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할 수 없음
앞으로 이틀간이 폭염의 절정이라고 한다.
끝날것 같지 않은 더위는 시간이라는 문제 앞에 서서히 숙여간다.
새벽시간에 내내 한가지 생각에 사로 잡힌다.
휴가지에서 돌아오며 보딩브릿지가 아닌 셔틀로 청사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 짧은 시간의 이동에 남을 생각 안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다리를 꼬는 노인을 보고 내 미래를 걱정했다.
쉼이라는 이야기를 놓고 본인의 뜻을 굽히지 않는 매형의 모습에서 나의 생각의 집착을 걱정한다.
나이가 먹어가며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이 성하의 폭염처럼 막무가내인적은 없는지...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며 편협해진다지만 최대한 스스로에게 묻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莫無可奈막무가내.
한번 고집하면 융통성이 없어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戰國전국 秦진이 날로 강성해지자 燕연 태자 丹단은 근심했다.
연나라는 약소국인데다 여러 차례 병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였다.
太傅태부 鞠武국무와 의논하여 진왕을 죽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추천받은 이가 荊軻형가였다.
형가가 태자에게 말했다.
'지금 진나라에 간다 해도 진나라의 신용이 없이는 진왕에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진에서 도망온 번어기 장군에게 진왕이 금 천근과 읍 만 호의 현상을 걸었습니다.
번어기 장군의 목과 연나라 독항(督亢)지방 지도를 헌상하면 진왕도 틀림없이 기꺼이 인견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번어기 장군이 곤궁에 빠진 몸으로 의지해온 터라 태자는 차마 죽이지 못했다.
형가는 이를 알고 은밀히 번어기 장군을 만나 설득하였다.
형가가 말하는 계책에 설득된 번어기가 말했다.
'가르침을 받고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리고 손수 목을 쳐서 죽었다.
태자는 이 말을 듣고 달려가 시체 앞에 엎드려 통곡하고 몹시 애도하였지만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으므로 번어기의 목을 함에 넣어 봉하였다.
旣已無可奈何기이무가내
戰國策 燕策 전국책 연책3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無可奈何무가내하라는 성어가 나왔다.
매우 고집을 부리거나 버티어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말로 사기혹리열전에도 나온다.
漢한 武帝무제때 흉노족과의 잦은 전쟁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궁핍해졌고 터전을 잃은 일부 농민들은 도적으로 변해서 약탈을 일삼게 되었다.
도적의 수는 많게는 수천 명의 무리도 있어 혼란이 가중되므로 나라에서는 군대를 보내어 도적들을 토벌해 수천 명에 또는 만여 급을 베기도 했다.
몇 년 뒤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잡았지만 흩어져 달아난 졸개들은 또다시 무리를 이루어 산천의 가파른 곳에 기대어 관병에게 맞서고 언제나 무리를 지어 살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沈命法침명법(도둑을 숨겨 주는 자를 사형에 처하는 법)을 만들어 이렇게 말했다.
도둑떼가 일어났는데도 발견하지 않거나 발견하더라도 전원을 체포하지 못하면 2000석의 고관에서 말단 관리까지 모두 사형에 처한다.
復聚黨阻山川者 복취당조산천자
往往而群居 왕왕이군거
無可柰何 무가내하
- 史記) 卷122 酷吏列傳 사기 권122 혹리열전
막무가내 꼰대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생각 속에...