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박물관을 지나다가.
외근으로 출장지에서 잠시 허준 박물관을 보며...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2동 26-5
1975년 MBC에서 방영된 이은성이 극본, 김무생이 주연한의학 드라마 집념.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다.
(극본을 썼던 작가 이은성은 나중에 이 대본을 바탕으로 소설 동의보감을 써서 대성공을 거뒀다.)
1991년 서인석 주연 드라마 동의보감 제작.
1999년에는 새로운 드라마가 제작되었다.
전광렬 주연의 드라마 허준. 36부작으로 끝낼 예정이었지만 폭발적인 인기 때문에 64부작으로 확대되었다.
(2009년 동의보감 유네스코에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
2013년 remake된 최완규 극본, 김주혁 주연 그라마 구암허준.
3번의 드라마 remake와 한번의 영화의 시작이된 이은성 극본 드라마 집념과 그의 소설 동의보감은 소설이라는 쟝르에서 보여주는 허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訛傳와전과 bubble에의한 믿음.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은 인본사상에 투철한 옛 의사들을 그리워하며 오늘의 의료현실을 개탄할 때마다 자주 거론하는 인물이다.
1990년 이은성의 소설동의보감은 이런 허준의 명성에 불멸의 신화를 부여했다.
불굴의 집념으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인간의지의 아름다움이며 또 타인의 불행한 운명을 동정하고 구원하는 인간애의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소설동의보감에서 사료의 고증에 적절한 사실은 허준이 서출이라는 것과 허준이 동의보감을 썼다는 것두 가지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소설동의보감은 그만큼 허구화가 많은 작품이다.
허준은 용천고을 사또의 아들로 평안도 용천에 살았던 일이 없다.
陽川許氏世譜 양천허씨세보를 보면 허준의 아버지 허륜은 용천부사를 지낸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평안도 용천군이 용천부로 승격한 것은 허륜도, 그의 아들 허준도 죽고 난 광해군 12년 (1620)이다.
따라서 이 용천부사라는 관직은 평원군 보국승록대부 라는 아들 허준의 후광때문에 사후에 추증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허준은 양천허씨 누대의 거주지인 경기 김포에서 태어나 등과하기 전까지 서울일원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허준의 선대는 대대로 중부지방에 거주했는데 할아버지 許琨허곤이 경상우수사를 지냈고, 그 할머니가 진주유씨인 점에 근거해 허준이 어렸을 때 산청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에 柳義泰유의태라는 神醫신의가 있었는데, 그가 허준의 스승이라고 하는데 산청에서 태어난 劉以泰유이태는 숙종 대에 활동한 다른 사람이다.
거창유씨인 그는 1652년(효종3)에 태어나 痲疹篇마진편을 지은 100년 뒤 사람이다.
허준을 내의원 의원으로 천거한 것은 유희춘이다.
1569년(선조2) 윤6월에 유희춘은 이조판서 홍담에게 허준을 내의원 의원으로 추천한 것이다.
어의 楊禮壽양예수를 소개해 준 것도 유희춘이다.
허준의 실제 스승은 소설동의보감에서 사사건건 허준을 괴롭힌 양예수다.
등과 전의 사제관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29살에 등과한 이후 허준은 줄곧 양예수를 수행하며 의술을 배웠고, 박찬국의 연구(1991)가 말해 주듯이 허준의 동의보감은 양예수의 도움으로 쓰여진 것이다.
장한웅의 제자로 도교의 영향 을 깊이 받은 실제의 양예수가 소설 속의 악랄한 출세 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존경받은 의사요 인격자였음은 劉在建유재건이 지은 里鄕見聞錄이향견문록에 나오는 양예수의 설화에서도 알 수 있다.
유의태가 양예수와 겨루어 이겼다는 구침지희九鍼之戱.
구침지희 자체가 전설과 설화에서 기인한다.
