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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Jun 24. 2016

일반인문 LXIX 宗敎 종교 religion 03

자아성찰에서 성스러움의 Aura아우라로의 불교 2/4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크게 

苦고(상은 여러 가지 괴로움으로 가득찬다), 

集집(괴로움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가를 밝히는 것으로 고의 원인에 대한 설명), 

滅멸(고통의 원인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인간의 고통원인이 스스로의 무명에의 생긴것이므로 무명을 멸함으로써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다), 

道도(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방법으로 올바른 견해의 정견正見에서 올바른 집, 명상을 가리키는 정정正定까지 여덟단계,八正道)의 네 가지 거룩한 진리 四聖諦사성제와 三法印삼법인으로 요약할 수 있다. 

四聖諦 사성제
三法印 삼법인

삼법인은 세 가지 진리의 징표인데 불교의 핵심적인 세계관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변한다는 諸行無常 제행무상

영원하지 않는 것이므로 모든 것은 고통이라는 一切皆苦 일체개고

모든 것은 인연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 속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는 없다는 諸法無我 제법무아가 바로 그것이다. 

제법무아에 따르면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인 Brahman브라만과 개체 내면의 불변의 실재인 ātman아트만은 부정될 수밖에 없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상당히 많은 지지를 얻었지만 인도의 전 지역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으나 인도 최초의 통일왕국인  Maurya dynasty 마우리아왕조의 제3대 왕인 Ashoka the Great 아소카왕(기원전 3세기)에 이르러 국가의 지배이념으로 채택된다. 

아소카왕에 의해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불교는 인도 전역은 물론이고 서쪽의 로마,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각국으로 전파되었고 그 뒤에 중국으로도 전래되었다.


중국전례와 Mahāyāna 마하야나(大乘대승) Hīnayāna히나야나 (小乘소승) 불교


중국으로의 전래는 의견이 분분하다.

진시황 시절에 이미 인도에서 불교 승려들이 중국에 왔다는 설도 있고, 한나라 무제 때 서역으로 대장정을 떠나 로마까지 다녀왔던 위대한 탐험가 張騫장건이 불교에 대해 보고함으로써 불교가 소개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역사적인 근거는 희박하다.

장건출사서역벽화모본

BCE 1세기 중반에서 CE 1세기 중반 사이에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들어온 중앙아시아의 불교인들에게 의해 전래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불교 전래 초기에는 주로 소승불교의 경전들이 번역되었지만 후대로 갈수록 대승불교의 경전들이 더 환영을 받았다.

대승북교 vs 소승불교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 500년 정도가 지난 CE 1∼2세기 전후부터 불교 내부에서는 일종의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다. 

석가모니 당시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보수적인 장로집단에서는 계율과 청정수행을 통해 nirvāna 涅槃열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강조했다. 

이렇게 개인적인 해탈을 중시한 나머지 일반인들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기가 어려웠고 점차 대중성을 잃어갔다. 

당시는 원시적 Brahmanism(婆羅門敎브라만교)을 대중적 차원에서 새롭게 재구성한 힌두교가 민중들의 지지를 서서히 얻어갈 때다. 

이에 혁신적인 승려집단과 재가 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났다. 

그들은 기존의 불교는 혼자의 해탈을 추구하는 작은 수레의 불교라고 폄하하고 자신들의 불교를 수많은 중생들과 더불어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큰 수레의 불교라고 불렀다.


bodhisattva 보디사트바(菩薩보살;깨달은 중생)는 불교 대중화운동의 핵심개념으로 이미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 속에 머물면서 모든 중생을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사람을 가리킨다. 

미륵 보살상

이것은 혼자만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당시 불교의 폐단을 개혁하기 위해서 새롭게 만들어낸 이상적 수행자상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운동과 아울러 기존의 불교사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사상개혁운동도 펼쳤다. 

불교도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空공 사상을 바탕으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을 것을 강조하는 中觀중관 사상이 초기의 중요한 사상으로 등장했고 중기에는 삼라만상은 모두 오로지 마음의 투영임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심리구조를 치밀하게 탐구하는 唯識유식 사상이 나타났다.

후기에는 모든 중생들에게는 불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如來藏여래장 사상등이 전개되었다. 


대중적이고 보편화된 변화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모든 존재에 불성이 있다는 말은 실로 희망의 메시지로 작용하여 불교의 확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퇴보한 측면도 있다.

후기로 올수록 붓다와 보살을 초인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숭배하는 성향이 점차 강해진다는 것이다. 

