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것의 제주인문이야기 II 가슴 아픈 제주, 별방진

그 아련함과 살아감 다섯, 하도리 별방진

by Architect Y

제주의 성(城), 구좌읍 하도리의 별방진


세화해안, 해안도로를 따라가다보면 바로 왼쪽 편에 시커멓고 커다랗고 긴 돌 담이 나타난다.

이게 무엇일까?

쉽게 안내문을 찾을 수 없다.

큰 돌담(?) 뒷편에 있는 계단도 있고 버스정류장 안내판에서 멀리 떨어 진 곳에 표지석이 있다.

그곳에 검은 돌판에 적힌 글 別防鎭별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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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방진이 지닌 슬픈 역사


표지석에 따르면, 별방진은 제주특별자치 기념물 제24호(지정일 1973 년 04월 03일자)다.

별방진이 있는 정확한 지명은 소재지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조선시대 군사적인 요충지에 설치된 진(鎭)에는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 기 위하여 성곽이 축조되었다.

별방진은 1510년(중종 5년) 목사(牧使) 장림이 왜선의 정박지가 근처 의 우도(牛島)에 있기 때문에 김녕 방호소를 이곳으로 옮겨 별방이라 이름하였다.

진을 둘러싸고 있는 전성은 지형적으로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타원형 성곽이다.

성안에는 각종 관사(館舍), 창고와 샘이 2곳에 있었다.

성 곽의 규모는 둘레가 1,008m 높이는 4m 정도였다. 동서남쪽의 3곳에 문이 있고, 옹성(甕城) 3개소, 치성(雉城) 7개소가 있다.


축성때 흉년이 들어서 부역하는 장정들이 인분(人糞)가지 먹어가며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쉽게 말해 부역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똥까지 먹었다는 이야기다.

가뜩이나 척박한 땅에서 커다란 돌덩이를 쌓으면서 고된 부역을 했을 고 난함을 생각하면, 쉽게 별방진에 못오를 듯하다.

이곳 별방진이 지닌 슬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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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좌읍 하도리는 옛 지명이 별방이며, 서문리는 별방의 서문 안에 있었 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특히 제주도는 고려 때부터 동부와 서부 해안에 석성을 쌓아 군인들을 주둔시켜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는 데, 화북진, 조천진, 별방진, 애월진 , 명월진, 차귀진, 모슬진, 서귀진, 수 산진 등 9진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 별방진이 잘 보존된 석성의 하 나로 성을 쌓은 기법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산이라고 한다.


아름다움 뒤에 슬픔 간직한 제주...

이젠 더이상 아프지 말기를!


제주의 탄생신화부터 시작해 최근 근현대사까지 제주가 겪은 고통의 시간은 적지 않다.

제주민이 가진 원죄이자 숨기고픈 치부일 수 있겠다 . 하늘이 내려주신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이어오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모쪼록 이젠 더 이상 제주 섬에서 아픈 역사가 만 들어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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