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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Jul 17. 2016

일반인문 LXX 宗敎 종교 religion 03 불교

자아성찰에서 성스러움의 Aura아우라로의 불교 3/4

중국으로 전래된 불교는 유학이 이에 영향을 미친다.


불교도 다른 종교들처럼 계율이 있는데 초기 번역 과정에서 불교의 계율은 유교의 아랫사람이 지켜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인 孝順효순으로 번역되기도 했고 五戒오계(不殺生,不偸盜,不邪婬,不妄語,不飮酒)가 유교의 덕목인 五常오상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억지로 끼어 맞추면 

살생하지 마라는 仁인에, 

도둑질하지 마라는 義의에, 

음행을 하지 마라는 禮예에, 

거짓말을 하지 마라는 信신에, 

술을 마시지 마라는 智지에 해당시킬 수 있겠지만 오계와 오상은 사실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친숙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이런 식의 번역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밖에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높게 나타나는 불경에서 남편이 아내를 돕는다는 남편이 아내를 다스린다로, 아내가 남편을 편안하게 했다는 아내가 남편을 공경했다 등으로 번역되었다. 

이것 또한 유교적 윤리를 의식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佛陀在婆罗双树間進入涅槃 부타재바라쌍수간진입열반

하지만 불교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세속을 초월하는 정신적 자유를 추구했던 도가사상이다. 

유교가 주로 윤리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미친 반면 도가사상은 핵심적인 개념을 번역하는 데 많이 차용되었다. 

모든 번뇌의 불을 끈 상태를 말하는 니르바나(Nirvana 涅槃)를 無爲무위로, 최고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말하는 아라한(Arhat 阿羅漢)을 眞人진인으로, 깨달음을 의미하는 보디나 가르침을 의미하는 다르마(dharma 達摩)를 道도로 번역한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본래 중국에 있던 용어를 가져와서 뜻에 짜 맞추었던 불교를 흔히 格義佛敎격의불교라고 한다. 

격의불교에는 특히 도가적인 용어와 개념을 차용한 부분이 많은데 이것은 중국의 불교가 처음부터 도가사상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해준다. 

空思想공사상을 위주로 하는 초기 대승불교의 般若思想반야사상은 위진시대에 유행하던 虛無思想허무사상을 위주로 하는 도가사상과 서로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위진시대의 도가사상은 흔히 현묘한 학문이라는 뜻의 玄學현학으로 불렸는데, 당시의 사상가들 가운데서는 반야학과 현학이 거의 차이가 없다고 여기거나 심지어는 반야학이 현학의 조수가 될 수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사실 반야학과 현학은 기본적인 개념과 지향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초기 불교로서는 중국에 적응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릴 만하지는 못했다.


禪宗선종

; 禪선은 깊은 명상을 가리키는 산크리스트어 dhyāna 디야나의 발음에서 따온 말이다.

梵魚寺 禪宗永嘉集 범어사 선종영가집

석가모니가 영산에서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설법했을 때 설법 도중 말을 멈추고 가만히 연꽃을 들어 사람들에게 보였지만 아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때 摩訶迦葉 마하가섭(Mahākāśyapa)만이 그 뜻을 이해하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拈花微笑염화미소)고 한다. 

그래 기억력이 뛰어난 시자, 阿難陀아난다에 의해 남겨지지 않은 가르침은 꽃이나 미소를 통해 마하가섭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不立文字불립문자(문자를 세우지 않는)의 가르침이요, 

敎外別傳교외별전(경전 밖에 따로 전한)의 가르침이요, 

以心傳心이심전심(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의 가르침이다. 

Mahākāśyapa

마하가섭에게 전해진 선의 등불은 계속 이어져 28조인 菩提達磨보리달마(깨달음과 법)에 이르러 마침내 중국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달마대사라고 불리는 승려다.

염화미소의 전설과 서역 28조의 傳法說전법설은 인도의 어떤 문헌에도 없고 중국 선종의 초기 문헌에도 보이지 않는다. 

남북조시대 때 서역에서 온 보리달마라는 이름을 가진 승려에 대한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낙양의 아름다운 불탑을 보고 경탄해마지 않는 매우 경건한 승려이거나, 楞伽經능가경이라고 하는 불경 가운데서 무척 까다로운 경전에 통달하고 二入四行이입사행(선정에 드는 두 가지 길과 네 가지 행동)이라고 하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수련법을 강조한 승려로, 선종의 보리달마와는 그 성격이나 행적이 판이하게 다르다. 

보리달마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후대 선종이 득세하게 되면서 선종을 상징하는 인물로 추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설을 꾸며낸 것이라고 보면 된다.

선종은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점차 인도적인 색채를 벗어던지고 중국적인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 출발점은 바로 不立文字불립문자다.


不立文字불립문자(언어나 문자를 매개로 하는 이론보다 진리의 체험적 직관을 중시한다는 것)는 선종의 종지宗旨(宗門종문의 敎義교의의 취지)다.