화타는 마불산이라는 마취제를 만들어 병자에게 술에 타서 먹인 후 개복과 뇌수술까지 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九鍼之戱구침지희는 九鍼구침(아흡개의 침)을 가지고 침술을 겨루는 것으로 그 연원은 후한 시대의 명의 화타에게서 비롯된다.
살아 있는 닭의 몸에 침머리가 보이지 않도록 구침을 찔러넣어 닭이 아파하거나 죽어서는 안되는 침술 경지를 제자들에게 시범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그건 닭의 내장과 근육등 각 기능을 거울 들여다보듯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경지로 다섯침까지가 범의, 여섯침이 교의, 일곱 침이 명의로, 명의의 경지에 이르러야 제자들로 하여금 병자를 보게 했으며, 여덟번째침은 대의, 마지막 아홉침을 다 쓸 수 있으면 침 하나로 모든 병을 다 볼 수 있는 태의라 하는 것이다.
침술연마의 수단으로 삼았던 구침지희는 항간의 재주없는자들까지도 자기의 침술을 과대선전하고자 걸핏하면 닭에게 침을 놓는 재주겨루기로 타락했고 특히 화타보다 한 시대 앞이었던 창공(본명이 순우의로 신선계 의술의 대가)의 의술을 좇는 쪽과는 서로의 명예를 걸어 목숨을 건 내기의 수단으로 타락한 채 남아 있는 무서운 놀이이기도 했다.
東醫寶鑑동의보감
동의보감이 우수한 이유를 이야기하는건 보편타당한이 아닌 한국적 특성에 적합한 이라는것이다.
Local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에 적합한 유일한 의서라는것이 이 책이 우수하다는 내용이고 자부심 또한 여기서 기인한다.
동의보감에 기록된 처방이 한국적 특수성에 의거하지 않는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이 책을 보았다고 한다.
특히 王如尊왕여존의 동의보감 초록에서 씌여진 동의보감의 우수성에 관한 이야기를 그 이유로 인용하고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보편성을 띠고 있는 책이지 우리만의 풍토에 맞는 우리만의 처방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중국 한의사들이 이 책을 보았을까.
실제로 한반도, 만주지역, 중국북경 유역의 생물자원은 얼마나 같고 다른가......
北魏북위의 賈思勰가사협이 쓴 齊民要術제민요술(530-550)에 나오는 식물들은 한반도와 다를 바가 거의 없다.
明명의 李時珍이시진이 쓴 本草綱目본초강목(1590).
놀랍게도 동의보감(1610)은 본초강목과 그 내용이 거의 일치 한다.
당연히 지역적 특성에 촛점이 맞추어진 우리만의 의서가 아니라는 의미다.
동의보감이 뛰어난건 편집방법에 있다.
출전을 없앰으로써 독자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약재명이나 처방을 빨리 찾아볼 수 있게 정리하였다.
보기 쉽게 만든 책 탓으로 유명해진 것이고, 여기에 힘입어 신화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의 상식이나 신화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진실과 거리가 멀 때가 많다.
물론 이런 사실들이 허준의 휴머니즘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허준에 대한 민중들의 고마움은 韓國口碑文學大系 한국구비문학대계 곳곳의 허준설화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민중에 대한 진료가 허준 개인의 결단만은 아니라는 것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어의인 허준이 가난한 민중들의 질병을 치료한 일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 인구의 감소와 민심의 동요를 국가적인 의료시혜로 보상하고자 했던 선조의 명령을 수행한 것이었다.
1596년 「동의보감」을 편찬하라는 어지,
1601년 백성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상실된 의서들을 언해본으로 재간하라는 어지.
의사로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간으로서 구암 허준은 훌륭한 인물이었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의학의 혜택을 미치게 한 공은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 느끼는 정도의 인물로서 홀로 군계일학이라기보다는 양예수, 이명원, 정작처럼 서출인 허준을 돌보고 격려하며 人臣 인신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했던 그를 감싸고 있는 시대의 영광, 그 시대의 위대함에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