(붓다는 깨달은 자, 해탈한 자를 의미했지만 대승불교에 와서는 고통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구세주의 개념이 더해진다) 

그래 역사적 실존인물인 석가모니 붓다 외에 아미타불, 약사불, 미륵불 등 수많은 새로운 붓다가 대거 등장한다. 

이념을 구현하려는 실천적 개념이었던 보살 위에 여러 가지 신화적 색채가 더해지면서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등의 구세주적인 보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중들은 이런 붓다와 보살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祈福기복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스스로 등불을 밝히기를 강조했던 석가모니의 원래의 뜻을 퇴색시키는 것이고, 인도 내에서는 힌두교와의 차별성을 약화시켜 오히려 불교가 힌두교에 흡수되는데 일조를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일반 민중들을 끌 수 있는 종교적 흡인력을 강화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祈福 기복

자국문화에 유독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중국은 조금 달랐다. 

당시 한나라의 전성기 였던 중국은  유교적 사상이 지배하고 있는터라 대승, 소승을 가리지 않고 지식인들에게조차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나 한나라가 그 국운을 다하면서 유학의 지위는 흔들렸고 우리에게 익숙한 위,오,촉 삼국으로 분열된 대륙은 전쟁에 휘말리고 잠간의 통일, 북방유목민의 중원장악등 혼란에 빠졌다.

이에 난세의 철학인 도가사상이 중원을 잠식하게 된다.

당연히 그 사이 불교의 세 역시 조금씩 성장하며 크기를 늘려갔다.


위진시대로부터 계속된 혼란은 남북조시대에도 계속되어 4세기 초 남쪽으로 내려온 東晋동진은 100년 남짓 정권을 유지했으나, 그 뒤 계속 이어진 宋송, 齊제, 梁양, 陣진의 수명은 각기 60년, 24년, 55년, 33년, 황제의 재위 기간도 평균 6∼7년 남짓이며, 절반 이상의 황제들이 피살당했다. 

북조 또한 5호 16국이라는 수많은 나라들이 명멸했다. 


기세가 꺾인 유교는 물론이고 도교 또한 사회를 통합하고 지친 백성들에게 위안을 주는데 한계가 있는 상황 속에서 불교는 인간의 삶을 고통의 바다로 간주하고 죽어서 왕생극락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거나 해탈 열반하기 위해 진지하게 구도하는 경건한 종교적 태도는 유교에는 물론이거니와 도교에서도 볼 수 없는 신선한 사상으로 지배층이나 민중들에게 모두 크게 환영을 받으며 크게 성장하게된다.

대승불교의 경전에 나오는 수많은 부처와 보살들은 고통에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휴식처를 제공하고, 나아가 망자들의 명복을 빌며 남은 자들의 슬픔을 달래는 데도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남북조시대에 들어 불경의 번역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되고 한족 승려가 나오기 시작했고 모든 황제가 다 불교를 선호했던 것은 아니지만 황제의 비호 아래 사원의 건축과 불상의 조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인 불교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이 흐름은 북송 중기 신유학이 부흥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도교와 유교의 반발 또한 만만치가 않았지만 전체적인 대세는 불교를 옹호하는 쪽이었다.

Nalanda 나란다 대학

북송 중기 신유학이 부흥하기 전까지 7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불교에 대한 중국인들의 열망은 엄청나 수많은 중국인들이 불경을 얻고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죽음의 사막을 건너고 험준한 산맥을 넘어야 하는 최악의 자연조건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인도로 유학했다.

당 태종 때 중국 역대 최고의 불경 번역가로 칭송받고 있는 玄奬法師현장법사는 국법을 어기고 인도로 가서 당시 최고의 불교대학이자 학문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Nalanda 나란다 대학에서 십여 년 동안 공부하고 귀국길에 수많은 경전을 중국으로 가지고 와서 황제의 보살핌 아래 번역사업을 펼쳤다. 

사대기서의 하나이자 중국 최고의 神魔小說신마소설로, 손오공과 저팔계 등의 독특한 캐릭터로 인해 어린이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西遊記서유기는 그가 남긴 大唐三藏法師西域記 대당삼장법사서역기에 대의 이야기꾼들에 의해 살이 붙여져 탄생한것이다.

이는 바로 중국인들의 불교에 대한 열정의 결과가 낳은 산물이다. 

西遊記 서유기

어느 한 지역의 종교나 사상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될 때는 자연스럽게 그 지역 고유의 종교나 사상과 충돌하면서 그 지역의 특색에 맞게끔 변형되기 마련이다. 

불교 또한 중국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중국 고유의 사상인 유교나 도교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교류하는 가운데 중국적인 불교로 변모되어갔다. 

특히 초기에는 불경의 번역 과정에서 유교와 도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다음에 중국불교의 변역과 결과가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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