선종 이전의 종파들이 주로 경전을 중심으로 발전한 것이라면 선종은 그런 외적 형식보다는 실제적인 참선 수행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경전은 번역 과정에서 어느 정도 중국화의 영향을 면할 수는 없지만 그런 대로 인도적인 취향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선종은 이런 경전의 권위를 부정함으로써 인도적인 취향으로부터 더욱 멀어져 중국 특유의 개성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불립문자는 노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비상도(도를 도라고 하면 항상의 도가 아니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지자불언 언자부지(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 道德經 도덕경


깨달음을 표현할 때 언어와 문자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노장사상만의 특징은 아니다. 

전 세계의 모든 깨달은 이들은 그와 유사한 견해를 밝혔으나 노자나 장자처럼 그렇게 강력하게 언어와 문자의 한계를 주장하지는 않았고 선종은 노장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강력하게 불립문자와 이심전심을 강조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처음에는 인도의 종교성에 매료되어 불경에 심취했으나 점차 주체적인 수용을 강조하게 되면서 중국적인 시적 언어와 직관적 언어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불법의 참뜻을 십이연기, 팔정도, 보살의 열 가지 단계 등으로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시적 직관과 함축성이 풍부한 禪問答선문답을 통해 이해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어느 선사가 趙州禪師조주선사에게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말은 불법의 참뜻이 무엇이냐는 뜻이다. 

그때 조주선사는 "뜰 앞의 잣나무니라"라고 답했다. 

이런 식의 간단하면서도 함축적인 답변은 인도의 경전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다.

趙州錄 喫茶去 조주록 딱가거

초기에 불교를 수용했던 사람들은 인도불교의 방대한 체계에 감탄했지만 점차 시간이 흘러갈수록 자신의 전통을 찾아가면서 단도직입을 중시하게 되는데 선종에서 북종과 남종으로 갈라지는 것도 바로 이 문제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다. 

북종의 神秀신수 계열이 점진적인 수행을 강조하는 데 비해 남종의 慧能혜능 계열은 단박에 깨치는 것을 강조했다. 

초기에는 북종이 훨씬 우세했고 남종이 열세를 면치 못했으나 결국에는 남종선이 대세를 장악했고 북종선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선종은 후대로 갈수록 더욱 더 즉시에 깨치는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수도의 방법을 보면 전통적으로 인도인들은 논리적 체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수행 방법 기도와 호흡, 명상, 경전 읽기, 보시행 등 다양한 방법과 과정을 요구하며 장황하고도 복잡한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선종에서는 번잡한 단계나 방편 없이 한 마음 돌이켜서 자신의 本來面目본래면목(사람마다 갖추어 있는 심성)을 바로 깨치면 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존재의 본질에 대한 전체적이고도 즉각적인 자각을 중시한다. 

단번에 깨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한순간에 통찰을 얻는 것이다.

이렇게 한순간에 통찰을 얻기 위한 수도 방법으로 선종에는 默照禪묵조선(망상과 잡념을 없애고 고요히 앉아서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선)과 看話禪간화선(화두를 듣고 좌선을 하는 일)이 있다. 

선사들은 제자들의 경지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언어도단의 길을 유도하기 위해 간혹 갑자기 윽박지르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몽둥이로 때리는 극단적인 방법도 사용했다. 

생각지 못한 기습적인 상황에서 기존의 습관적인 사유방식이나 지각방식이 무너지고 인식의 급작스러운 비약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사들의 전기를 보면 깨달음을 간절히 구하기 위해 스승에게 질문을 했다가 뺨을 맞고서는 갑자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이를 본 스승이 미소를 지으면서 깨달음을 인가하는 황당한 장면들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 속에는 바로 이런 선의 메커니즘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 덧붙임) 달마대사

菩提達磨

달마대사는 남조시대의 양나라 때 중국의 남쪽, 지금의 광동성을 통해 중국으로 와서 당시 불교에 심취해 전국에 수많은 사찰을 짓고 승려들에게 보시를 했던 양 무제와 만났다고 한다.

그 일화는…

무제는 달마에게 자신이 불교를 위해 수많은 일을 했는데 어떤 공덕이 있냐고 물었고 기대와는 달리 달마는 전혀 없다고 답하자 무제는 성스러운 가르침의 근본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달마는 텅 비어 성스러운 것이 없다고 답하니 기가 찬 무제가 도대체 당신은 누구냐고 묻자 달마는 모른다고 답했다. 

멍하니 있는 무제를 뒤로 하고 달마는 갈댓잎 하나에 몸을 싣고 장강을 건너 숭산의 소림사의 한 동굴에서 9년 동안 벽만 바라보고 참선했다고 한다.(;九年面壁구년면벽)

뒤에 구도심에 가득한 慧可혜가라는 사람이 찾아왔는데 달마가 벽만 바라보고 응답을 하지 않자 자신의 팔을 잘라가며 가르침을 구했고 그는 달마에게 자신의 마음이 불안하니 편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달마는 먼저 그 불안한 마음을 보여달라고 했고 혜가는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달마는 이미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고 했다. 

보통 사람이 듣기에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지만, 혜가는 이 말에 크게 깨쳐 마침내 달마의 법을 이어 중국의 2대 조사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염화미소나 달마에 대한 이야기들은 거의 대부분 후대에 꾸며진 것으로 신빙성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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