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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y 11. 2016

육지것의 제주인문이야기 III 제주의 비경 이시돌목장

쉰셋. 이국적인 목장과 fantastic 촬영지, 성 이시돌 목장

제주도에도 거대한 양때 목장이 있었다.

유명한 성이시돌목장이 바로 그곳이다.

1970년대만 해도 성이시돌목장의 목장에는 수만 마리의 면양이 풀을 뜯었지만 축산업의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양떼들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이제 성 이시돌목장에서는 젖소와 한우, 그리고 경주마를 기르고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25세에 사제서품을 받은 아일랜드 출신  P.J.Macglinchey 맥그린치 신부는 첫 선교지로 한국으로 보내졌고 1년이 지나며 다시 제주로 옮겨가게 되었다.

환상적인 첫인상의 꿈은 43항쟁과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주민을 바라보며 산산히 부서졌다.

중산간 지대에 있는 부임지, 한림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처음부터 성당이란 것은 없었다.


돼지 신부님


맥그린치 신부는 외부인에게 퉁명스러운 제주사람들의 속마음을 보았고 그 어느 지역에서 만난 이들보다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신부는 고국의 가족과 친지, 교회, 독일 천주교 주교단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고 그들이 보내준 돈으로 우선 땅과 돼지를 사서 길렀고 불어나자 1959년 4H 클럽을 만들어 회원들에게 양돈기술을 가르치고 1년 뒤 2배수의 種豚종돈으로 갚는 조건으로 돼지를 분양했다.

이어 사방에서 놀고 있는 땅을 목축이라는 방향으로 활용할것을 생각했다.

본국에서 목초를 심어 소를 키우는 실패한 목축을 제주에 적용할 수 없었던 일제에 의해 바닷가 근처의 땅은 버려져 있었다.

그가 본 제주도는 영국의 지배에 시달렸던 조국 아일랜드와 많이 닮아 있었고 자신의 조국이 독립 후 축산업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해 성공한 사례는 제주도에서도 가능해 보였다.

유명한 수의사였던 아버지와 집에서 경영한 목장에서 배운 기술로 버려진 풀밭을 사제복을 걷어 붙이고 주민들과 개간한 뒤 소와 양을 키웠다.

1961년 11월, 제주 이시돌 목장은 그렇게 출발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주민들이 기른 돼지가 1만 마리를 넘어서자 주민들이 마음 놓고 가축생산에 집중하기 위해 販路판로문제를 해결하려고 직접 일본, 홍콩 등지로 나가 발로 뛰며 수출길을 열었다.

이시돌 목장의 수익금으로 양로원, 요양원, 병원, 호스피스 복지원과 어린이집, 유치원을 세워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st. Isidore 성 이시돌 목장

파릇파릇 초록 융단이 펼쳐진 들판, 새파란 하늘 위로 흰 뭉게구름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풍경이 낯설면서도 신비롭다.

이 곳에서는 누구나 모델이 되며 사진 작가가 된다.

초원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말이 이색적이다.

이제는 양떼를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으로도 충분히 풍경화가 된다.

엄청난 크기의 트럭이 산더미처럼 쌓인 건초더미를 쉴 새 없이 나르고 있었고,

펜스를 두른 목초지 안에서는 태어난지 1년 안팎의 어린 말들이 떼지어 이리저리 내달리고…

흰색 울타리의 목초지 사잇길을 따라 산책을 하다보면 말들이 내뿜는 거친 숨소리와 울음소리를 지나 내년 봄 출산을 앞둔 말들이 모여 있는 초지가 나온다.

망아지들과는 달리 평온한 분위기로 풀을 뜯는 씨암말들은 더없이 우아하다.

목장을 가로지르는 삼나무길 너머로는 목장길 끄트머리에 이곳의 랜드마크 건물이 있다.


Ctesiphon 테쉬폰

; sign에는 Cteshphon으로 적혀 있지만 오타인듯 하다.

오타를 미디어에서도 그대로 사용하다보니 국내에서만 검색이 되고 해외 포털에서는 검색이 안된다.

실제 건축 양식 명칭도 Ctesiphon이 맞다.

성이시돌목장에서 가장 유명한 촬영지다.

사진 동호인들이나 일반 여행자들도 테쉬폰을 많이 찾는다.

낡고 허름하지만 사진 속에선 무척이나 근사하고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날씨 좋은 날엔 어떻게 찍어도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기대보다 실망스러울 수 있으니 날이 좋지 않을 때에는 마음을 비우고 가는 것이 좋다.

이곳은 목장을 설립할 때 숙소로 이용하다 이후 돈사나 사료공장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Ctesiphon은  B.C. 2세기 중엽 이라크 바그다드 남동쪽 약 40km지점에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수도의 왕궁으로 사용되는 건축물로 현대에는 빠른 공기가 필요한 건축물에 적용되는 형태를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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