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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Apr 04.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 강원 낙산사

일곱. 關東八景관동팔경의 하나이며 觀音聖地관음성지, 洛山寺낙산사

襄陽양양, 해 뜨는 마을


영동고속도로에서 동해고속도로 바꿔 타고 북쪽으로 달리면 이내 대한민국 최고의 경승지 하조대가 나온다.

河趙臺하조대.

조선의 개국공신인 河崙하륜과 趙浚조준이 고려가 망해갈 즈음 여기서 깊은 고민을 하며 세월을 낚았다하여 하조대가 된다.

조금 더 올라가면 낙산비치 호텔이 보이고 뒤쪽으로 낙산사가 보인다.

설악의 줄기가 동쪽 바다로 잦아지는 끄트머리, 멀리 설악을 뒤로 하고 끝없이 너른 동해를 향해 선 오봉산의 품안에 자리 잡은 낙산사는 구구절절한 창건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낙산사.


1,300년 전인 신라 문무왕 때, 당나라에서 화엄 사상을 공부하던 중 그들의 신라 침공 계획을 눈치 채고 이를 알리러 급히 귀국한 애국승이자 후에 화엄종파의 큰 재목이 된 의상이 671년 창건했다고 알려진다.


의상은 동해변에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 양양의 해안 굴을 찾아왔다.

이레 동안 기도를 하다가 앉은 자리째로 물 위로 뛰어들었는데 팔부신중(불법을 수호하는 8종류의 신)이 나타나 그를 굴 속으로 안내하였다.

의상이 굴 속에서 예를 올리니 동해의 용이 나타나 여의주 한 알을 바치고 수정 염주 한 꾸러미가 내려오므로, 그것을 가지고 나왔다.

의상이 다시 이레 동안 기도를 하였더니 관음보살이 홀연히 나타나 이르기를,

“앉은 자리 위 꼭대기에 한 쌍의 대가 솟아날 것이니 그 자리에 불전을 지어라”

의상이 그 말을 듣고 나오니 과연 쌍죽이 땅에서 솟아나왔다.

이에 관음상을 빚어 모셨더니 그 대가 없어졌으므로 의상은 그제야 이곳에 진신이 거주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 절의 이름을 ‘낙산사’라 하고 수정 염주와 여의주를 성전에 모시게 되었다.


화엄종의 개조.

대한민국의 불교 종파는 공식 종파만 27개.

제일 큰 종파는 조계종.

화엄종은 수입 종파고 조계종은 국산이다.

1962년 조계종이 화엄종을 포함한 9개의 중요 종파를 통폐합한다.

그래 낙산사는 조계종이 된다.

깎아지른 절벽위에 의상대다.

1926년 만해 한용운이 낙산사에 머물 때 세운 것이다.

10년 뒤에 큰 폭풍우로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졌고, 1975년 지금의 모습으로 개축되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8호.

의 상 대
의상대 해돋이

셀카중인 관람객들로 넘쳐나는 저 멀리 기암괴석 사이로 구불구불 돌아가니 바다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홍련암이 보인다.

홍련암안에서는 불자들이 五體投地오체투지(양 무릎과 양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을 땅에 대고 절하는 거)에 바쁘다.

산 정상에 오르면 거대한 석불상이 자리잡고 있다.

1977년 700톤의 화강석으로 건립한 높이 16m의 海水觀音像해수관음상이다.

海水觀音像해수관음상

대한민국의 3대 관음성지는 동해의 낙산사, 서해의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

사시사철 꽃을 볼 수 있도록 절 마당에 정원을 꾸며놓은 정갈한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범종과 칠층석탑이 있다.

圓通寶殿원통보전
낙산사 7층석탑

1466년 오대산 상원사를 참배하고 나서 낙산사에 들렀던 세조의 명령으로 크게 중창.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또다시 허물어졌고, 한국전쟁 때에도 폐허가 되었다.

낙산사를 이루고 있는 원통보전과 범종각 들은 모두 1953년 이후에 복원되었다가

2005년 대화재로 圓通寶殿원통보전(원한 진리의 상징인 원으로 통하는 보배로운 큰 집으로 관세음보살을 모신다)을 포함한 14개 전각 다 소실된 후 2007년 완전 복원하였다.

2005년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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