지 않는 걸 생각하게 된다.
살아가는 동안 맞춤옷을 입는 것처럼 나의 몸과 가장 불편함이 없는 집을 짓고 자연스레 허물어 지게...
마지막으로...
엔지니어가 아닌 건축가로 서려면 처음부터 건축이 생계수단으로 시작할 수 없다.
예술로 생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선택한 가장 나쁘고 가장 해로운 방법 중의 하나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지보다 훨씬 고상하여 경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들도 귀찮은 거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현대 예술은 창녀로 전락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비유는 참으로 미세한 부분까지 꼭 들어맞는다.
예술은 창녀와 마찬가지로 항상 화장을 하고 언제든지 매매할 수 있으며 창녀처럼 사람을 유혹하고 파멸시키며 언제든지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