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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r 31.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I 경기 반구정

여섯, 청백리 황희정승의 반구정

伴鷗亭반구정.

갈매기를 벗 삼아 여생을 보내는 정자.

갈매기는 백성의 상징이요 민심의 상징이다.

갈매기는 기미를 잘 아는 특징이 있어 누군가 갈매기에게 해할 마음을 품으면 절대 하강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바라보면 자유자재로 상승하강하며 장관을 이룬다.

문산의 임진강변에 자리하여 앞에는 널찍한 모래톱이 있다.

맑은 날 정자에 오르면 멀리 개성의 송악산을 볼 수 있다.

경기문화재자료 제12호.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것을 황희의 후손들이 복구하였고 1967년 6월 옛 모습으로 개축하였다.

영당 또한 한국전쟁 때 전소된 것을 1962년 후손들이 복원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에 前退전퇴는 개방되어 있으며, 측벽은 방화벽으로 되어 있는 겹처마의 맞배지붕이다.

기둥머리는 초익공의 공포형식이며, 단청이 단아하다.

내부에는 중앙에 감실을 두고 그 안에 영정을 모셨으며,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반자가 꾸며진 우물천장이다.

건물 주위에 직사각형의 담장이 둘러쳐져 있으며, 정면 입구에는 솟을삼문이 있다.


黃喜 황희.

본관 長水장수.

호 厖村방촌. 두터운 마을


1376년(우왕 2) 蔭補음보(부친의 벼슬이 정승에 오르면 장남에 한해 9품 벼슬 주는 것)로 福安宮錄事복안궁녹사가 되었다.

1389년 문과에 급제하고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들어가 은거했으나 이성계의 삼고초려로 벼슬길 나서 6조판서 역임, 영의정 등극한다.

1394년 세자의 스승인 우정자 취임.

1405년 지신사知申事. 지금의 대통령 대변인.

황희는 전하의 일을 신하에게 전하지도 신하의 일을 전하에게 전하지도 않는다.

1408년 셋째아들 충녕대군으로 세자가 바뀐다.

사상 초유의 사태가 나자 방촌은 경복궁 안마당에 거적을 깔고 머리를 풀었다.

이에 태종 이방원은 交河교하(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로 유배 보낸다.

방촌을 더 멀리 이배 하라는 상소가 빗발치자

1419년 남원으로 이배.

방촌은 廣通樓광통루라는 누각 짓고 안빈낙도한다.

이를 1434년 중건하였으며 후에 이 누각은 鄭麟趾정인지가 廣寒淸虛府광한청허부라 칭한 것에서 廣寒樓광한루라 부르게 되었다.

1422년 세종대왕이 남원을 찾아 삼고초려 하여 좌참찬, 우의정, 좌의정 거쳐 1931년 영의정에 이른다.

영의정 재위기간 18년.

안 해 본 벼슬이 없다.

조선 6백년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방촌의 집이 엄청 화려하다고 상소가 빗발치자 확인해 보니 청념 그 자체.

오히려 땅 5천 평 하사한다.

고려의 우왕, 창왕, 공양왕, 조선의 태조, 정종, 태종, 세종까지 7명의 왕을 모시고 나니 나이 87.

이제 공직을 떠나 당나귀 타고 고향 마을 정자에 앉아 시절을 읊는다.

1452년 구순의 나이로 숨을 거두자 세종은 翼成익성(큰 학문을 이룬 날개를 단 선비)이라는시호를 내렸다.

장남 황치신 우의정 등극.

차남 황수신 영의정 등극.

1455년 후학들이 십시일반하여 방촌의 낚시터에 정자 중건하고 현판을 걸었다.

반구정伴鷗亭.

갈매기와 놀며 여생을 보내는 집.

한국전쟁때 소실된것을 1962년 콘크리트로 대충 복원했다가 1998년 목조로 중건.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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