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가볍게 생각하고 더 가볍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어제는 안중근의사의 서거일 이었다.
1910년 3월 26일.
마지막 순간까지도 의연하며 한결같았던 그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一喜一悲일희일비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시대.
잔잔한 시간 속에 묵상을 하다보니 많은 부분이 나를 흔들고 있고 난 거기에 반응을 보이는것 같아 맘이 좋지 않다.
미래를 기약할 수 시대이기에 나무만을 바라본다.
그래도 가본다.
수 없이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계획하고 가장 많이 실행하는 일...
17세기 스페인 예수회 사제였던 Baltasar Gracian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잠언집 중에서 일희 일비에 관한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세간의 변덕스러움에 휘둘리지 말라.
우주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주길 바라는 것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어리석은 사람이다.
선악의 판단은 모두 일시적인 변덕에 좌우된다.
누군가는 거절하는 것을 또 다른 누구는 열심히 추구한다.
사람은 비전을 갖고 멀리 내다보며 살아야 한다.
눈앞에 닥친 일에만 매달리고 눈앞의 이익만을 좇고, 당장의 어려움만을 모면하려 들면 반드시 가까운 장래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蘇東坡소동파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사람이 땅을 밟고 서 있을 때 발바닥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 이외의 모든 부분은 사용하지 않는 땅이나 그 땅을 버릴 수는 없다.
따라서 생각이 천리의 밖까지 있지 않으면 근심이 안석(앉을 때 몸을 기대는 방석) 밑에 있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상황에 따라 원칙 없이 대응하거나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정도를 걸으며, 원대한 자기 목표를 갖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살아가기를 바란다.
人無遠慮 必有近憂 인무원려 필유근우
- 論語 衛靈公篇 논어 위영공편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