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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Jul 01. 2016

不亦快哉 불역쾌재... 장마비속에

;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비가 온다.

장맛비가 시원스레 쏟아지고 있다.

두서넛이 모여 술 한잔에 인생을 기울이기도 하고 기름진 전 한쪽에 세월을 낚기도 한다.


다산은 더위를 없애는 여덟 가지 일(消暑八事소서팔사)중에서 비가오는 날에 시를 짓는다 했다(雨日射韻 우일사운).

비오는 날 눅눅한 기운에 지인들과 둘러앉아 시를 지으며 더위를 잊었다는 내용이다.

오늘은 비가 좋고 밤이 좋아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배경삼아 시원스런 싯구를 읖조려 본다.


淸청, 김성탄이 벗과 함께 여름철 여행을 나섰다가 장마 비에 발이 묶여 며칠 여관 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

심심한 궁리 끝에 두 사람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을 연상하여, 문장의 맨 마지막을 不亦快哉불역쾌재(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란 말로 맺는글짓기 시합을 했다. 

동양에선 비가와 발이 묶이면 무료함을 이렇게 멋지게 승화시켰다.

그때 나온 것이 유명한 快說쾌설이란 36칙의 문장이다.

不亦快哉三十三則 불역쾌재삼십삼칙

그 중 일부를 열어보면…


忽然大黑車軸 疾澍澎湃之聲 홀연대흑차축 질주팽배지성

如數百萬金鼓 檐溜浩于瀑布 여수백만금고 첨류호우폭포 

身汗頓收 地燥如掃 신한돈수 지조여소 

蒼蠅盡去 飯便得吃 창승진거 반편득흘

不亦快哉 불역쾌재!


갑자기 캄캄해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콸콸 넘치는 소리는 마치 수백만의 나팔과 북이 일제히 둥둥 울리는 것 같았다. 

처마의 낙숫물도 흡사 폭포와 같이 쏟아졌다.

전신에 흐르던 땀은 금세 사라지고 달아올랐던 대지도 씻은 듯 시원해졌다. 

쉬파리도 간데 없었다. 

밥도 다시 먹을 수 있었다.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다산 선생은 불역쾌재행이라는 시로 이 김성탄의 쾌설을 패러디 한다.


활짝 펼친 운전지에 醉中詩가 더디더니    

수풀도 잔뜩 흐려 빗방울이 후두둑.         

서까래 같은 붓을 움켜 쥐고 일어나         

낚아채듯 휘두르니 먹물이 뚝뚝.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不亦快哉行 불역쾌재행 중

-丁若鏞 정약용

雲牋闊展醉吟遲 운전활전취음지

草樹陰濃雨滴時 초수음농우적시

起把如椽盈握筆 기파여연영악필

沛然揮洒墨淋漓 패연휘쇄묵림리

不亦快哉 불역쾌재


거나하게 술이 취해 詩興시흥이 솟구친다. 

종이를 활짝 펼쳐 놓고 먹을 간다. 

하늘이 잔뜩 흐렸다. 

비라도 한바탕 쏟아질 모양이다. 

툭 건드리면 비를 쏟아낼 듯한 하늘은 머뭇머뭇 좀체 빗방울을 떨구지 못한다. 

단숨에 써질 것 같던 내 詩想도 덩달아 꽉 막혀 버렸다. 

공연히 수염을 배배 꼬며 붓방아만 찧고 있어 답답하다. 

그러다 마른 번개가 허공을 가르고 지나더니 그예 하늘은 한바탕 소나기를 시원스레 쏟아 놓는다. 

제 배포껏 풀어놓는 굵은 빗줄기를 보다가 나는 도연히 솟구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큰 붓에 먹물을 듬뿍 찍는다. 

거침없이 휘두르는 붓질의 아래 위로 후두둑 먹물이 떨어진다. 

거나하게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기운 좋은 시, 장쾌한 글씨에 십년 묵은 체증이 단번에 내려간다. 

아! 통쾌하다.


모두 20수의 연작 가운데 하나이다.

빗소리 좋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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